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25-2) 왜놈 죽인 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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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02-04-08 18:59 조회1,757회 댓글0건본문
왜놈 때려 죽인 실황 (2) 계속됩니다.
아랫방에 먼저 도착하여 제일착으로 밥상을 받은 사람이 숟가락질을 시작했다.
그러나 자던 입에 새벽밥이라고 밥이 제대로 넘어갈 리가 없었다.
삼분의 일도 채 못 먹고 있을 즈음, 나중에 밥상을 받은 나는 네댓 숟갈로
한 그릇 밥을 다 먹어치웠다. 일어서서 주인을 부르니 골격이 준수하고 나이
약 37, 8세나 되었음직한 사람이 문 앞에 와서 물었다.
"어느 손님이 불렀소?"
나는 주인을 보고 말했다.
"내가 좀 청했소이다. 다름 아니라 내가 오늘 700여 리나 되는 산길을 걸어서 넘어가야 하는데,
아침을 더 먹고 가야겠으니 밥 일곱 상(7인분)만 더 차려다 주시오."
주인은 아무 대답 없이 나를 보기만 하더니, 내 말에는 대답도 아니하고 방 안에서
아직 밥을 먹고 있는 다른 손님들을 보고서 이렇게 말했다.
"젊은 사람이 불쌍도 하다. 미친놈이군."
이 말 한마디를 하고는 안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한켠에 드러누워서 방안 사람들의
평판과 분위기를 보면서 왜놈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방안에서는 두 갈래 논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중 유식하게 보이는 청년들은
주인의 말과 같이 나를 미친 사람이라 했고, 식후제일미(밥 먹고 난 후 피우는 담배의 맛)로
긴 담뱃대를 붙여 물고 앉은 노인들은 이 청년들을 나무라며 말했다.
"여보게, 말을 함부로 말게. 지금인들 이인이 없으란 법 있겠나? 이런 말세에는
마땅히 이인이 나는 법일세."
청년들이 대번에 그 말을 받아 대꾸했다.
"이인이 없을 리 없겠지만, 저 사람 생긴 꼴을 보세요. 무슨 이인이 저렇겠어요?"
그 왜놈은 별로 주의하는 빛도 없이 식사를 마치고 중문 밖에 서서 문기둥을 의지하고
방안을 들여다보며 총각아이가 밥값을 계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서서히 몸을 일으켜 크게 호령하며 그 왜놈을 발길로 차서 거의 한 길이나 되는 계단 밑으로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바로 쫓아 내려가서 놈의 목을 힘껏 밟았다.
세 칸 객방의 앞쪽 출입문이 아랫방에 한 짝, 가운뎃방의 분합문 두 짝, 윗방에 한 짝,
합해서 모두 네 짝인데, 이 방문 네 짝이 일제히 열리면서 문마다 사람머리가 다투어 나왔다.
나는 몰려나오는 사람들을 향하여 간단하게 한 마디로 선언하였다.
"누구든지 이 왜놈을 위하여 내게 달려드는 자는 모두 죽이고 말리라."
선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금 내 발에 채이고 밟혔던 왜놈이 새벽 달빛에 칼빛을
번쩍이며 달려들었다. 얼굴로 떨어지는 칼을 피하면서 발길로 왜놈의 옆구리를 차서
거꾸러뜨리고 칼 잡은 손목을 힘껏 밟으니 칼이 저절로 땅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그 왜놈을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점점이 난도질했다. 아직 2월 날씨라 마당은 빙판이었는데,
피가 샘솟듯 넘쳐서 마당으로 흘러내렸다. 나는 손으로 왜놈의 피를 움켜 마시고,
그 피를 얼굴에 바르고, 피가 떨어지는 칼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가 호통을 쳤다.
"아까 왜놈을 위하여 내게 달려들려고 하던 놈이 누구냐?"
방안에 있던 자들 중 미처 도망가지 못한 자들은 모두 엎드러져서 빌기 바빴다.
"장군님, 살려 주시오. 나는 그놈이 왜놈인 줄 모르고 보통 싸움으로만 알고 말리려고 나갔던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제 배위에서 장군님과 같이 고생하던 장사꾼입니다. 왜놈과 같이 오지도 않았습니다."
노인들은 겁이 나서 벌벌 떨면서도 아까 청년들을 책망하며 나를 편들어 준 일로 떳떳이
가슴을 내밀고 말했다.
"장군님, 아직 지각이 없는 청년들을 용서하십시오."
이러는 가운데 주인 이화보(李和甫)가 왔다. 그는 감히 방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방
바깥에 엎드려서 빌었다.
