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제4회 안동김씨 여름캠프 보고_06(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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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김윤식 작성일05-08-20 23:12 조회1,477회 댓글8건본문
2005년 제4회 안동김씨 여름캠프 보고_06(끝)
◆13:30~14:25 은하면 시가지 출발, 대천해수욕장 착
1박 2일 대종회 주관 공식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안사연 자체행사를 위해 7가족[영환(2명), 상석(3명), 태우, 항용(2명), 용주 3형제(6명), 윤식]이 14:25분 대천해수욕장 민박집 갯마을펜션에 도착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설이 훨씬 깨끗하고 에어컨도 ‘빵빵하게 잘 돌아가서’ 참가가족들은 한참 동안 에어컨을 틀어놓고 지친 몸을 쉴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 편히 쉴 곳 찾느라 여러 차례 대천에 내려와 민박집 일일이 살피신 상석 종친의 자상한 배려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몇몇 종친들 해수욕장으로 발 담그러 나간 사이에 상석 종친을 비롯한 몇 분이 인근 어판장에서 저녁 찬거리를 준비해 왔습니다. 항용·용주 종친 부인두 분께서 정성껏 마련하신 해물 매운탕으로 오랜만에 집에서 먹는 것 같은 저녁을 먹고 19:40분 제1회 대천해변음악축제를 구경하러 나섰습니다. 출연 가수들이 70~80년대를 풍미했던 윤형주, 송창식 등등 중년층이 열광하는 통기타 가수들입니다.
인산인해를 이룬 공연장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간신히 무대 옆쪽에 자리를 잡고 눈과 귀를 무대에 집중합니다. 둘다섯의 <밤배>, <긴머리 소녀> 등 옛 추억이 잔잔히 떠오르는 아련한 선율에 취했다 최성수가 등장하자 오빠부대 원조인 ‘중년 아줌마들’ 함성이 저녁 바다를 출렁이게 만들었습니다.
늘 웃는 얼굴 이용복은 <그 얼굴에 햇살을>과 <줄리아>로 보는 이들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었고, 그 뒤를 이어 하사와 병장, 김도향, 양하영, 송창식 등이 옛 생각을 물씬 묻어나게 했습니다. 우리 옆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 신명이 나서 장단 맞추는 것 또한 그 날 분위기를 한층 흥겹게 만들었습니다.(딱딱한 콘크리트 계단에 오래 앉아 있었더니 엉덩이가 배겨서 혼났습니다.)
상석 종친께서 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면, 무대가 막을 내릴 즈음 카메라가 객석 뒤쪽의 우리 일행을 아주 잠깐 포착했다고 하더군요. 그 날 그 분위기는 상석 종친께서 올리신 <아주 작은 행복-SBS 특집방송을 보다가>로 대신합니다.
해변축제 관람 직후 멀리 중국에 계신 주회 종친께서 상석 종친께 전화를 주셨습니다. 여름캠프 소식이 몹시 궁금하셨던 모양입니다. 통화가 끝나고 얼마 후 가족들이 민박집으로 돌아오고, 영환 종친께서는 상경하셨습니다. 밤길이라 상경하시는 길 내내 걱정스러웠습니다.
아쉬운 작별 후 나머지 가족들은 바닷가로 몰려가 남아 있던 폭죽 터트리고 이야기꽃을 피운 다음 단잠에 빠졌습니다. 이 날 용주 종친께서는 화산군(휘 주) 할아버지 문집 간행을 추진할 당시 아무것도 없이 출발했는데, 후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무사히 마쳤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셨는데, 그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동안 화산군 할아버지께서 이끄시는 듯한 기분을 여러 차례 느꼈다고 합니다.
■ 8월 5일(금) - 3일차
◆10:30~11:10 대천 출발, 호국사 착
다들 피곤했는지 늦잠을 푹 자고 일어났습니다. 아침을 지어 먹고 10:30분 대천해수욕장을 빠져나와 마지막 답사지 호국사로 향합니다. 이곳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 도중에 길을 잃었는데, 성주면사무소의 도움으로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호국사에 대한 설명은 여름캠프 자료집(종합)으로 대신합니다.
호국사 입구는 좁은 길이라 자칫 지나치기 쉽습니다. 입구에 무지개파크가든 간판이 있습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좁은 언덕길을 따라 올라서니 음식점 안마당이 아주 넓습니다. 그 앞에 개량한옥으로 지은 호국사가 있습니다. 민가 형태입니다.
