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숙공 김언 (안렴사공파)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2-04-03 09:17 조회2,138회 댓글0건본문
민숙공 김언
지난 토요일에 충북 청원군 오창면 모정리에 있는 안렴사공 金士廉(김사렴) 묘역에 다녀 왔습니다. 재실인 永慕齋(영모재)에 민숙공 김언의 자료가 있어 이 자료와 관련기록을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愍肅公(민숙공 김언) 할아버님의 약력
-1994년 2월 14일 (순절 357주기 기념)
-안동김씨 (안렴사공파) 좌승지공파 종친회
愍肅公(민숙공) 할아버님의 약력
1994. 2.14
1. 서기 1588년, 선조21년 음력 6월 탄생, 거금 406년전임
2. 아버님 진사로 洛瑞(낙서), 율곡 선생의 문하생, 평생 불출사, 詩畵(시화)로 벗하고 유유자적, 승정원 좌승지 추증됨, 어머님 전의이씨 병절교위 지내신 희담의 따님
3. 서기 1615년 (28세시) 문과급제, 상봉주부 벼슬 7-8년간 계심, 광해군 폐모론에 불참하여 미관직에서 오래 계심, 36세시 인조반정으로 기성랑으로 승차
4. 부안현감으로 계실적, 양친이 연이어 돌아가심, 시기하는 자 있어 무고함에 오래 한직에 계심
5. 41세시, 영천군수로 재직시, 무안현감시 궐례로 탄핵받아 파직됨 (집상중궐례로)
6. 부안 관민이 무고함과 선정치적을 진정하야 복관되시고 사도사정으로 승차하심
7. 성천부사가 되시고, 선정으로 인조임금께서 품위를 높이고 표창하심
8. 병자년, 서기 1636년에 청나라 사정이 급박함에 서북지방 관장을 모두 무신으로 교체하였으나, 영상 김류가 공의 선치적과 민심이 따름을 들어 유임시킴
9. 병자년 12월 9일, 청태종이 20만 대군으로 압록강을 도하침공, 불과 7일만에 (12월 15일) 수도 한성이 함락되고, 인조 임금은 남한산성으로 피함
10. 평양감사 홍명기의 명으로 자모산성으로 달려가 합류함
11. 평양감사 홍명기가 아무 연락 없이 딴 곳으로 가버림에 홀로 의병을 초모하여 적과 대치함
12. 상부와 연락이 두절되고, 고립무원으로 민심이 경동하여 관병의 이탈자가 속출함에 세궁력진 상태에 빠짐
13. 대세가 돌이키기에 불가능함에 관, 병, 민을 해산시킴 (가전에는 米, 布를 분배하였다 함)
14. 잔여 관, 민, 병이 같이 죽기를 간청하고 사위 金益勳과 시위병이 없고 달아나라 함에 크게 꾸짖고 죽기를 맹세하고 후일을 도모하라 이르시고 해산시킴
15. 소수의 시종 군사와 더불어 산성에서 돌로 적과 싸우시다가 적의 칼아래 쓰러지심
16. 적장이 항복하기를 권하나, 공께서 목숨이 끊어질때까지 크게 꾸짖고 불절하여 끝내 해를 입으심. 때는 인조15년 (정술년) 정월 초5일 (서기 1637년) 이며, 거금 352년전임
17. 당시 공의 가속이 각기 흐트러져 큰 환난을 당함, 世輔 15세, 世弼 7세, 世翊 4세였음
18. 감사 홍명기가 비장과 의복을 보내어, 공의 시선과 의대를 수습시키고 그는 김화현에서 청과 싸우다가 전사함
19. 그후 난리가 끝나고 세상이 안정됨에 경기도 광주군 기자산에 안장하시고, 후에 우암 송시열 선생이 墓碣문을 쓰심 (가전에 의하면 의대와 유품만을 가지고 쓴 허묘였다 함)
20. 초취부인 경주최씨 아들 世弘 벼슬 통덕랑 일찍 별세 (21세) 무후, 딸 한분 柳道三에게 출가, 최씨부인 묘는 오창면 양대리 뒷산, 시아버님 승지공 묘소옆에 있음
