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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성(金世聲) 묘표 및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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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5-10-29 07:18 조회1,98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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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성(金世聲) 묘표

 

소 재 지 : 경기도 철원군 갈말읍(葛末邑) 동막리(東幕里) 山(華岳洞)

건립연대 : 1718년(숙종 44)

   찬    : 김숙(金潚)

 전면서  : 박필모(朴弼謨)

 음기서  : 박태유(朴泰維) 집자(集字)

비규모(碑規模): 총고 239cm, 비고 157cm, 폭 64cm, 후 27cm

서자경(書字徑): 전면(前面) 8.0cm, 음기(陰記)3.0cm,

재질(材質)    : 개석(蓋石) 화강암, 비신(碑身) 화강암, 대석(臺石) 화강암


김세성 묘표는 내대리에서 양지리로 가는 국도에서 화악동으로 우회전하여 군부대를 통과하면 행정반 앞 산에 있다.

1718년에 건립된 이비는 비좌 개석(碑座蓋石)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개석은 팔작지붕이고 대석은 당초문(唐草紋)과 국화문(菊花紋)ㆍ복연(覆蓮)이 있다.

비의 마멸 상태는 양호하나 총탄 흔적이 앞면 2곳, 좌측면 13곳, 뒷면 3곳이 남아 있으며, 묘소는 정부인 밀양박씨(密陽朴氏)와 합장. 상석ㆍ혼유석ㆍ계체석이 있고 육각형 향로석은 분실되어 그 흔적만 남아있다.

김세성(1630~1699)은 조선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영숙(永叔) 증영의정 요동백(遼東伯) 휘 응하(應河)의 손자이며, 증호조참판 시연(時鍊)의 아들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산중으로 병난을 피하여 바위굴 속에서 살았는데 마마와 홍역에 걸려서 간신히 생명을 보전하였다. 자라면서 더욱 병치레를 많이 하여 과거 공부를 폐(廢)하였다.

1697년(숙종 23) 준원전참봉(濬源殿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노병(老病) 때문에 사양하엿고, 1699년(숙종 25) 재상(宰相)이 경연에서 아뢰어 특별히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수여하고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와 오위장(五衛將)에 임명하였다.

이해 6월 한성(漢城)의 낙선방(樂善坊)에서 사망하였다.

후에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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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면 탁본(6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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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면 탁본(27*157,  6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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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묘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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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묘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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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표 비문 일부

 

<참고자료 : 철원금석문대관>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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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감사합니다. 홈에 올리겠습니다. 오늘저녁엔 상석대부님과 괴산으로 내려가고, 내일은 세덕사에서 시제 봉행합니다. 홈에 들어오기 어렵습니다. 살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