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사(靑龍寺)와 예순 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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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5-10-01 15:01 조회1,574회 댓글1건본문
청룡사(靑龍寺)와 예순 비구니
종로구 숭인동 17번지에 위치해 있다.
고려 태조 5년(922)에 도선국사(道詵國師)의 유언에 따라 태조 왕건이 어명을 내려 창건하고 한양의 외청룡(外靑龍) 산등에 지었다고 하여 사호를 청룡사(靑龍寺)라 하였다. 제1대 주지로 혜원(慧圓) 비구니스님을 주석케 하고 삼국통일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정종 2년(1036)에 만선 비구니스님이 퇴락한 절을 창건 이후 처음으로 중창하였고 의종 12년(1158)에 어명으로 국태민안의 기도를 올릴 때 회정선사(懷正禪師)가 2차로 중창하였으며 충렬왕 25년(1299)에 몽고의 병란으로 허물어진 것을 지유(知幼) 비구니스님이 3차로 중창하였다. 조선이 건국되어 이성계(李成桂)가 왕위에 나아가자, 공민왕의 폐비가 나라를 잃은 망국의 슬픔을 안고 스님이 되어 이 절에 주석하였다.
태종 5년(1405)에는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 내려가 두문불출하고 있었는데 무학왕사(無學王師)로 하여금 한양으로 모셔오게 어명을 내렸는데 왕사가 이를 성사시켰다. 이에 태종이 사례로써 왕사가 머물고 있던 이 청룡사를 중창토록 하였다.
세조 때에는 단종이 영월로 유배를 떠날 때, 왕비 송씨와 이 절의 우화루(雨花樓)에서 애끊는 이별을 하였고, 이어 왕비 송씨는 이 절에서 스님이 되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숙종 24년에 비로소 정순왕후(定順王后)로 추복되었는데, 영조 47년에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라는 사적비가 이 곳에 세워졌다. 중종 7년(1512)에 연산군의 폐사훼불로 훼손되었던 절을 법공(法空) 비구니스님이 5차로 중창하였으며, 인조 2년(1624)에 예순 비구니스님이 인목대비의 명을 받들어 광해군 때 억울하게 죽은 영창대군의 명복을 빌고 사찰 전체를 새롭게 중창하였다. 영조 47년(1771)에는 왕이 어명을 내려 옛날 단종 왕비 정순왕후가 한 많은 일생을 보낸 이 절을 옛 모습 그대로 중창하고 또 왕비가 주석했던 곳이라 하여 궁중의 비빈만이 출입하던 내불당의 명칭인 정업원의 이름을 따서 사호를 정업원(淨業院)이라 부르게 하였다. 이와 함께 새로 중창한 법당에서 비명에 죽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게 하였다. 순조 13년(1813)에 원인 모를 화재로 절이 소실되었으나 곧 개창하였으며 동왕 23년(1823)에는 사호를 다시 청룡사로 개칭하였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창하여 10차의 중창 역사를 갖고 있다.
정순왕후의 비인 정업원구비(淨業院舊碑)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비각의 현액은 영조의 친필이다.
《출전 : 서울육백년사》
댓글목록
김태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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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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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좋은 사료의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