21. 재취부인 전주이씨로 세종대왕 6세손 李先立의 딸임, 남은 世輔, 世弼, 世翊과 1년 (광남군 金益勳에게 시집감) 두시고, 서기 1675년 정월 초6일 돌아가심, 향년 76세, 38년간 홀로 의도를 엄중히 하고 가도를 확립함에 가문을 지키고, 어린 세 자녀를 훌륭히 키워 출세시켰음, 묘소는 할아버님과 합장함, 현재 우리 모은 후손은 전주이씨 할머님의 후손임
22. 성천부 관기 今玉이 오래도록 할아버님을 모시다가 자모산성에서 끝까지 남아 돌을 나르다가 도우며 싸웠음. 후에 성천부민이 감격하여 貞節廟閣(정절묘각)을 세우고, 후에 다시 숙종 임금님께서 旌門(정문)을 세우도록 허락하여, 현재 성천에 현존한다 함
23. 난리가 끝나고 세상이 안정되었으나, 조정에 무고하는 무리있어 할아버님의 거룩한 죽음이 표상되지 못하여 영상을 지낸 홍중보가 항상 한탄하였으나 어찌하지 못하고 필경 둘째 아드님 世輔 할아버님이 장성하여, 그 실정과 억울함을 끈질기게 탄원하고 그치지 않으셨음
24. 예조판서 김남중, 이일상이 주청하여 현종임금께서 이조판서 추증하시고, 본가에 旌閭問(정려문) 세워 표창함 (때는 현종5년, 서기 1664년으로 순절후 27년만이었음)
25. 현종때 영의정 허적이 사사감정으로 비방 무고하여, 정려문을 헐고 묘갈을 땅에 묻었음 (장차 청나라의 노여움을 사서 나라에 재앙이 닥친다고 함)
26. 서기 1680년 허적이 역적으로 주멸됨에 자손들이 다시 탄원, 예조에서 재논의 영의정 김수항께서 주청하여 판부사 민승중에게 사실규명을 명함. 민승규 성천부 현지에 가서 직접 성천부 관민을 상대로 현지조사함
27. 할아버님의 은혜로 살아남은 관, 민, 병들과 장렬하게 순절하심을 목도한 백성들이 한결같이 그 행적을 똑똑히 증언하고 입증함 (가전에 의하면, 이미 전에 할아버님과 기생 금옥의 사당을 주민 스스로 지어놓고 추모하고 있었다 함)
28. 숙종 임금님께서 민승중의 복명과 성천부민, 유생의 탄원으로 본가에 정려문을 다시 복권시키고, 성천부에 사당과 순절비를 세우게 하시고, 묘비와 묘갈을 다시 세우게 하심 (묘소 : 광주군 기자산 가좌동 자좌 있었다 함)
29. 현종 임금님때에 이조판서로 추증, 다시 좌찬성으로 높이고 정종(=정조)때 민숙공이라 시호내림. 두부인 모두 정부인 교지 받음
▣ 김언 (金 王+言) (1588-1637)
김공연(金公衍)- 김계현(金繼賢)- 김낙서(金洛瑞)- ★김언, ▶형 김욱(金頊)
생년(生年) 1589년, 기축
소과(小科) 1609(기유) 생원시
광해군(光海君)7년(1615년), 식년시(式年試) 병과6(丙科6)
<민족문화대백과사전>
8. 金王+言(김언)
1588(선조21)-1636(인조14). 조선 인조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은 汝潤(여윤). 아버지는 진사 洛瑞(낙서)이다.
1609년(광해군1) 진사가 되고
1615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등용된뒤 폐모론에 가담하지 않아 7,8년뒤 겨우 봉상시주부에 머물렀다.
인조반정후 부안현감, 예조정랑, 병조정랑, 성균관사예, 예빈시정. 장악원정 등을 역임하고 1628년(인조6)에 영천군수를 거쳐 성천부사가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성천부사로서 흩어진 관병을 정렬하여 관찰사 홍명구에게 예속시키고 의병을 모집하여 적의 진로를 막고 항거하다가 전사하였다.
그뒤 홍명구의 아들 중보의 주선으로 조정에서는 이조판서를 추증하고 정려문을 세웠다.
그러나 현종때 허적이 성천부사를 지낼 때 그의 행적이 모호하다고 하여 旌表를 환수하였다. 1680년(숙종6)에 허적이 처형된뒤 아들 世輔등 삼형제의 상소로 다시 정표문제가 제기되어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愍肅(민숙)이다.
