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향연(독서,단풍구경),등설악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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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작성일05-10-01 20:41 조회1,513회 댓글4건본문
추석날 오후 오색온천을 갔다.다행스럽게 하루를 묵어 갈 빈방이 있었다.먼 옛날 스님이 발견했다는 오색약수의 맨위의 구멍은 관광객들에게 시달리어 바닥을 드러낸 채 몸살을 앓고 있기에 한모금을 얻어 마른입만 적시고 돌아오면서 "어찌 한 곳에서 흐르는 물이 이리도 다를꼬?",스스로에게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식당으로 가 내일 새벽에 가져갈 주먹밥을 맞춰 놓고 잠을 청한다.깊은 산 속의 산장에는 짐승들의 울음에 묻어 온 송이향이 가득하고 이제는 사라졌는 지 호랑이 울음은 그치고 취객들의 술주정이 간헐적으로 들린다.
7시,오색코스의 출입구를 통과하여 산보하듯 올라가며 명경지수에 시선을 멈추니 폭포 아래엔 서둘러 색깔을 바꾼 단풍잎,겨울을 준비하는 다람쥐와 청설모의 분주함이 갑자기 나그네를 일상으로 끌어내어 바쁘게 한다.날 저무는데 갈길은 멀고(日暮途遠),물론 어원은 다르지만 오르기도 전에 12시간안에 하산을 해야 하는 산행을 스스로 챙겨야 하기에 서두른다.
세 시간이 지나 정상인 대청봉(1708)에 다다를 수 있었다.삼 년전 이 무렵(단풍철을 피하여 산행하는 것이 유리함,제철엔 행락객이 초만원) 등정하였을 때처럼 한결같이 저멀리 금강산 끝자락과 울산바위,동해,가까이로 봉정암,공룡능선,외설악이 장관이다.목을 축이고 방향을 봉정암으로 돌려 내려 온다.내려오는 길은 백담사,오세암에서 올라오는 이들이 많아 복잡하고 시끄럽다.
인파들로 빼곡히 들어 찬 소청산장을 뒤로하고 가파른 하산길 초입에서 봉정암을 만날 수 있었다.마침 보름이 지나자 발디딜 틈도 없이 밀려드는 신도들과 등산객들을 수용하기 위해 적멸보궁 앞엔 차양을 치고 예불안내를 하느라 수선스러워 절간같다느니 적막강산이라느니 하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은 지 이미 오래다.부처님 정수리 부분에서 나온 사리를 모신 곳이니 숙연해야 할텐데----,왠지 모르게 심사가 뒤틀린다.
다 내려와서 들으니 봉정암은 하루에 3,000명 까지 묵고 간다고 하였다.오세암을 들리고 싶어 우회하여 오르락 내리락 하니 두어 시간이 더 걸린다.아직도 올라오는 사람들로 좁은길엔 교행이 되질 않아 더디기만하다.오세암 역시 발디딜 틈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5세에 도를 깨쳤다는 전설 속의 오세암(매월당이 머리를 깎았던 도량이기도하다)에 서서 계곡을 내려다 보니 동양화의 한 폭을 옮겨다 놓은 절경이다.
숨을 돌리고 자주 오질 못하기에 한 잔 술을 벗삼아 계곡에 발을 담그니 산 속의 해는 벌써 기울어 이미 백담계곡을 비추던 하얀 달빛이 술잔에 떨어진다.서둘러 내려 오는데 마음만 급하고 다리가 풀려 지루하고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어 랜턴을 켜고 흥얼거리며 백담사(白潭寺)엘 도착하니 밤9시가 되었다.백담사의 콘크리트 포장길에 관한 사연은 잊은 채 어둠을 안고 내려 오면서 백족산행의 즐거움만 생각하였다.
쉽게 오지 않는 잠을 버리고 조선기생과 정담을 나누며(소설 황진이를 읽음) 까만밤을 또 그렇게 하얀 파도와 어우러져 뒹굴고 일상으로 돌아왔다.또 다른 가을의 일기 끝--------
댓글목록
김영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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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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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어쩌면 그렇게도 맛갈스러운 글이 누에고치에서 명주실 풀리듯이 이어지는지요 등설악산기 잘 읽었습니다
불현듯 어디론지 떠나고픈 충동을 느깁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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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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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멋과 운치를 담은 유려한 문장, 산행 시작에서 끝까지의 전과정을 함께 하는 듯, 실물처럼 그려내는 아름다운 자연경관, 틈틈이 표현되는 님 서정과 감회, 그 속에 배어 있는 님의 철학...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이 멋진 <등설악산기>는 훗날 안사연의 합동 수필집에 편집되어 오래도록 읽히고 남으리라 봅니다.
김태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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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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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일명 ㅡ,등반대 대장님. 상석 대부님 오랫만에 함자를 혼자서 불러봅니다.
ㅡ가을의 향연....ㅡ.제목부터가 한편의 시입니다.
그리고,영윤대부님, 항용선생님 님들의 평설과 집필,
아름다운신 격려와 찬사의말씀들ㅡ, 부족한 이를 깨우쳐 주십니다.감사합니다.
김행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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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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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역시 대장님은 대장님입니다. 설악산 오색약수 가보지 못했지만 간듯합니다. 이번 가을은 한껏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