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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공(김자점)에 관한 전설지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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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5-09-28 20:33 조회1,61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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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공(김자점)에 관한 전설지 답사

 

● 언제 : 2005년 9월25일
장소 :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백족산
답사자 : 권행순·김상석·김발용(내외)·김영윤(내외)·김용환(부자)·김윤만·김은회·김제만·김태영·김태우·김항용(14명)

 

  백족산 산중에는 비룡상천형(飛龍上天形) 또는 금반형(金盤型)이라는 명당자리가 있다고 한다. 이 명당자리에 묘를 쓰면 그 자손이 크게 번성하여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낟고 하여 누구나 탐내는 자리였다.

  김자점이 이 명당자리를 눈여겨 보아두었다가, 인조반정(仁祖反政)에 가담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으로 권세를 잡게 되자 부친의 묘를 이곳에 썼다. 그러나, 풍수설에 이르기를 비룡(飛龍)은 물이 있어야 마음껏 조화를 부릴 수 있으니, 비룡상천형에는 반드시 그 앞에 큰 물이 있어야 하는데 청미천만으로는 물의 세력이 부족한 것이 한가지 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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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터 : 비룡상천형의 명당자리 추정지>

 

  김자점은 수 많은 인부들을 동원하여 청미천을 가로질러 석축을 쌓아 사시사철 푸른 물이 고여있는 인공호수를 만듦으로써, 부친의 묘를 명실상부한 비룡상천의 명혈(名穴)이 되도록 하였다.

  그 후 가뭄이 들면, 인근지역의 농부들이 자점보의 물을 몰래 뽑아 썼던 탓에 지금의 장호원읍 오남리(梧南里) 일대는 가뭄을 모르는 옥토가 되었다고 한다.

  비룡상천의 명당을 차지하게 된 김자점은 공신으로 득세하고 그의 손자를 효명옹주(孝明翁主)와 결혼시켜 왕실의 외척으로 부원군이 되었으며, 마침내는 최고의 관직인 영의정에까지 오를 수 있었는데 이 것 또한 부친의 묘자리를 잘 쓴 덕분이라고 그 당시의 사람들은 믿었을 것이다.

  김자점이 역모죄로 몰려 죽은 후 백족산에 있는 그 부친의 묘를 파헤쳤더니 장례를 지낼 때 엎어서 묻었던 시체가 거의 용의 모습으로 화하여 자점보 쪽을 향해 굴을 뚫고 전진해 가던 중이었더라고 한다. 결국 형리들이 용의 목을 잘랐는데 지금도 백족산 기슭에 있는 이 비룡상천의 명당자리에는 그때 용이 뚫은 굴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이며, 바람이 몹시 부는 날도 이곳만은 바람기가 조금도 없이 잔잔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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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바위(지네굴>

 

  자점보는 지금도 그 형태의 많은 부분이 손상되지 않은 채 남아 있어, 오남리 벌판에 물을 대는 중요한 보의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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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점보(자재미보)>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산행 후기 중 백족산 전설 관련,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lt;金盤形&gt;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