참고문헌 광해군일기 현종실록 숙종실록 국조인물고 국조방목 <徐信錫>
<디지털한국학 홈페이지( http://www.koreandb.net/)>
8. 김언(金언)
시대 조선
생몰년 1588-1636(선조21-인조14)
본관 안동(安東)
자 여윤(汝潤)
호
시호 민숙(愍肅)
활동분야 문신
다른 이름
1588(선조 21)∼1636(인조 14). 조선 인조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여윤(汝潤). 아버지는 진사 낙서(洛瑞)이다.
1609년(광해군 1) 진사가 되고 1615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등용된 뒤 폐모론에 가담하지 않아 7, 8년 뒤 겨우 봉상시주부(奉常寺主簿)에 머물렀다.
인조반정 후 부안현감·예조정랑·병조정랑·성균관사예·예빈시정·장악원정 등을 역임하고 1628년(인조 6)에 영천군수를 거쳐 성천부사가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성천부사로서 흩어진 관병을 정렬하여 관찰사 홍명구(洪命耉)에게 예속시키고 의병을 모집하여 적의 진로를 막고 항거하다가 전사하였다.
그뒤 홍명구의 아들 중보(重普)의 주선으로 조정에서는 이조판서를 추증하고 정려문을 세웠다.
그러나 현종 때 허적(許積)이 성천부사를 지낼 때 그의 행적이 모호하다고 하여 정표(旌表)를 환수하였다.
1680년(숙종 6)에 허적이 처형된 뒤 아들 세보(世輔) 등 삼형제의 상소로 다시 정표문제가 제기되어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민숙(愍肅)이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顯宗實錄, 肅宗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徐信錫〉
<오창지>
공은 안렴사의 10세손이고 참봉 洛瑞의 아들이다. 사마시에 합격하고 문과에 급제하여 성천부를 맡았는데 병자호란에 오랑캐가 발호하였다. 공은 성을 지키고 힘을 다해 싸우며 적을 꾸짖고 굽히지 않다가 끝내 나라를 위해 죽었다.
이 사실이 보고되자 정려문을 세우고 여러번 추증하여 찬성에 이르렀으며 시호를 민숙공이라 하였다.
묘갈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짓고 학사 김공 鎭商이 썼으며 죽천 김공 鎭圭가 두전을 하였다.
<청원군지 (1990.12)>
7) 김언 (1589-1636)
조선조의 충신 김언은 본관은 안동. 자는 沃潤, 청원군 오창면 양지리에서 김낙서의 아들로 태어났다.
율곡 이이의 문인으로 광해군1년 (1609)에 진사가 되었으며, 광해군7년(1615)에 식년문과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등용되고
인조반정으로 병조정랑이 되었다가 여러 벼슬을 거쳐 성천부사가 되었는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싸우다가 항복하라는 위협을 물리치고 항전하다가 전사하여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愍肅公이란 시호를 받았으며, 현종2년(1661)에 정문이 세워졌다.
묘소는 청원군 오창면 복현리에 있으며 송시열이 지은 묘갈이 있다.
문헌 : 청주시지
<문과방목>
김언(金<0x3D0A>)
광해군(光海君)7년(1615년), 식년시(式年試) 병과6(丙科6)
>>> 인적사항
생년(生年) 1589년, 기축
자(字) 여윤(汝潤)
호(號)
본관(本貫) 안동(安東)
거주지(居住地) 미상(未詳)
諡號, 封號
>>> 가족사항
부(父) 김낙서(金洛瑞)
생부(生父)
조부(祖父) 김계현(金繼賢)
증조부(曾祖父) 김공연(金公衍)
외조부(外祖父) 이희담(李希聃)
처부(妻父) 이선립(李先立)
형(兄) 김욱(金頊)
>>> 이력 및 기타
소과(小科) 1609(기유) 생원시
특별시(特別試)
전력(前歷) 생원(生員)
품계(品階)
관직(官職) 사정&(寺正&)
<괴산군지 (1990.8)>
▣ 135. 金世達 (1625-1674) ★김사달의 선조
자는 士章, 본관은 안동으로 고려충신 안렴사 김사렴의 11세손이며 괴산군 청천면 무능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그의 재종숙인 성천부사 김언의 임소책방에서 글을 배우고 있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다음해인 1637년 호병이 평안도의 요충인 성천고을을 침공하자 부사 김언이 관병을 단속하여 경골, 창암산성을 수호하는 한편, 의병을 널리모아 적의 대병과 혈전을 거듭하다가 전세가 급박하여 전황과 적세를 자세히 기록한 장계를 조정에 올리고져 할 때, 적의 포위망을 탈출할 가능성이 있는 소년인 공에게 전계할 것을 명하는 한편 어린 재종질로 하여금 무사 귀향토록 조처했다.
