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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5-10-03 18:44 조회2,11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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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공 선조님에 대한 기록입니다.
왕조실록에도 승문원 판교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다른 자료를 더 검색해 보겠습니다.
 

사마방목

김환(金丸) 

세종(世宗) 24년 (임술, 1442년), 친시(親試) 병과1(丙科1) 

 인적사항

본관(本貫) 안동(安東)

거주지(居住地) 미상(未詳)

 가족사항

부(父) 김우주(金遇周)

조부(祖父) 김약(金瀹)

증조부(曾祖父) 김사렴(金士廉)

외조부(外祖父) 유위(柳衛)

처부(妻父) 이백연(李伯衍)

 이력 및 기타사항

전력(前歷) 사정(司正)

관직(官職) 판교(判校)


조선왕조실록

《 문종 001 00/05/17(경신) / 사은사 조서안·안완경 등이 황제가 준 세자의 면복과 칙서를 가지고 돌아오다 》


  사은사(謝恩使)로 갔던 병조 참판(兵曹參判) 조서안(趙瑞安)과 형조 참판(刑曹參判) 안완경(安完慶) 등이 중국 황제가 준[欽賜] 세자(世子)의 면복(冕服)과 칙서(勅書)를 가지고 북경(北京)에서 돌아오니, 종친(宗親)과 문무 백관(文武百官)들이 모화관(慕華館)에 나아가서 길복(吉服)을 입고 맞이하여 빈전(殯殿)에 이르러 행례(行禮)하기를 평상시의 의식과 같이 하고, 돌아와서 최복(衰服)을 입고 그대로 하례(賀禮)를 행하였다. 조서안 등도 또한 최복(衰服)을 입고 빈전(殯殿)의 문밖에 나아가서 곡(哭)하고 곡을 마치고는 여차(廬次)에 나아가서 복명(復命)하였다. 칙서(勅書)는 이러하였다.

  “왕이 세자(世子)의 면복(冕服)을 나에게 청했는데, 예문(禮文)을 숭상하는 뜻을 갖춰 보겠으므로 말하는 바를 특히 윤허하여 칠장 면복(七章冕服) 1부(一副)를 가지고 가게 하니, 도착되거든 이를 영수(領受)하라. 대저 예절은 상하(上下)를 정할 수 있고 성심(誠心)은 군친(君親)을 받들 수 있는데, 이 명복(命服)의 빛남에 유의(留意)하여 더욱 사대(事大)의 뜻을 견고히 할지니, 왕은 세자(世子)에게 짐(朕)의 뜻을 가지고 이르기를 바란다. 반사(頒賜)하여 주는 물건을 계산하면, 왕세자(王世子)의 면복(冕服) 1부(副), 팔유향 조피사 평천관(八旒香?皺沙平天冠) 1정(頂)【옥행유주금 사건(玉珩旒珠金事件)은 선조(線條)가 갖추어졌음.】, 칠장 견지사 곤복(七章絹地紗袞服) 1투(套), 합계 7건조부(件條副), 심청장화 곤복(深靑粧花袞服) 1건(件), 백소중단(白素中單) 1건(件), 훈색장화 전후상(텛色粧花前後裳) 1건(件), 훈색장화 패슬(텛色粧花蔽膝) 1건(件)【옥구선조(玉鉤線條)가 갖추어 졌음.】 훈색장화 금수(텛色粧花錦綬) 1건(件), 훈색장화 패대(텛色粧花佩帶) 1부(副)【금구(金鉤)·옥행당(玉珩?)이 갖추어졌음.】, 홍백소 대대(紅白素大帶) 1조(條)【청선(靑線) 조조(組條)가 갖추어졌음.】, 옥규(玉圭) 1지(枝)【대(袋)가 갖추어졌음.】, 대홍소저 사석(大紅素紵絲챲) 1쌍(雙)【말(襪)도 갖추어졌음.】, 대홍평라 소금운룡 협포복(大紅平羅銷金雲龍夾包?) 3조(條)이다.”

  조서안(趙瑞安)과 안완경(安完慶)에게 각기 안마(鞍馬)와 노비(奴婢) 3명, 전지(田地) 30결(結)을 하사(下賜)하고, 서장관(書狀官) 김환(金丸)과 통사(通事) 최윤(崔倫)·김유례(金有禮)에게는 각기 전지(田地) 10결(結)을 하사(下賜)하였다.


  【원전】 6 집 236 면

  【분류】 *외교-명(明) / *왕실-사급(賜給) / *왕실-의식(儀式) / *의생활-예복(禮服) / *농업(農業) / *신분(身分)


《 문종 009 01/08/03(무진) / 보령 현감 김환이 하직하니 윤허치 않다 》


  보령 현감(保寧縣監) 김환(金丸)이 하직하니, 임금이 인견(引見)하고 말하기를,

  “수령의 임무란 농사에 힘쓰게 하고 병졸을 훈련시키는 데 불과할 따름이니, 네가 가서 공경히 행하라.”

  하였다.


  【원전】 6 집 417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예종 004 01/02#23(무인) / 선정전에 나아가서 비로소 의식과 같이 정사를 보다 》


  임금이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가서 비로소 의식과 같이 정사를 보았다. 그 의식은 이러하였다.

