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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25-3) 왜놈 죽인 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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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02-04-08 19:03 조회2,0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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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놈 죽인 실황 계속 됩니다.



식사를 마치고 일의 조처에 착수했다.



왜놈을 싣고 온 뱃사람 7명이 문 앞에 엎드려 죄를 청하였다.



"소인들은 황주에 사는 뱃사람들인데 왜놈을 싣고 진남포까지 배삯을 작정하여 가던 죄밖에 없습니다."



나는 뱃사람들에게 명하여 왜놈의 소지품 전부를 가지고 오도록 했다. 소지품을 조사해 본 결과,



그 왜인은 쓰치다(土田讓亮)라는 자였고 직위는 육군 중위였다. 가진 돈이 엽전 800냥 남짓 되었다.



그 돈으로 뱃삯을 지불하고, 이화보를 시켜 동네의 동장을 불러오라 했다. 그러자 이화보가



말하기를,



"소인, 명색이 동장이올시다."



했다. 동네의 극빈한 집에 그 나머지 돈을 모두 나눠주라고 명령했다.



"왜놈의 시체는 어찌하오리까?"



하고 물으므로 이렇게 분부하였다.



"왜놈들은 우리 조선의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생물들의 원수니, 바다 속에 던져서 물고기와



자라들까지 즐겁게 뜯어먹도록 하라."



그런 다음 이화보에게 필기구를 갖고 오게 해서 몇 줄의 포고문을 썼다.



먼저 왜놈 죽인 이유를 "국모보수(國母報讐)의 목적으로 이 왜인을 죽이노라"고 밝히고, 마지막 줄에



"해주 백운방 텃골 김창수(金昌洙)"라고 써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 벽에 붙였다.



그리고 다시 이화보에게 명령하였다.



"네가 이 동네 동장이니 안악 군수에게 사건의 전말을 보고하라. 나는 내 집으로 돌아가서



연락을 기다리겠다. 기념으로 왜놈의 칼은 내가 가지고 가겠다.



출발하려고 보니, 전신 의복꼴이 말이 아니었다. 흰옷이 피로 물들어 붉은 옷으로 변해 있었다.



다행히도 벗어 걸어두었던 두루마기가 보였으므로 그것을 입고 허리에 칼을 찼다.



한가로워 보이는 태도로 행객들과 동네사람 수백 명이 모여 쳐다보는 사이를 지나



귀로에 올랐다. 겉으로는 태연자약하였으나 마음속으로는 매우 조급하였다.



만약 동네사람들이 나를 가지 못하게 막는다면, 사실을 설명할 기회도 없이



왜놈들이 와서 나를 죽이고 말 것이다.



"네가 복수를 하였든지 무엇을 하였든지 우리 동네에서 살인을 하였으니 네 스스로 일을 해결하고 가라."



만약 이렇게 나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이것은 내 생각이었을 뿐이지,



그 사람들 중 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할 자는 없었을 것이다.



발길을 일부러 천천히 옮겨 고개 위에 올라서서 곁눈으로 치하포를 내려다보니,



사람들이 여전히 모여 서서 내가 가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시간은 어느덧 흘러



아침해가 높이 올라와 있었다.



고개를 넘은 후에는 빠른 걸음으로 신천읍에 도착하였다. 그날은 신천읍 장날이었다.



시장 이곳 저곳에서 치하포 이야기가 들렸다.



"오늘 새벽 치하포 나루에 어떤 장사가 나타나서 일본사람을 한 주먹으로 때려 죽였다지."



"그래, 그 장사하고 같이 용강에서부터 배를 타고 왔다는 사람을 만났는데, 나이 스물도



채 못 되어 보이는 소년이더군. 강 위로 빙산이 몰려와서 배가 그 사이에 끼여 다 죽게 되었는데,



그 소년 장사가 큰 빙산을 손으로 밀어내고 배에 탄 사람들을 다 살렸다던데.



게다가 그 장사는 밥 일곱 그릇을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먹더군."



이런 말을 듣다가 신천 서부에 사는 동학당 친구 유해순(柳海純)을 찾아갔다.



유씨가 한참 후에 "형의 몸에서 피비린내가 난다" 하며 자세히 보더니,



"의복에 웬 피가 이다지 많이 묻었소?" 하고 물었다. 나는 대강 둘러댔다.



"길에 오다가 왜가리 한 마리를 잡아먹더니 피가 묻었소이다."



그러나 유씨는 다시 물었다.



"그 칼은 웬 것이오?"



"여보, 노형이 동학 접주 노릇할 적에 남의 돈을 많이 강탈하여 두었다는 말을 듣고



내가 강도질하러 왔소."



그러나 유씨는 또다시 물으며, 사실 이야기를 하라고 졸랐다.



"동학 접주가 아니고서 그런 말을 하여야 믿지요. 어서 사실대로 말해보시오."



나는 대강 지난 일을 말해주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유해각(柳海珏)·유해순 형제는



크게 놀라면서, 과연 쾌남아다운 행동이라 하였다. 그리고 내게 강권하기를, 본가로는



가지 말고 다른 곳으로 피신하라 하였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사람의 일은 모름지기 밝고 떳떳하여야 하오. 그래야 사나 죽으나 값이 있지,



세상을 속이고 구차히 사는 것은 사나이 대장부가 할 일이 아니오."



곧 떠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님께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일일이 보고하니 부모님



역시 피신할 것을 애써 권하셨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내가 왜놈을 죽인 것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한 일이 아니라 국가적 수치를 씻기 위해 행한 일이니 정정당당하게 대



처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피신할 마음이 있었다면 애시당초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미 실행한 이상



자연히 법사(法司)에서 사법적인 조치가 있을 터이니 그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이 한 몸 희생하여 만인을 교훈할 수 있다면 죽더라도 영광된 일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집에 앉아서 마땅히 당할 일을 당하는 것이 의로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아버님도 다시 강권을 아니하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 집이 흥하든 망하든 네가 알아 하여라."









▣ 김은회 -

▣ 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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