공은 급히 행장을 수습하여 산중으로 도망하여 장계서찰을 작은 칼로 썰어서 순서대로 심지를 꼬아 행장 질끈을 만들어 지고 죽기를 한하고 주야 배도하여 서울로 치달아 올라갔다.
경사에 이른 공은 행장끈을 풀어 연폭하니 내용이 소상하여 이를 조정에 올리니 왕이 들으시고 기특히 여겨 인견하고 성장후에 관직에 녹용토록 윤음을 내렸다.
병자호란 이후 사색당쟁으로 나라가 혼란하여 벼슬에 뜻이 없어 고향에 은거하며 후학지도에 힘쓰며 여생을 마쳤다.
사후에 예조판서 운봉 강백년이 연주하여 공조참판에 증직되고 묘는 청천면 고성리에 있다.
문헌 : 현종실록
▣ 김낙서(金洛瑞) (1553-1623)
<오창지>
공은 진사 하서의 아우인데, 율곡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선조때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특별히 재랑(참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아들 진과 언이 모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자손의 귀함으로 인하여 승지에 추증되었다.
▣ 김욱(金頊) (1583- ? )
김공연(金公衍)- 김계현(金繼賢)- 김낙서(金洛瑞)- ★김욱(金頊), ▶제 김언
생년(生年) 1583년, 계미
소과(小科) 1603(계묘) 진사시
광해군(光海君)2년(1610년), 식년시(式年試) 병과13(丙科13)
<오창지>
공은 충신인 민숙공 언의 형이다. 사마시에 합격하고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지평에 이르렀다.
<문과방목>
김욱(金頊)
광해군(光海君)2년(1610년), 식년시(式年試) 병과13(丙科13)
>>> 인적사항
생년(生年) 1583년, 계미
자(字) 여신(汝愼)
호(號)
본관(本貫) 안동(安東)
거주지(居住地) 미상(未詳)
諡號, 封號
>>> 가족사항
부(父) 김낙서(金洛瑞)
생부(生父)
조부(祖父) 김계현(金繼賢)
증조부(曾祖父) 김공연(金公衍)
외조부(外祖父) 이희담(李希聃)
처부(妻父) 박**(朴**)
제(弟) 김언(金<0x3D0C>)
>>> 이력 및 기타
소과(小科) 1603(계묘) 진사시
특별시(特別試)
전력(前歷) 진사(進士)
품계(品階)
관직(官職
▣ 김세보(金世輔) (1623- )
<오창지>
공은 충신인 민숙공 언의 아들인데, 음직으로 현감을 지냈으며, 젊은 나이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사마방목>
김세보(金世輔) / 顯宗 03 增廣 進士
【시험년도】 현종(顯宗) 03 (1662) 증광(增廣) 진사(進士)
【본인생년】 계해(癸亥) 1623
【본인거주】 경(京)
【부친성명】 김언(金)
【안항(형)】 김세홍(金世弘)
【안항(제)】 김세필(金世弼), 김세익(金世翊)
▣ 김세필(金世弼) (1631- )
<오창지>
공은 현감 세보의 아우인데, 젊은 나이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음직으로 현감을 지냈다.
<사바방목>
김세필(金世弼) / 顯宗 04 式年 進士
【시험년도】 현종(顯宗) 04 (1663) 식년(式年) 진사(進士)
【본인생년】 신미(辛未) 1631
【본인거주】 경(京)
【부친성명】 김언(金)
【안항(형)】 김세홍(金世弘), 김세보(金世輔)
【안항(제)】 김세익(金世翊)
▣ 10대손 김세익 (1634-1698)
김계현(金繼賢)- 김낙서(金洛瑞)- 김언- ★김세익(金世翊)
생년(生年) 1634년, 갑술
소과(小科) 1654(갑오) 진사시
숙종(肅宗)12년(1686년), 정시(庭試) 병과2(丙科2)
<민족문화대백과사전>
1634(인조12)-1698(숙종24). 조선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亮卿(양경).
