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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경(함부림의 아버지),최복하에게 준 시-척약재 김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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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5-09-02 17:21 조회1,76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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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崔卜河,咸承慶兩同年。雜言(기 최복하 함승경 양동년 잡언)   최.함 두 동년에게 준 잡언시

 

 

鏡浦臺寒松亭(경포대한송정)。경포대 한송정은

 

風更淸月更明(풍갱청월갱명)。바람은 맑고 달은 더욱 밝네

 

携手游相對飮(휴수유상대음)。손잡고 노닐며 서로 마주하며 술마시니

 

海棠花鷓鴣聲(해당화자고성)。해당화피고 자고새 소리 들리네

 

何時一蹇驢(하시일건려)。그어느날 나귀타고

 

吟嘯瞰滄溟(음소감창명)。시 읊으며 큰 포부 펼쳐보려나

 

久知功名富貴(구지공명부귀)。그러나 이미 난 알았네 , 부귀공명이

 

恰似浮雲輕(흡사부운경)。마치 뜬구름 같다는 것을...

 

 

 

同年=과거시험에 같이 합격한 사람

 

함승경과 최복하는 척약재와 같이 대과에 합격했음.

 

군사공(김칠양)의 손자인 김계로의 처부=함부림, 처조부는 함승경

 

 

김구용-김명리-김맹헌,김중서,김계우

김칠양-김돈-김계로(배위[=함부림의 따님)

함승경-함부림-녀=김계로

함부림(咸傅霖)
1360(공민왕 9)∼1410(태종 10).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윤물(潤物), 호는 난계(蘭溪).

검교중추원학사(檢校中樞院學士) 승경(承慶)의 아들이다.
1385년(우왕 11)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검열(藝文檢閱)을 거쳐 좌정언으로 승진하였다.
1389년 공양왕이 즉위하자 헌납으로 승진하여 정지(鄭地)·이림(李琳)·왕안덕(王安德)·우인열(禹仁烈)·우홍수(禹洪壽) 등

구신들을 탄핵하다가 왕의 미움을 받아 춘주지사(春州知事)로 좌천되었으나 다시 부름을 받아 형조정랑이 되었다.
이때 중방(重房)의 무신들이 문신을 멸시하자 이에 항거하다가 파직되었다.
1392년(공양왕 4) 이성계(李成桂)가 실권을 잡자 병조정랑 겸 도평의사사경력사도사에 복직되었다. 이해 이성계 추대에 참여하여

개국공신 3등으로 개성소윤에 임명되었다.
그뒤 형조의랑에 이어 대사성·좌산기상시로서 상서소윤(尙瑞少尹)을 겸하고 명성군(溟城君)에 봉하여졌다. 태종 초기에

충청도도관찰출척사·예문관제학·동북면도순문사·동북면도순문찰리사 겸 병마도절제사 겸 영흥부윤 등을 거쳐,

1404년(태종 4) 참지의정부사로서 대사헌에 올랐다.
다음해 노비변정도감제조와 경기도도관찰사를 지내고, 1406년에 계림부윤·경상도도관찰출척사를 거쳐,

다음해 다시 참지의정부사로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08년에 형조판서가 되었다가 1410년 파직되었다. 성격이 강직하여 직언을 잘하였으며, 이치(吏治)에 능숙하여 관직을

맡을 때마다 칭송을 받았다.
1405년에는 앞서 1398년(태조 7)의 제1차왕자의 난 때, 정도전(鄭道傳)과 더불어 왕자 방석(芳碩)을 옹립하였다는

혐의로 탄핵을 받은 일이 있다.
시호는 정평(定平)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太祖實錄, 太宗實錄, 新增東國輿地勝覽, 燃藜室記述, #용12齋叢話, 車文節公遺事, 鄭道傳의 人間과 社會思想(韓永愚, 震檀學報 50, 1980). 〈韓永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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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홈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