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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의난 진압과 서남해안 공도령(김방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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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10-15 16:53 조회1,89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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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과 임자도 역사 - 섬지방 최대의 사건,空島令 | 신안군 임자도 2005/04/02 19:19 

http://blog.naver.com/ddubugie/140011584001

공도령과  신안군의 무인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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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죽고 새왕으로 원종이 등극하였다. 그는 몽고에 항복하기로 하고 당시 무인정권의 실력자이던 최씨 일파를 제거하였다. 그리고 개경으로의 환도를 추진하면서 최씨정권의 사병이었던 삼별초에 대해 해산을 명하였다.

삼별초는 해산령에 불응하는 한편 몽고에의 항복을 거부하였다. 그들은 왕족이던 승화후 [온]을 새 왕으로 추대하고 선함 1000여척에 물자와 자녀들을 싣고 서해안을 따라 남하,진도에 들어가 몽고와의 전쟁을 계속하였다.

조정이 둘로 갈라졌다. 삼별초 조정에서는 진도에 용장산성을 축조하고 부근 남해안 30여개의 섬을 거점으로 삼아 남해안 일대를 장악하고 장기전을 치를 태세를 갖추었다. 그들은 전라 경상 남해안 지역 주민들에게 농작물을 수확한 다음 섬으로 입보하여 몽고군과 싸우도록 명령하였다. 또한 멀리 동래,김해,창선,거제도까지 수시로 왕래하며 선박과 곡식을 징발함은 물론 개경 조정의 군사들과 전투를 벌였다.


개경의 조정에서는 삼별초 토벌을 위해 김방경을 역적추토사(逆賊追討使)로 임명하였다. 김방경은 그해 12월 군사를 이끌고 진도로가 삼별초군과 전투를 벌였다.

김방경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였다. 그는 진도 주위의 섬들 백성이 삼별초 지원을 차단하고 진도를 고립시키고자 하였다. 그를 위해 모든 섬들의 백성들을 몽땅 내륙으로 이주시켜 버리기로  결심하였고 주저없이 명령하였다.

[진도 주변 섬 군현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주민들은 육지로 나와 삼별초의 노략질을 피하도록 하라.] 이것을 공도령(空島令)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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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추토사 김방경이 내린  공도령은 임자도를 비롯한 서해안 일대 섬 주민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그들은 책임집행자로 파견되어온 [구당사]라는 관리의 지휘에 따라 조직적으로 대대로 거주하였던 고향땅에서 쫓겨나 정부가 지정한 인접 내륙지방으로 내몰려 가야 했다.

고려시대 서남 연해의 도서 군현은 6개 정도였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고려 후기 일사불란하게 육지로 옮겨갔다. 일사불란한 천읍, 바로 공도령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면 김방경의 공도령에 해당되는 섬들은 어떠한 섬들이었을까 ? 그리고 이들은 어디로 옮겨 갔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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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연해 도서군현 모두는 고려말 조선초 사이에 하나도 남김없이 내륙으로 이주하고 있다. 이 중 진도는 강화정부가 원나라에 항복하고 개경으로 돌아 올 때 섬을 비워 공도가 되었고 압해현과 장산현 등 2개 현은 왜구의 침입에 의해 섬을 비웠다고 되어있다. 나머지 임치,흑산,갈도현은 언제 이주하였을까. 이들의 천읍은 삼별초의 난 당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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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이 동지밀직사로 원나라에 갔었는데 ...'황제께서 고려 여러 섬들의 백성을 육지에 나가 살라 하였는데 고려에서는 다시 섬에 살도록 하고 구당사를 섬에 파견하였다' 질책하였다.

박항이 대답하기를 '황제의 명령에 따라 강화로부터 옛서울로 나왔다. 그러나 섬들에 사는 백성들에게는 육지로 나오라는 지시가 있지않았다. 다만 삼별초가 난을 일으켜 진도와 탐라에 의거(1270-1273)하였기에 초토사 김방경이 전라 경상도 내 반적들의 거점에 가까운 섬들에 대하여 육지로 나와 노략질을 피하라고만 지시 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을 안착시키기 위하여 勾當使를 파견하였다' 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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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선조의 역사서들은 도서 군현의  천읍 사유를 삼별초의 난 때문이 아니라 왜구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장산도와 압해도 주민들이 왜구들에게 그들의 터전을 빼앗기고 내륙에 이주하였다]고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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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방은 주민이 떠남으로써 수천년 이어져 내려오던 섬의 전통과 문화까지 일거에 사라지게 되었다. 실로 공도령 발령은 섬 주민들이 수천년 역사의 전과정을 통해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뿌리째 뽑아버린 섬지방 사상 최대의 돌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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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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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눈에 띄어 옮겨 보았습니다. 논리의 비약이 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당시의 상황을 알수 있는 내용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