그 뒤에 임란공신을 기리는 각종 비석과 임란공신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좌우에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휘호 ‘조국수호(祖國守護)’비와 ‘진충보국(盡忠報國)’비가, 중앙에 ‘임란선무호성정난 일만구국공신제단(壬亂宣武扈聖靖難 一萬救國功臣祭壇)가 서 있습니다. 이외에 경내에 무명용사충혼비를 비롯해 여러 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제단비(祭壇碑) 뒤쪽에 현재 임란공신 수백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일만구국공신제단’이라 한 것으로 보아 10,000분의 위패를 모실 계획인가 봅니다. 호국사를 설립한 고 안병훈 선생의 큰 뜻을 조금이나 짐작케 합니다. 우리 일행은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해 수도 서울에 전각을 짓고 광복절에 개막식을 가져도 좋을 사업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위패는 2뼘×5치×3치(개략 치수) 크기의 오석(烏石)으로 본관과 휘자를 적었습니다. 우리 문중 할아버지로는 충무공(휘 時敏) 할아버지와 충민공(휘 欽) 할아버지 두 분이 모셔져 있습니다. 충민공 위패는 제1열 왼쪽에서 46번째, 충민공 위패는 왼쪽에서 49번째에 모셔져 있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충무공께서는 임란 당시 진주성을 수호하여 왜군이 이순신 장군의 배후를 치는 것을 막음으로써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연전연승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셨습니다. 당시 충무공께서는 진주성 전투 직후 적병의 유탄에 의해 순국하셨습니다. 충민공께서는 신립 장군과 함께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군에 맞서시다 절통하게도 순국하셨습니다. 부족한 병력과 화력으로 장렬히 순국의 길을 택하신 두 분 선조님께 우리 일행은 묵념을 드립니다. 이외에도 제3열 오른쪽에 공신녹권이 커다란 돌판에 새겨져 있는데, 그 중에 문숙공(휘 제갑) 할아버지 휘자가 새겨져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우리 문중 할아버지 외에 분적해 나간 성씨 중에서 수안김씨 김난서(金鸞瑞) 공(제1열 왼쪽에서 56번째)과 수성최씨 최희급(崔希伋) 공 및 최희량(崔希亮) 공 위패가 제3열 제7번째와 8번째에 각각 모셔져 있습니다. 수안김씨와는 2003년 제2회 여름캠프 행사로 400년 만의 감격적인 만남을 가진 바 있습니다. 당시 김난서 공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는데, 김난서 공의 김건 공께서는 이순신 장군 밑에서 적선을 격파하는 등 큰 공을 세우셨다고 합니다. 장차 우리 문중에서 분적해 나간 성씨들 대표가 충렬공 향사에 참여하는 꿈을 상상해 봅니다.
그런데 큰일을 하시려니 작은 실수가 있었나 봅니다. 충무공 할아버지 위패가 제3열 왼쪽에서 43번째에 또 모셔져 있습니다.
▲호국사 찾아가는 길
△위치 :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안내 : 보령 시가지 → 성주시청(언덕길) → 성주터널(언덕길 계속) → 터널에서 1km(터널 빠져나오면서 내리막길) → 1km 지점(우 : 초가삼간 음식점, 좌 : 호국사 입구, 좁은 길, 무지개파크가든 간판 있음)
△주의 : 내리막길이라 호국사 입구를 찾기 어려움.
언덕을 다 내려가면 3거리임.
이곳에서 U턴해서 다시 조금 올라가야 함.
길을 잃고 다시 찾느라 이곳에서 U턴 가능한지 확인 못함.
참배를 마치고 우리 일행은 잠시 산 속 그늘에 들어가 차가운 음료로 갈증을 달랜 다음 길을 되짚어 나와 서해안고속도로 인근의 냉면으로 허기를 달랬습니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용주 종친께서 공조참판공(휘 오문) 할아버지 묘소에 관한 귀한 정보를 주셨습니다. 공조참판공께서는 안정공파 파조이신 휘 구덕 할아버지의 아드님이십니다. 현지 노인들의 말로는 공조참판공 할아버지 묘소가 여주의 안정공 묘하(여주군 가남면 원승리) 밭에 있었다고 합니다.
얼마 후 시원한 냉면을 먹고, 참가 가족들은 안전한 귀가를 위해 음식점 앞에서 아쉬운 작별을 나누었습니다. 모든 분들 무사히 귀가하시기를 빌면서 서울로 향합니다. 안산에서 길을 바꿔 서울로 들어가 볼일을 본 다음 병원에 들렀다가 집에 도착하니 저녁시간입니다.
일정을 줄여 예년보다 시간에 덜 쫓기지는 하였으나, 2박 3일 동안의 기나긴 여정이 머릿속에서 끝없이 지나갑니다. 더운 날 참여해 주신 대종회장님을 비롯한 문중 어르신들, 그리고 전서공파 종친들과 각지에서 참여해 주신 지역종친회 및 참가 가족 여러분께 감사 말씀 올립니다.
이상 2005년 제4회 안동김씨 여름캠프 보고를 모두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김항용, 김정중 / 글 김윤식>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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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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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보내 주신 사진을 확대했더니 해상도가 약간 떨어졌습니다.
아울러 잘못된 곳은 혜량하시고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김태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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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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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그 동안 연재하여 주신 여름캠프 답사기 편하게 잘 보았습니다.
바쁘신데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정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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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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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제사 그 갈증이 해소 됩니다.
06회의 방대한 작업 이 수고를 무엇으로 갚으리까?
그저 고맙고 고개만 숙여질 따름......
김상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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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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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박3일의 짧지만 무수히 많은 만남과 지워지지 않을 종친간 나눔의 행사보고,유종의미는 이것으로 다하셨고 이미 가 버린 추억 속 일가들의 여름밤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애 많이 쓰셨습니다.감사합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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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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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바쁜 가운데서도 후기를 왼료하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행사 전에는 자료 제작하느라 고생,
행사 당시에는 종군기자역을 하느라 맹활약,
종료 후에는 6회에 걸친 장문의 역사 기록물인 후기 작성,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이로써 여름캠프가 완전히 끝나는 것 같습니다.
모두를 종합하여 홈에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영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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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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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6회에 걸친 2박3일간의 여름캠프 전 일정 소개 내용 사진과 함께
잘 보았습니다 님 들의 수고 덕택으로 마치 제가 함께한 듯 기억에 남을것입니다
김태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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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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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셨습니다.
김발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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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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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불참의 갈증이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