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牧使)를 지낸 김공망(金公望) 선조의 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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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섭 작성일05-09-06 18:37 조회2,105회 댓글1건본문
안녕하세요!
전성이문(全城李門)의 이왕섭이라고 합니다.
홈페이지를 둘러보다 보니 본종의 인물이 뒤바뀌고 또한 후대에 만들어진 문집에 잘못 기록된 내용이 있기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貴門의 목사(牧使)를 지낸 김공망(金公望) 선조의 부인은 경주이씨가 아닌 전의이씨(全義李氏)임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김공망(金公望) 선조의 후손들이 이글을 보시고,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하느냐 하지마시고, 보첩의 기록과 비교해보시고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면 고증을 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귀문(貴門)의 기록에서는 김공망(金公望) 선조의 배위(配位)기록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이기회를 통해 알고자 합니다.
혹시나 올바르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면 고증을 통해서라도 바르게 잡아주셨으면 합니다. 아래 기록은 1500년대의 기록을 옮긴 것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랫글에서는 존칭 및 경칭을 생략하겠으니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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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牧使)를 지낸 김공망[金公望:1482(성종 13)∼1528(중종 23)]의 장인은 전의이씨(全義李氏) 주부(主簿) 이복형(李復亨)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안동김씨 홈페이지에서는 全義李氏의 이복형(李復亨)을 慶州李氏 이복형(李復亨)으로 적고 있다. 더구나 전의이씨 이복형의 장인어른(妻父) 용재(용齋) 성현(成俔)까지도 그대로 끌어다 사용하고 있다.
전의이씨(全義李氏)의 주부(主簿) 이복형(李復亨)은 1518년(중종 13) 제용감 주부(濟用監主簿)로 在職하였던 인물로, 판서(判書)와 대제학을 지낸 성현(成俔)의 사위이다.
[김공망 계보]
김사렴(金士廉) 司諫→김약(金약) 少卿→김우주(金遇周) 知州事→김환(金丸) 判校→김종손(金宗孫) 縣監→김성(金城) 縣令→김공망(金公望) 牧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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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문 홈페이지에서는 송인(宋寅)의 문집에서 인용한 김공망 묘갈명을 실고 있다.
이암(이庵) 송인[宋寅:1517(중종 12)∼1584(선조 17)]의 문집인 이암유고(이庵遺稿)에 김공망(金公望)의 묘갈명(墓碣銘)이 전해진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암선생유고권지팔문속집이(庵先生遺稿卷之八文續集二)의 [海州牧使金公墓碣銘]이다.
이암유고에 보이는 [海州牧使金公墓碣銘]의 原文을 살펴보면,
..........公配淑人李氏 慶州望族 曾祖思和 府使祖益培 佐郞 考復亨 主簿 外王父成俔禮曹判書..........
[번역] 공의 배위는 숙인이씨로 경주의 망족이다. 증조는 사화로 부사이며 조부는 익배로 좌랑이고 부친은 복형으로 주부이다. 외조부는 성현으로 예조판서이다.
이암유고의 해제를 살펴보자.
..........시문은 생전에 慶幸坊의 집에 화재가 나서 많이 소실되었고, 사후에는 남아 있던 詩文 十數卷마저 兵火로 散佚되었다. 그 후 親孫 宋圻가 산일되고 남은 약간 권의 시문을 昇平(順天)에서 목판으로 간행하고 집에 보관하였다. 《초간본》 이 초간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아 그 정확한 간행연대를 알 수는 없다..........
..........현재 전해지는 이암유고의 판본은 12권의 분량에 續集과 別集, 附錄과 附錄補遺까지 편차되어 있고, 雜記의 내용도 후대에 간행된 混定編錄이 인용된 것으로 보아 뒤에 증보가 행해졌음을 추측케 한다. 따라서 증보의 주체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鏤板考」의 기록이나 성균관대 중앙도서관장본의 李이命(1658∼1722)의 소장인(所藏印) 등으로 볼 때 肅宗 연간에 중간된 것으로 추정된다...........
1635년 이식(李植)이 찬한 송인이 시장(諡狀)에서 송인의 저술로는 단지 이암집(이庵集) 1卷만이 세상에 전해진다고 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암선생유고권지팔문속집이(庵先生遺稿卷之八文續集二)의 [海州牧使金公墓碣銘]이 전해지지 못한 것이다.