"소인이 눈은 있지만 눈동자가 없어 장군님을 멸시하였으니, 그 죄 죽어도 여한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 왜놈에게는 다만 밥 팔아먹은 죄밖에 없습니다. 아까 장군님을 능욕하였으니
죽어도 마땅합니다."
나는 방안에 꿇어 엎드린 채 떨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일어나 앉으라고 명하고 주인
이화보에게 물었다.
"네가 그놈이 왜놈인 것은 어떻게 알았느냐?"
"소인이 나루터 객주를 하는 탓에 진남포로 내왕하는 왜인들이 종종 제 집에서 자고 다닙니다.
그러나 한복을 입고 오는 왜인은 오늘 처음 봅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이 왜인은 복색뿐만 아니라 조선말도 능한데 네 어찌 왜인인 줄 알았느냐?"
"몇 시간 전에 황주(黃州)로부터 온 목선 한 척이 포구에 들어왔는데, 뱃사람들의 말이
일본 영감 한 분을 태워왔다고 하기에 알았습니다."
"그 목선이 아직 포구에 머물러 있느냐?"
"그렇습니다."
나는 그 뱃사람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문답하는 가운데, 눈치 빠른 이화보는 일변 세면도구들을 들여오고,
그런 다음 밥 일곱 그릇을 한 상에 놓고, 다른 한 상에는 반찬을 차려 들여놓고서
먹기를 청하였다. 나는 얼굴을 씻고 밥을 먹게 되었다.
밥 한 그릇을 먹은 지 10분 정도밖에 안 되었으나, 과격한 행동을 한 뒤라서 한두 그릇쯤은
더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곱 그릇까지 먹는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도 애시당초 일곱 그릇을 더 요구한 것이 거짓말로 알려져서는 재미없는 일이라
큰 양푼 한 개를 청하여 밥과 반찬을 한 군데에다 붓고 숟가락 한 개를 더 청하였다.
숟가락 두 개를 포개 들고서 밥 한 덩이가 사발통만큼씩 되게 밥을 떠먹었다.
곁에서 보는 사람 생각으로는 몇 번만 더 뜨면 그 밥을 다 먹겠구나 하도록 보기 좋게
한 두어 그릇 분량을 먹다가 숟갈을 던지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늘은 먹고 싶었던 원수의 피를 많이 먹었더니 밥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 김은회 -
▣ 김항용 -
아랫방에 먼저 도착하여 제일착으로 밥상을 받은 사람이 숟가락질을 시작했다.
그러나 자던 입에 새벽밥이라고 밥이 제대로 넘어갈 리가 없었다.
삼분의 일도 채 못 먹고 있을 즈음, 나중에 밥상을 받은 나는 네댓 숟갈로
한 그릇 밥을 다 먹어치웠다. 일어서서 주인을 부르니 골격이 준수하고 나이
약 37, 8세나 되었음직한 사람이 문 앞에 와서 물었다.
"어느 손님이 불렀소?"
나는 주인을 보고 말했다.
"내가 좀 청했소이다. 다름 아니라 내가 오늘 700여 리나 되는 산길을 걸어서 넘어가야 하는데,
아침을 더 먹고 가야겠으니 밥 일곱 상(7인분)만 더 차려다 주시오."
주인은 아무 대답 없이 나를 보기만 하더니, 내 말에는 대답도 아니하고 방 안에서
아직 밥을 먹고 있는 다른 손님들을 보고서 이렇게 말했다.
"젊은 사람이 불쌍도 하다. 미친놈이군."
이 말 한마디를 하고는 안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한켠에 드러누워서 방안 사람들의
평판과 분위기를 보면서 왜놈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방안에서는 두 갈래 논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중 유식하게 보이는 청년들은
주인의 말과 같이 나를 미친 사람이라 했고, 식후제일미(밥 먹고 난 후 피우는 담배의 맛)로
긴 담뱃대를 붙여 물고 앉은 노인들은 이 청년들을 나무라며 말했다.
"여보게, 말을 함부로 말게. 지금인들 이인이 없으란 법 있겠나? 이런 말세에는
마땅히 이인이 나는 법일세."
청년들이 대번에 그 말을 받아 대꾸했다.
"이인이 없을 리 없겠지만, 저 사람 생긴 꼴을 보세요. 무슨 이인이 저렇겠어요?"
그 왜놈은 별로 주의하는 빛도 없이 식사를 마치고 중문 밖에 서서 문기둥을 의지하고
방안을 들여다보며 총각아이가 밥값을 계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서서히 몸을 일으켜 크게 호령하며 그 왜놈을 발길로 차서 거의 한 길이나 되는 계단 밑으로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바로 쫓아 내려가서 놈의 목을 힘껏 밟았다.
