35주기 추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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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2-03-29 19:26 조회1,560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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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민족의 지도자 백범 선생 / 35주기 추도사
유영준 / 인하대 교수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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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비명에 가신 지도 이 해로 어언 35년이 되었다. 10년
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세상도 그 동안 여러 번 소용돌이치고 말았다.
그러나 해가 가고 달이 갈수록 우리에겐 결코 잊을 수 없고, 아니 변할래야 변할 수조차 없는 한결같은 마
음가짐 하나가 있으니, 바로 백범 선생님에 대한 우리들 모두의 애틋한 흠모요, 아쉬움 그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왜 이다지 그를 추모하게 되는 것일까 ?
선생님이야말로 바로 우리 민족이 일찍이 가져본 적이 없고 아마도 다시 보기 힘든 거룩하고도 숭고한 정
치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사실 백범 김구주석 같이 위대한 민중의 지도자는 세계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들 것이다.
그러면 백범 선생의 위대성이란 어떤 것들인가. 간추려 생각해 보기로 한다.
무엇보다 그이께서는 사상과 이념이 투철한 지도자시다. 민주·민족·문화주의가 그 분에게는 양보할 수 없
는 정치적 신념체계이다.
그의 정치이념은 한 마디로 표시해 자유이며, 또한 그는 한 나라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원
동력을 민주주의에서 찾고 계시다. 그의 자서전 {백범일지} 속의 정치 이념을 보면 이와 같은 그의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부동한 의지가 표현되어 있다.
비단 신념뿐만 아니라 그는 이러한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몸소 실천하고 계시다. 상해 임시정부의 권
력 구조를 국무령제에서 국무위원제로 개정하여 민주절차를 직접 이행한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이
것은 수많은 자칭 정치지도자들이 말로만 민주주의를 외치고 간판으로 내세우되 실행에 있어서나 그 간
판 뒤에서는 온갖 독재를 일삼아 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백범 선생은 참으로 이 민족을 사랑하는 민족주의자시다. 그는 백범일지에서 "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하나님께서 물으신다면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요"하고 대답할 것이며, 세 번을 고쳐 물으셔
도 한결같이 그 대답은 "우리 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인 것이라고 독립에 대한 염원을 피력하고 계
시다. 그는 이 소원을 위하여 70 평생을 살으셨다.
그는 우리 대한이 완전자주독립국이 되면 그 정부청사를 아침 저녁 깨끗이 닦아내는 청소부가 되기를 희
망하셨다. 그리고 그이께서는 이의 실천을 위하여 털끝만큼의 사심(邪心)도 없었다. 바른 길이 아니어든
천만금이 있어도 거들떠보지 않으며, 민족을 위한 길이라면 죽음도 불사하여 그 길을 가시지 않으셨던가!
내 나라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위하여서는 38선을 베개삼아 이 한몸 바치기를 마다치 않으셨다. 이는 하많
은 이른바 정치 지도자들이 말로는 이 민족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하거니와 사리사욕을 위해서는 매국배
족을 일삼고 동족의 목숨마저 짓밟아 버리는 천인공노할 만행조차 서슴치 않는 것과는 실로 천양지차이
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백범 선생님께서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셨다. 그의 통치철학
이 문화주의임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인 것이다. 오직 높은 문화의 힘만이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남에게도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라 하셨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
도 경제력도 아니며, 인의(仁義)와 자비와 사랑이라 하셨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에 바탕을 둔 소
박하나 차원 높은 다스림의 목표요 철학이다.
이러한 통치철학은 지도자 누구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예삿일이 결코 아니다. 많은 언필칭 지도자들이
통치철학을 말하고, 그럴싸한 이념을 내세우되, 기실 현실에 쫓기거나 안주하여 힘의 논리만 내세우는 사
이비 통치철학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리고 또한 백범 선생님께서는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크셨다. 그가 비명에 가신 1949년 6월 26일이 비
극적 동족상잔의 6·25 동란으로부터 꼭 한 해 전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과연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 일
부 사리사욕·사심의 정권욕으로 각각 외세에 아부 굴종하여 저마다 남과 북에 단독정부를 세운 그 찰라주
의, 그 이기주의를 비젼으로 경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네가 처해 있는 해내외의 사정이 복장하고 긴박하면 그럴수록 우리들 모두가 티없이 말고 사심 없으
신 백범 김구 선생님을 더욱 소중히 마음속에 간직하게 되는 소이이다. 오늘에 와서 영원한 민족의 지도
자로 6천만 동포가 그분을 뫼시게 되는 긍지 또한 바로 여기에 있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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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환 -
▣ 김은회 - 잘읽었습니다.
▣ 김정중 -
▣ 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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