아버지는 성천부사 王+言(언), 어머니는 李先立의 딸. 아버지가 병자호란때 적병과 싸우다가 순절하자 중림찰방에 기용되어 관계에 나갔으나
1681년(숙종7) 헌납 朴泰孫으로부터 탐학하다는 탄핵을 받아 仕版(사판)을 삭거당하였다.
그뒤 다시 서용되었으며 1686년 전주판관으로 재임시 53세의 나이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 사간원에 들어갔다.
1694년 사헌부지평으로 재임시에 시관으로 영남지방을 다녀와서 백성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宮房의 침탈상을 보고하고 그 구제책을 촉구한 바 있으며,
이듬해에도 군병의 기강확립과 궁방의 검약한 생활 등을 건의한 바 있다.
이후 여러차례 승지에 발탁되었으며, 1698년 경상도관찰사로 재임시 도내를 순시하던 중 청송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 국조방목 淸選考 <禹仁秀>
<디지털한국학 홈페이지( http://www.koreandb.net/)>
12. 김세익(金世翊)
1634(인조 12)∼1698(숙종 2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양경(亮卿).
아버지는 성천부사 언($언01), 어머니는 이선립(李先立)의 딸.
아버지가 병자호란 때 적병과 싸우다가 순절하자 중림찰방(重林察訪)에 기용되어 관계에 나갔으나, 1681년(숙종 7) 헌납(獻納) 박태손(朴泰遜)으로부터 탐학하다는 탄핵을 받아 사판(仕版)을 삭거당하였다.
그뒤 다시 서용되었으며 1686년 전주판관(全州判官)으로 재임시 53세의 나이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사간원에 들어갔다.
1694년 사헌부지평으로 재임시에 시관(試官)으로 영남지방을 다녀와서 백성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궁방(宮房)의 침탈상을 보고하고 그 구제책을 촉구한 바 있으며, 이듬해에도 군병(軍兵)의 기강확립과 궁방의 검약한 생활 등을 건의한 바 있다.
이후 여러 차례 승지에 발탁되었으며, 1698년 경상도관찰사로 재임시 도내를 순시하던 중 청송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國朝榜目, 淸選考. 〈禹仁秀〉
<오창지>
12. 金世翊
공은 충신 언의 아들이다. 효종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음직으로 전주판관에 제수되었다가 정시문과에 올라 여러번 은대(승정원)의 벼슬을 지내고 나가 영백(경상도 관찰사)이 되어 청송부 객사에서 별세하였다.
<문과방목>
김세익(金世翊)
숙종(肅宗)12년(1686년), 정시(庭試) 병과2(丙科2)
>>> 인적사항
생년(生年) 1634년, 갑술
자(字) 량경(亮卿)
호(號)
본관(本貫) 안동(安東)
거주지(居住地) 미상(未詳)
諡號, 封號
>>> 가족사항
부(父) 김언(金<0x3D0C>)
생부(生父)
조부(祖父) 김낙서(金洛瑞)
증조부(曾祖父) 김계현(金繼賢)
외조부(外祖父) 이선립(李先立)
처부(妻父) 이후응(李後膺)
>>> 이력 및 기타
소과(小科) 1654(갑오) 진사시
특별시(特別試)
전력(前歷) 전주판관(全州判官)
품계(品階)
관직(官職) 경상/감사&(慶尙/監司&)
▣ 김재원 -
▣ 김항용 -
▣ 김항용 - 지난 일요일엔 저도 괴산 세덕사에 가서 부모님을 뵙고 나무도 심었습니다. 무궁화가 빠져 있는 정원은 국적이 없어보여 10그루를 심어 봤습니다. 터지는 백목련 속에 숨어 있는 힘찬 새 희망의 정기를 내 가슴에 꼬옥 꼭 심고 왔습니다.
▣ 김영환 -
▣ 김태서 - 귀중한 자료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은회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