세 칸 객방의 앞쪽 출입문이 아랫방에 한 짝, 가운뎃방의 분합문 두 짝, 윗방에 한 짝,
합해서 모두 네 짝인데, 이 방문 네 짝이 일제히 열리면서 문마다 사람머리가 다투어 나왔다.
나는 몰려나오는 사람들을 향하여 간단하게 한 마디로 선언하였다.
"누구든지 이 왜놈을 위하여 내게 달려드는 자는 모두 죽이고 말리라."
선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금 내 발에 채이고 밟혔던 왜놈이 새벽 달빛에 칼빛을
번쩍이며 달려들었다. 얼굴로 떨어지는 칼을 피하면서 발길로 왜놈의 옆구리를 차서
거꾸러뜨리고 칼 잡은 손목을 힘껏 밟으니 칼이 저절로 땅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그 왜놈을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점점이 난도질했다. 아직 2월 날씨라 마당은 빙판이었는데,
피가 샘솟듯 넘쳐서 마당으로 흘러내렸다. 나는 손으로 왜놈의 피를 움켜 마시고,
그 피를 얼굴에 바르고, 피가 떨어지는 칼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가 호통을 쳤다.
"아까 왜놈을 위하여 내게 달려들려고 하던 놈이 누구냐?"
방안에 있던 자들 중 미처 도망가지 못한 자들은 모두 엎드러져서 빌기 바빴다.
"장군님, 살려 주시오. 나는 그놈이 왜놈인 줄 모르고 보통 싸움으로만 알고 말리려고 나갔던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제 배위에서 장군님과 같이 고생하던 장사꾼입니다. 왜놈과 같이 오지도 않았습니다."
노인들은 겁이 나서 벌벌 떨면서도 아까 청년들을 책망하며 나를 편들어 준 일로 떳떳이
가슴을 내밀고 말했다.
"장군님, 아직 지각이 없는 청년들을 용서하십시오."
이러는 가운데 주인 이화보(李和甫)가 왔다. 그는 감히 방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방
바깥에 엎드려서 빌었다.
"소인이 눈은 있지만 눈동자가 없어 장군님을 멸시하였으니, 그 죄 죽어도 여한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 왜놈에게는 다만 밥 팔아먹은 죄밖에 없습니다. 아까 장군님을 능욕하였으니
죽어도 마땅합니다."
나는 방안에 꿇어 엎드린 채 떨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일어나 앉으라고 명하고 주인
이화보에게 물었다.
"네가 그놈이 왜놈인 것은 어떻게 알았느냐?"
"소인이 나루터 객주를 하는 탓에 진남포로 내왕하는 왜인들이 종종 제 집에서 자고 다닙니다.
그러나 한복을 입고 오는 왜인은 오늘 처음 봅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이 왜인은 복색뿐만 아니라 조선말도 능한데 네 어찌 왜인인 줄 알았느냐?"
"몇 시간 전에 황주(黃州)로부터 온 목선 한 척이 포구에 들어왔는데, 뱃사람들의 말이
일본 영감 한 분을 태워왔다고 하기에 알았습니다."
"그 목선이 아직 포구에 머물러 있느냐?"
"그렇습니다."
나는 그 뱃사람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문답하는 가운데, 눈치 빠른 이화보는 일변 세면도구들을 들여오고,
그런 다음 밥 일곱 그릇을 한 상에 놓고, 다른 한 상에는 반찬을 차려 들여놓고서
먹기를 청하였다. 나는 얼굴을 씻고 밥을 먹게 되었다.
밥 한 그릇을 먹은 지 10분 정도밖에 안 되었으나, 과격한 행동을 한 뒤라서 한두 그릇쯤은
더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곱 그릇까지 먹는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도 애시당초 일곱 그릇을 더 요구한 것이 거짓말로 알려져서는 재미없는 일이라
큰 양푼 한 개를 청하여 밥과 반찬을 한 군데에다 붓고 숟가락 한 개를 더 청하였다.
숟가락 두 개를 포개 들고서 밥 한 덩이가 사발통만큼씩 되게 밥을 떠먹었다.
곁에서 보는 사람 생각으로는 몇 번만 더 뜨면 그 밥을 다 먹겠구나 하도록 보기 좋게
한 두어 그릇 분량을 먹다가 숟갈을 던지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늘은 먹고 싶었던 원수의 피를 많이 먹었더니 밥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 김은회 -
▣ 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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