이암유고는 후대에 증보하면서 첨삭(添削)이 가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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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김공망[金公望:1482(성종 13)∼1528(중종 23)]의 장인이 전의이씨(全義李氏) 주부(主簿) 이복형(李復亨)이라는 것을 증명해볼까 한다.
전의이씨족보는 전의이씨성보(全義李氏姓譜)라는 이름으로 간행되었다.
1476년 현령(縣令) 이인(李麟)이 처음으로 만든뒤에 1574년 갑술보가 간행되었고, 1634년에 숭정보가 간행되었다.
1574년 갑술보에 현감(縣監) 이부(李溥)의 아들인 주부(主簿) 이복형(李復亨)이 실려있다. 1574년 갑술보는 간행시에 영의정(領議政) 이탁(李鐸)을 포함한 각 문중의 대표자격으로 65명의 전의이씨인물과 그 내외자손들이 참여하여 간행한 보첩이다.
이복형(李復亨) 주부(主簿)
여(女) 신해(申瀣) 군수(郡守)
여(女) 김공망(金公望) 목사(牧使)
즉 이복형의 둘째 사위가 목사(牧使) 김공망(金公望)이라고 기록되었으며, 1634년 간행된 숭정보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있다.
이복형(李復亨)의 고조부(高祖父)가 전성군(全城君) 이사의(李思義)이다. 이사의는 대언(代言) 류총(柳總)의 사위인데, 류총(柳總)은 문화류씨(文化柳氏)이다.
문화류씨(文化柳氏)는 족보(族譜)를 일찍이 간행하였다. 조선초기인 세종 5년(1423년)의 문화류씨 영락보(文化柳氏永樂譜)가 간행되기 시작하였는데, 현재 전하지 않으며, 다음은 조선조 명종(明宗) 20년인 1565년 문화류씨가정보(文化柳氏嘉靖譜)를 간행하였는데, 이 가정보가 현재 전해지고 있다. 가정보는 내외자손보(內外子孫譜)로 간행된 만성보(萬姓譜)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남녀(男女) 구별을 두지 않고 출생순서로 하여 만들어져 있다.
문화류씨가정보(文化柳氏嘉靖譜)에 류총(柳總)의 사위인 전성군(全城君) 이사의(李思義) 후손들의 기록이 자세히 전하는데, 그 중 이복형(李復亨)의 기록은 아래와 같다.
[문화류씨가정보(文化柳氏嘉靖譜)에서의 주부(主簿) 이복형(李復亨)과 그의 사위 군수(郡守) 신해(申瀣)와 목사(牧使) 김공망(金公望)]
류총(柳總)→여서(女壻) 전성군(全城君) 이사의(李思義)→자(子) 판사(判事) 이준(李儁)→자(子) 직장(直長) 이장효(李長孝)→자(子) 현감(縣監) 이부(李溥) 室司直辛裕女,檢漢城淸州楊天祿外孫女→자(子) 주부(主簿) 이복형(李復亨) 室昌寧成氏判書成俔女→여서(女壻) 신해(申瀣) 郡守,高靈人,牧使申從沃子,領議政申叔舟曾孫/여서(女壻) 김공망(金公望) 牧使,安東人,部將金城子,縣監金宗孫孫
이복형(李復亨)은 해미 현감(海美縣監)을 지낸 이부(李溥)와 사직(司直) 신유(辛裕)의 딸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창녕성씨(昌寧成氏) 판서(判書) 성현(成俔)의 딸을 부인으로 맞아서 딸 둘을 낳았으니 고령신씨(高靈申氏) 영의정(領議政) 고령 부원군(高靈府院君) 문충공(文忠公) 신숙주(申叔舟)의 증손(曾孫)인 군수(郡守) 신해(申瀣)와 김사렴(金士廉)의 6대손인 목사(牧使) 김공망(金公望)에게 각각 출가하였다.
또한 신해(申瀣)의 아버지 목사(牧使) 신종옥(申從沃)은 전의이씨(全義李氏) 여주 목사(驪州牧使) 이수치[李壽稚: ? ∼ 1493(성종 24, 계축)]의 사위이다.
