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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하얼빈에서 Arirang TV를 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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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11-14 23:33 조회1,530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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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12일 (토)

Arirang TV에서 제주도를 소개하는데 “탐라문화의 발상지...” 현판과 삼성혈 사진이 지나가고, 전시관 유리 속 고서 표지 중에 ...寓菴集 , 寓菴集 이 보였다.

화산군(휘 주, 호 寓庵) 선조님 문집이 아닌가 긴장했다. 혹시 화산군의 손자 김지(金志, 1569-1633)가 제주 유배 7년생활(1617-1623) 중에 간행한 것은 아닌지? 김지는 제주 유배 시절 제자가 백여인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혹 그 제자 집안에 전해 오다가 기증된 것은 아닌지?

화산군 문집 寓庵集은 자편(自編)인지 후손에 의해 편찬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시문집(詩文集)으로 가전(家傳)되어 오던 것이 7책이었는데, 왜란(1592-1598)과 호란(1627, 1636)을 겪는 와중에서 대부분 유실되었다고 한다. 현재 전하는 1789년 초간본은 7권1책, 1934년 중간본은 6권3책이다.

삼성혈 인근 박물관이나 전시관 등에 확인해 볼 일이다.


김지(金志) (1569-1633)

1569(신조2)-1633(인조11). 초명은 원(愿), 자 사상(士尙), 호 망세재(忘世齋). 안렴사공 사렴(士廉)의 10세손. 화산군 주(澍)의 손자이다. 정남(正男)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숙부 후남(厚男, 초명 義男)에게 입양하였다.

김지(金志)는 수몽 정엽(守夢 鄭曄, 1563~1625) 선생을 사사(師事)하여 학문이 정심(精深)하였다. 己酉 1609년에 진사과에 급제하였고(丙午 1606년에 진사하여) 이이첨(1560~1623)을 소척(疏斥)하다가 강계에 적거(謫居)하게 되었다. 丁巳 1617년에 반유(泮儒)로서 광해 폐모론을 당하여 상소(上疏)에, 춘추(春秋) 책에 아들은 어머니를 원수로 함이 없다는 의(義)와 경전에 아버지는 비록 사랑치 아니하나 자식은 효(孝) 않을 수 없다는 말을 이끌어서 말함이 심히 강직하니 이이첨 등이 하련(?鍊)으로 옥(獄)을 만들어 여러번 형문(刑問)을 당하였으나 공의 안색이 변치 아니하고, 석서공( ? )이 가로되 신은 태학생(太學生)이라 다만 명륜(明倫) 2字만 알 뿐이라 하고 인하여 탐라로 적(謫) 보낸 7년에 호정(戶庭)에 나오지 아니하고 오직 강학(講學)하는 선비였다. 가르침을 불권(不倦)하니 제자가 백여인에 이르렀다. 또한 癸亥 1623년 인조반정 후에 풀려나 찰방 지평에 임명되었으나 불취하고 그후 대신 연주로 인하여 정충경절로 사헌부 대사헌에 특위 증직되었고 관원을 보내어 致祭하였다. <1956 안동김씨보감>


<寓庵遺集>

김주는 조선 8문장의 한 사람으로 꼽혔던 만큼 많은 작품을 남겨 자편(自編)인지 후손에 의해 편찬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시문집(詩文集)으로 가전(家傳)되어 오던 것이 7책이었는데, 왜란과 호란을 겪는 와중에서 대부분 유실되었다. 다만 남용익(南龍翼)이 만든 기아(箕雅)와 읍지(邑誌)에 저자의 작품이 실려 전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6대손 래가 집안 내에 소장되어 있던 금언응제시(禁宴應製詩), 저자가 방백(方伯)으로 있을 때 관내 주현(州縣)의 정우(亭宇)에 제영(題詠)한 것, 성천도기(成川圖記), 논(論), 표(表) 등을 모으고, 소재집 등에 나오는 저자에 관한 기록과 래의 종질 득현(得顯)이 수집한 자료를 합하여 유사(遺事)를 만들고, 이복원(李福源)의 서(序)를 받아 모두 7권1책으로 엮어 기유년(1789, 정조13)에 목판본(木版本)으로 간행하였다. 현재 규장각과 장서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우암집 정보 감사합니다. 오늘 제주박물관의 지인에게 확인해 보겠습니다.

김영윤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영윤
작성일

  순간의 장면도 놓치지 않는 님의 예리한 관찰력이 귀한 정보를 얻음입니다  보물을 얻는 훌륭한 단서가 되리라 믿습니다

김용주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용주
작성일

  대부님 감사합니다. 멀리 이국땅 에서도 문단공 할아버님의 우암집의 대한 애정 을 보여주셔서 무어라 감사의 뜻을 전하여야 할지,, 얼마 남지않은 상봉의날을 기다리고 있껫 읍니다. 다시한번 감사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