  “선전관(宣傳官)이 북을 쳐서 세 번 소리를 울리면 산선(찿扇)이 형명(形名) 앞에 선다. 입직(入直)한 병조(兵曹)·도총관(都摠管)·위장(?將)·부장(部將)·도총부 낭관(都摠府郞官)이 전(殿) 안에 들어와서 동서(東西)로 나누고, 내금위(內禁?) 겸사복(兼司僕)은 계단 위에서 동서로 나누어 각각 흰옷을 입고 칼을 차고 선다. 군사는 뜰 밑에서 동서로 나누어 병기와 옷을 갖추고 상시(常時)와 같이 시위한다. 승지·주서(注書)·사관(史官)·전의(典儀) 두 사람이 서합(西閤)을 거쳐서 먼저 뜰에 들어와 겹줄로 서서 북쪽을 향하여 네 번 절하기를 마친다. 승지들은 전내(殿內)에 나아가서 전영(前楹) 한가운데에 당하여 북향하여서 부복하고, 주서와 사관은 전함(前檻) 밖에서 북향하여 부복한다. 의정부·이조·호조·예조·사헌부·한성부·사간원의 계사관(啓事官) 등은 동합(東閤)으로, 종친부·충훈부(忠勳府)·의빈부(儀賓府)·중추부·병조·형조·공조의 계사관 등은 서합(西閤)으로 들어와서 전정(殿庭)의 동쪽과 서쪽의 배위(拜位)에 나아간다. 전의(典儀)·찬례(贊禮)·영의정 이하와 종친 이하가 사배(四拜)를 행하고 동쪽 계단과 서쪽 계단으로 올라서 전내(殿內)의 동쪽 자리와 서쪽 자리로 나아가 동서로 마주 향한다. 참의 등은 전영(前楹)에서 부복하고 승지들은 계사(啓事)를 마친다.”

  영의정 한명회(韓明澮)가 아뢰기를,

  “국전(國典)은 모름지기 일찍 정해서 여러 사람의 이목(耳目)을 하나로 해야 마땅할 것인데, 이제 상정(詳定)을 마치지 못하여 육전(六典)을 반포하지 못하니, 빌건대 속히 상정하소서. 승문원은 사대(事大)·교린(交隣)의 문서를 오로지 맡고 있으므로, 익히는 바 한어(漢語)·이문(吏文) 등의 일은 그 벼슬에 오래 있지 아니하면 능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부정자(副正字)에서 박사(博士)까지 있어 차례로 천전(遷轉)하고 특별히 구임(久任)하지 않았으며, 또 한어를 강하고 이문을 짓게 하여 그 재주가 정(精)하면 올리고, 그렇지 못하면 해가 비록 오래 되었을지라도 올려 쓰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모두 권장하고 힘썼는데, 삼관(三館)의 법이 한 번 폐지되자 바꾸어 나가고 번갈아 들어와서 사람이 오래 있을 계책이 없으니, 오로지 업을 익히지 아니합니다. 청컨대 예전 법을 세우소서.”

  하니, 임금이 능성군 구치관(具致寬)을 돌아보며 물었다. 구치관이 아뢰기를,

  “이문과 한어를 밝게 아는 자는 지금 단지 김환(金丸) 등 몇 사람뿐입니다. 만일 이들이 없으면 사대 문서(事大文書)를 아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도승지 권감(權톯)에게 이르기를,

  “오늘 계달한 일을 여럿이 의논하여 아뢰라.”

  하고, 조회를 파하였다. 숭문당(崇文堂)으로 이어(移御)하여 한명회·구치관·권감 등을 불러 두 능(陵)과 봉선사(奉先寺)를 영조(營造)하는 일을 의논하고, 인하여 동부승지 이숭원(李崇元)에게 명하여 천릉소(遷陵所)에 가서 공역(功役)하는 모든 일을 살피게 하고, 겸하여 천릉 도감 제조(遷陵都監提調) 등에게 선온(宣춠)을 하사하였다.,


  【원전】 8 집 343 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신증동국여지승람

남포현 藍浦縣


동쪽으로는 홍산현(鴻山縣) 경계까지 49리이고, 남쪽으로는 비인현(庇仁縣) 경계까지 40리이고, 서쪽으로는 해안(海岸)까지 7리이고, 북쪽으로는 보령현(保寧縣) 경계까지 9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4백 47리이다.

【건치연혁】 본래 백제의 사포현(沙浦縣)이었는데, 신라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서림군(西林郡)의 속현으로 삼았고, 고려 현종(顯宗) 9년에 가림현(嘉林縣)에 붙였다가,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신우(辛禑) 때에 왜구(倭寇)의 침입으로 인하여 백성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으므로 공양왕(恭讓王) 2년에 진성(鎭城)을 설치하고, 유리해 흩어진 백성들을 불러 안집(安集)시켰다. 본조 태조 6년에 병마사 겸 판현사(兵馬使兼判縣事)를 두었더니, 세조 12년에 진(鎭)은 혁파하고 다른 예와 같이 현감으로 하였다.

【관원】 현감ㆍ훈도 각 1인.

【군명】 사포(寺浦)ㆍ마산(馬山).

【성씨】본현 임(任)ㆍ백(白)ㆍ이(李)ㆍ유(庾)ㆍ현(玄)ㆍ문(門).

【형승】 청연포(靑淵浦)는 바다와 통하고, 옥마산(玉馬山)은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김환(金丸)의 시다. 지련창해(地連蒼海) 고득종(高得宗)의 시에, “땅이 다함에 창망한 바다와 연하였고, 마루 창을 여니 푸른 산과 마주본다.” 하였다

 

댓글목록

김용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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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대부 감사함니다.  그런데 보학사전에는 승문원엔 판교 라는 직제가 있는데 승정원은 판교 라는 직제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