성현(成俔)은 한산이씨(韓山李氏) 이숙(李塾)의 딸과 혼인하였다. 이숙은 찬성 이계린(李季린)의 아들이다. 판한성(判漢城) 이종선(李種善)이 찬성(贊成) 권근(權近)의 사위가 되고, 권근의 증조부(曾祖父)인 고려 정승(政丞) 권부(權溥)가 지도첨의(知都僉議) 정신공(貞愼公) 류승(柳陞)의 사위가 됨으로써 문화류씨가정보(文化柳氏嘉靖譜)에 그 후대의 기록이 자세히 실리게 된 것이다.
[문화류씨가정보(文化柳氏嘉靖譜)에서의 성현(成俔)의 처부(妻父) 상례(相禮) 이숙(李塾)]
이색(李穡)→중추원 사(中樞院使) 양경공(良景公) 이종선(李種善)→좌찬성(左贊成) 이계린(李季린)→통례원 상례(通禮院相禮) 이숙(李塾)→여서(女壻) 判書 성현(成俔)
또한 주부(主簿) 이복형(李復亨)의 장인(妻父) 창녕성씨(昌寧成氏) 성현(成俔)의 기록을 가정보(嘉靖譜)에서 살펴보자.
[문화류씨가정보(文化柳氏嘉靖譜)에서의 성현(成俔)]
성석인(成石因) 判書→성엄(成엄) 判尹→성염조(成念祖) 判書→성현(成俔) 判書,室韓山李氏相禮李塾女→성세형(成世亨) 縣監/성세통(成世通) 生員/성세창(成世昌) 右議政/女 이복형(李復亨) 主簿,全義人,縣監李溥子/女 前室 허연(許衍) 僉正,陽川人,縣監許宕子/女 前室无后 최수진(崔秀珍) 僉正,朔寧人,左議政崔恒孫,判事崔永灝子
이는 1474년(성종 05) 1월 26일(임자)의 성종실록(成宗實錄) 기사에서도 확인된다.
(上略)..........또 새로 제수한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성현(成俔)은 이숙(李塾)의 사위[女壻]인데,..........(下略)
성현(成俔)의 증조부(曾祖父)인 성석인(成石因)이 밀직(密直) 류보(柳寶)의 사위가 됨으로써 성석인 자손들의 계보가 전하는 것이다.
창녕성씨(昌寧成氏) 성현(成俔)집안과 전의이씨(全義李氏) 집안은 전의이씨(全義李氏) 형조 판서(刑曹判書) 전의군(全義君) 이덕량(李德良)의 형(兄)인 이재량(李才良)이 성현(成俔)의 숙부인 우의정(右議政) 창성 부원군(昌城府院君) 양정공(襄靖公) 성봉조(成奉祖)의 사위가 된 이후로 통혼(通婚)관계가 많이 있어 왔다.
1500년대에 간행된 全義李氏姓譜, 文化柳氏嘉靖譜 등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목사(牧使)를 지낸 김공망[金公望:1482(성종 13)∼1528(중종 23)]의 장인은 경주이씨의 이복형이 아니라 전의이씨(全義李氏) 주부(主簿) 이복형(李復亨)이다.
安東金氏譜牒에 김공망의 배위(配位)의 성관(姓貫)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본인은 보지를 못했다.
하지만 송인[宋寅:1517(중종 12)∼1584(선조 17)]의 이암유고에 보이는 [海州牧使金公墓碣銘]에 보이는
..........公配淑人李氏 慶州望族 曾祖思和 府使祖益培 佐郞 考復亨 主簿 外王父成俔禮曹判書..........
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를 않기 바랄뿐이다.
만약 이암유고의 기록처럼 되어 있다면 그 후손들은 하루빨리 고증하여 잘못된 과오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댓글목록
김관묵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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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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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이왕섭님 귀하의 글 잘 이읽었습니다' 저는 안동김씨 대종회 사무총장 김관묵이라 합니다. 귀하께서 항상 우리 문중의 역사를 관심있게 관찰하여 주심을 감사드리며 한번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목사공 선조님의 지적은 우리 보책에는 경주이씨로 되어 있으니 참고 하곘습니다. 010-6789-3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