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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급제자(3)-김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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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5-11-10 16:43 조회1,420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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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돈(金 墩) 1385(우왕11)∼1440(세종22).

  조선 초기의 문신·과학자. 할아버지는 참의 후(厚)이며, 아버지는 칠양(七陽-군사공)이다.

1417년(태종 17)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직제학과 승지를 거쳐 벼슬이 참판·좌승지·인순부윤(仁順府尹)에까지 이르렀다. 세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그의 이름을 듣고 불렀으나 사양하였다.

  급제하자 임금이 “내가 경을 보고자 하였으나 경이 나를 피하더니 이제는 나의 신하가 되었구나!”라고 기뻐하였다 한다.

  1428년(세종 10) 왕명으로 《서한이하역대보계도 西漢以下歷代譜系圖》를 찬진하고, 종학박사와 사성을 역임하였다.

  1434년(세종 16)에 필체가 좋아서 집현전 직제학으로서 그가 쓴 글로 동활자인 갑인자의 주조에 참여하였는데 속칭 위부인자(衛夫人字)라 하였다. 이듬해(1435년)에는 집현전 부제학으로서 불교의 폐단에 대하여 왕에게 상소하였고, 그 뒤 부승지가 되었다.

  1438년 도승지가 되었으며, 탐라에 있는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여러 차례 외직을 원하였으며, 특히 역마를 보내어 탐라에 있는 어머니를 서울로 모시고 와서 봉양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한편, 천문관측에 정통하여 간의대(簡儀臺)와 보루각(報漏閣)을 만들 때도 참여하였다. 한때 귀양가는 이숙번(李叔蕃)이 순금띠를 주면서 자신의 구출을 의뢰하자, 여러 방법으로 구출을 모색하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세종의 명으로 김조(金兆)와 함께 천추전(千秋殿) 서편 뜰에다 흠경각(欽敬閣)을 창설하고, 종이를 뭉쳐서 산을 만들되 높이가 일곱자 되게 하고, 또 그 안에 옥루기(玉漏器)를 설치하여 바퀴물로써 돌게 하였는데, 해의 도수와 그림자 누수(漏水)의 시각이 하늘의 운행과 조금의 차이도 없었다고 한다.  산의 사방에는 사시(四時)의 경물(景物)과 사람·새·짐승·초목의 형상을 만들어 그 절후에 맞추어놓아 백성이 농경의 어려움을 알도록 하였다.

  또, 누기(漏器)를 설치하고 이름을 ‘보루각’이라 하고 이층으로 만들어 삼신(三神)을 그 위에 설치하였는데, 시간을 알릴 때는 종을, 경(更)을 알릴 때는 북을, 점(點)을 알릴 때는 징을 울리게 만들었다.

  승지로 7년 동안이나 있으면서 논변이 상세하고 분명하였으며, 집현전출신으로 박학다식하고, 특히 과학기기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학자이었다.


 <동방급제자>

태종17년 식년시때는 33명의 합격자를 냈다. 

이름 생년 자 호 본관 합격등급

강제로(姜齊老)    진주(晉州) 同進士15

강흘(姜仡)    진주(晉州) 同進士21

권채(權採) 1399 기묘   안동(安東) 丙科3

김돈(金墩)    안동(安東) 丙科4

김말(金末) 1379 기미   선산(善山) 同進士14

김숙검(金叔儉)    의성(義城) 乙科3

김유(金㽔)    안동(安東) 丙科2   *유:어부룩할 유(艸+豕+生)

김전(金銓)    미상(未詳) 同進士18

김하민(金夏民)    영광(靈光) 丙科7

모순(牟恂)    진주(晉州) 同進士6

민인(閔寅)    영천(榮川) 同進士4

민후생(閔厚生)    여흥(驪興) 同進士19

박이창(朴以昌)    상주(尙州) 同進士17

반제로(潘悌老)    거제(巨濟) 同進士8

배약(裵爚)    미상(未詳) 同進士10

변기종(邊起宗)    미상(未詳) 同進士11

안치(安致)    순흥(順興) 同進士1

여빈주(呂賓周)    미상(未詳) 丙科6

윤상신(尹尙信)    미상(未詳) 同進士23

이세형(李世衡)    강진(康津) 丙科5

이옹(李壅)    양성(陽城) 同進士7

이인손(李仁孫) 1395 을해 중윤(仲胤)  광주(廣州) 同進士20

이행언(李行言)    미상(未詳) 同進士12

정갑손(鄭甲孫)    동래(東萊) 同進士5

정옹(鄭雍)    동래(東萊) 同進士16

조백규(趙白圭)    미상(未詳) 同進士22

조변(趙忭)    미상(未詳) 同進士2

주소(朱邵)    웅천(熊川) 同進士13

진사격(陳思格)    미상(未詳) 乙科2

최치명(崔致明)    미상(未詳) 丙科1

최치운(崔致雲) 1390 경오 백경(伯卿) 조은(釣隱) 강릉(江陵) 同進士9

최통(崔統)    미상(未詳) 同進士3

한혜(韓惠) 1403 계미   청주(淸州) 乙科1


댓글목록

김태서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태서
작성일

  바쁜 하루하루지만 푸른하늘과 맑은 공기를 맘껏 느끼는 가을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김발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발용
작성일

  헉! 충렬공 할아버님의 사위인 조변의 휘가 보이네요. 잠시 놀랐습니다.
 
조변(趙抃)
?∼1288(충렬왕 14). 고려의 문신. 본관은 횡성(橫城). 문하시중 충(冲)의 손자로,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 계순(季珣)의 아들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장인인 김방경(金方慶)의 세력에 힘입어 원종 때 낭장 겸 감찰사에 임명되었다.
일찍이 행수(行首)로서 입직(入直)할 때 밤이 늦어 대궐문이 닫혀 못 들어가자 원종이 문틈으로 들어오라고 명하였으나 이는 도리가 아니라고 거절하여 그 곧음이 당시 사람들에게 알려져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궐직문제(闕直問題)로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271년(원종 12)김방경이 진도의 삼별초를 토벌할 때 장군으로 기용되고, 1274년 여원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할 때 대장군으로 천호(千戶)가 되어 김방경을 따라 출전하여 공을 세웠다.
1281년(충렬왕 7)제2차일본정벌 때 원제(元帝)로부터 소신교위관군총파(昭信校尉管軍摠把)에 임명되고, 1284년 대장군으로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와 우부승지를 거쳐 1287년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에 이르렀다.
그뒤 병으로 면직이 되자 왕은 그의 사위 유서(庾瑞)를 낭장으로 임명하여 위로하기도 하였다.
용모가 빼어나고 전고(典故)에 정통하였으며, 성품이 관후하여 원망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조변(趙忭) 
태종(太宗) 17년 (정유, 1417년), 식년시(式年試) 동진사2(同進士2) 
 인적사항
본관(本貫) 미상(未詳)
거주지(居住地) 미상(未詳)
 이력 및 기타사항
전력(前歷) 유학(幼學)
관직(官職) 현령(縣令)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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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충렬공의 사위 조변은 장인(김방경)보다 먼저 1288년 돌아가신 것으로
되어 있으니 태종때 김돈선조님과 동방급제자는 동명이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