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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계곡(백범선생 가족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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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5-09-30 18:52 조회1,981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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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계곡(백범선생 가족묘)


  북한산의 남쪽에 위치한 산수 좋고 풍경 좋은 정릉동은 그 남쪽 산록에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이 있다.

  정릉은 중구 정동에 있었으나 태종은 전부터 강비에게 지녔던 감정상 성 안에는 능(陵)을 두지 않는 법이라 하여 태종 9년(1409)에 현재의 정릉으로 이장하였다. 신덕왕후는 황해도 곡산부 판삼사사 강윤성의 따님으로, 태조 원년(1392)에 현비(顯妃)로 책봉되었으며 태조 7년 8월 13일 판내시부사 이득분의 집에서 승하하였다. 태조는 능역(陵域)을 현 정동에 봉릉하고 그 동편에 재궁으로 흥천사를 세우고 자주 행행(行幸)하였다.

  태종은 현 위치로 천릉하였으나 종묘에 부묘하지 않아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여 왕후의 능이라기보다 주인 없는 무덤에 불과하였다가 선조 때 신덕왕후의 친정 후손이 국묘봉사자(國墓奉祀者)의 군역(軍役) 면제에 따른 혜택을 보고자 정릉의 소재 파악을 시작, 변계량(卞季良)의 이장축문(移葬祝文)에서 그 위치를 겨우 찾아 한식절 제사만 지내게 되었다. 그 후 현종 10년(1669)에 송시열(宋時烈)의 계청(啓請)으로 신덕왕후의 태묘배향을 하게 되었으며 이때 모든 상설(象設)을 구비하게 되었다. 상설된 석물은 전장 3면 혼유석 1 명등석 1 망주석 1쌍 문인 1쌍 마석 1쌍 양석 1쌍 호석 1쌍 정자각 수자청 망료위 표석1 홍전문 재실 등 이다.

  정릉에서 동북쪽으로 올라가면 봉국사 경국사 등 고찰이 있어 깊고 그윽한 산곡문의 자연풍경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데 돈암동 막바지에 있는 흥천사와 함께 모두 정릉의 원찰로 되어 있다.

  경국사 입구 계곡 서쪽 오른쪽에는 최준례선생지묘(崔遵禮先生之墓) · 곽하원선생지묘(郭夏園先生之墓) · 김인선생지묘(金仁先生之墓)의 단갈(短碣)이 서있는 3위(位) 묘소가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주석(金九主席)의 부인 · 어머니 · 장남의 묘소로서 광복 후 임시정부의 환국과 함께 중국에서 이장(移葬)하였는데 봉분(封墳)과 비갈(碑碣)은 초라하지만 뜻있는 인사들의 참배하는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또 백악과 백운대로 올라가는 계곡은 물이 맑고 돌이 희어 수석 좋기로 유명하다. 특히 북한산성의 보국문을 지나 백운대까지 등산로가 이어지는 오른쪽 골짜기에는 수림이 우거지고 계곡이 깊어 굽이굽이 들어가는 곳마다 돌이 패여 못을 이루고 넓은 바위는 대를 이룬다. 어느 곳 하나가 자연의 승경이 아닌 곳이 없다. 여름철의 피서와 봄 · 가을의 탐승(探勝)으로 옛부터 발길이 끊어지지 않았다.

《출전 : 서울600년사》


推記 : 최준례님은 상하이 공동묘지에 묻혔다가 1948년 고국으로 모셔와 서울 정릉에 안치되었다가, 지난 1982년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승릉리의 가족묘지로 이장하였다.

지금은 최준례님은 효창공원에 백범선생님과 합폄하였고, 곽낙원님과 김인님은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 2구역에 모셔져 있다.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정릉 위의 경국사 서쪽에 3위분의 묘소가 있었군요. 잘 알았습니다.

김태도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태도
작성일

  윤만 아재 오랫만에 귀하신 함자를 써봅니다.
좋은계절에,훌륭하시고도 좋은 활동모습이 아름답고, 부럽고도 존경스럽습니다.
언제나 안사연을 사랑하시고,또한 우리 안김의 후진을 위하여 아끼시지 않으시는 열정ㅡ,
감사와 찬사의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