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원공 연보자료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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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10-20 23:51 조회1,503회 댓글1건본문
김사형(金士衡)
1341(충혜왕복위2)∼1407(태종7).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평보(平甫), 호는 낙포(洛圃).
(1세) 1341년 충혜왕복위2
○김천(밀직부사 역임)과 현풍곽씨(곽원진의 딸, 후에 삼한국대부인에 추증) 사이에 1녀 4남(허강에 출가, 사겸, 사렴, 사안, 사형)중 막내로 1341년 태어났다.
○조부 김영후(50세) 1341년(충혜왕복위2) 6월 조적의 난으로 왕이 원도(元都)에 갔을 때 간신들이 변란을 꾸몄으나, 삼사우사로서 왕을 시종한 공으로 정승 채하중, 상락(上洛)부원군 김영돈(金永旽), 언양군 김륜(金倫), 김해군 이제현, 성산군 이조년, 첨의평리 한종유 등과 1등 공신으로 봉해져 벽상에 그들의 화상을 그리게 하고 그 부모와 처는 세 등급을 올려 작위를 주고 아들 한 명에게 7품직을 제수받고, 아들이 없으면 조카나 생질에게 대신 줄 것이며 사위는 8품 직을 주고 토지 1백 결(結)과 노비 10명을 받았다.
또한 영창군(永昌君) 김승택(金承澤) 등은 2등 공신으로 정하며 부모와 처는 세 등급을 올려 작위를 주고 아들 한 명에게 8품 직을 제수받고, 아들이 없으면 그 대신 사위에게 9품 직을 제수하고 토지 70결과 노비 5명을 받았다.
*외조부 곽원진(郭元振) : 생몰년 미상.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현풍. 호는 석천(石川). 아버지는 밀직부사를 지낸 돈효(敦孝)이며, 어머니는 조운경(趙雲卿)의 딸이다.
문과에 급제하고 1306년(충렬왕 32) 총랑(摠郎)으로서 원나라에 성절사로 파견되었다. 1310년(충선왕 2) 좌대언(左代言)을 거쳐 성균좨주 진현관제학(成均祭酒進賢館提學)에 이르렀다.
*아버지 김천은 생몰년 미상(김영후1292~1361 ⇒ 1김천?1312~ ⇒ 2김사렴1335~1405). 고려조에 봉익대부 부지밀직사사 상호군을 지냈으며, 관직이 밀직부사에 이르렀고, 원나라로부터 승무랑 자승고경점의 벼슬을 선수받기도 하였다. 정도전의 아버지 정운경(1305~1366)과 교유가 있었다. 또 후일 조선조에서 보국숭록대부 영삼사사에 추증되고 상락군에 봉해졌는데, 이는 아들 익원공(김사형)의 勳貴로 인함이다.
<삼봉집> 제1권 /오언고시(五言古詩) 정도전(鄭道傳)
차운하여 우시중 상락백 좌하에 올리다[次韻拜獻右侍中上洛伯座下]
*상락백은 바로 김사형(金士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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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자는 숙계가 있었으니 / 小子忝夙契
멀찍이 저 두 분 존옹에게서 / 遠自兩尊翁
*두 분 존옹은 정상서(鄭尙書) 운경(云敬)과 김밀직(金密直) 천(蕆)을 두고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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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경(鄭云敬) : 1305(충렬왕 31)∼1366(공민왕 15). 고려의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봉화현 호장 공미(公美)의 증손으로,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균(均)의 아들이며, 조선 개국공신인 도전(道傳)의 아버지이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집에서 자랐으며, 어려서 영주(榮州)와 복주(福州)의 향교에서 수학한 뒤 개경에 올라와 십이도(十二徒)와 교유하며 이곡(李穀) 등과 사귀었다.
1326년(충숙왕 13)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어 1330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상주목 사록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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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상황>
○1341년에는 종래의 은병(銀甁) 통용을 금하고 한개가 오종포(五綜布) 15필에 해당하는 소은병(小銀甁)을 통용하게 하였다. 그리고 원나라에게 쌍성(雙城: 지금의 영흥)·여진·요양(遼陽)·심양(瀋陽) 등지에 유입한 고려인의 쇄환(刷還)을 요청하였다.
그해 이학도감(吏學都監)을 설치하였으며, 5도에는 염장도감(鹽場都監)을 설치하였다가 얼마 뒤에 폐지하였다.
○이제현(李齊賢)
1339년 조적(曹頔)의 난이 일어난 끝에 충혜왕이 원나라에 붙잡혀가자 그를 좇아 원나라에 가서 사태를 수습하여 왕이 복위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수년간 조적의 여당(餘黨)에 눌려 두문불출하였는데, 그동안 《역옹패설 #역10翁稗說》을 저술하였다.
*이제현(李齊賢) : 1287(충렬왕 13)∼1367(공민왕 16). 고려 후기의 학자·정치가.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지공(之公). 자는 중사(仲思), 호는 익재(益齋)·역옹(#역10翁).
○이색(李穡), 1341년(충혜왕 복위 2)에 진사가 되었다.
*이색(李穡) : 1328(충숙왕 15)∼1396(태조5). 고려말의 문신·학자.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영숙(穎叔), 호는 목은(牧隱).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찬성사 곡(瑴)의 아들로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이다.
댓글목록
김태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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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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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가을비가 촉촉히 내리는 아침이네요.
내리는 빗소리를 벗삼아
이렇게 할아버님의 업적을 대하는 지금이
더할수 없는 큰 즐거움의 시간이 아닌지...
그저 왠지 모를 설레임에...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생길것 같은 날
주회 아저씨께서도 따스한 커피한잔과 함께
깊어가는 이 멋진 가을을 음미해보시는 시간이 되시길
아름다운 추억 많이 모으시고
늘 건안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