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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에 대하여(7)-배달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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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5-11-19 07:48 조회2,1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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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배달경전

[시작] [천부경] [삼일신고] [366사(참전계경)] [단군팔조교] [영세위법] [신지비사]

우리 배달Paedal 민족의 장대한 역사를 태풍의 격렬한 움직임이라고 한다면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는 가운데 그 태풍의 중심이 되고 있는 태풍의 눈은 배달Paedal의 정신입니다.


그 배달의 정신은 천부경, 삼일신고, 366사(참전계경),단군팔조교 등 십수권의 배달Paedal 민족 고유의 경전에서 설명되는 인류의 보편적진리가 설명합니다. 


천부경, 삼일신고,366사의 전래

교과서에 없는 천부경, 삼일신고,366사 등이 어떻게 지금까지 전래되었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해주신 분들의 요청에 의해 그 자료의 전래내용을 첨부합니다.


1) 한단고기

한단고기는 천부경, 삼일신고의 원문과 366사(참전계경)에 대한 자료 등이 실려 있는 책으로서 이 책이 전래되는 과정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은 곧 이 경전들의 전래와 직접관계가 있다.

고려 말 좌의정을 지낸 행촌杏村 이암선생은 1313년(충선왕5)문과에 급제하고 충선왕이 그를 아껴 부인符印을 맡겨 비성교감秘省敎勘에 임명했다. 그 후 좌정승을 마지막으로 관직에 물러난 인물로 단군세기의 저자이다.


태백일사를 찬한 이맥李陌선생은 행촌 선생의 고손高孫으로 1474년(연산군4)때 문과에 급제했으나 성품이 강직하여 연산군의 미움을 받아 유배되었다 중종반정 때 다시 관계에 진출하여 성균관사예와 사헌부장령을 겸하고 동지돈영부사에 이른 인물이다.

행촌 선생과 이맥 선생은 모두 고성固城이 본관이다. 여기에서 천부경, 삼일신고, 366사의 전래와 직접 연관이 있는 또 다른 고성 이씨인 구한말 사상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이기李沂선생이 소개할 차례이다.


이기李沂선생을 소개함에는 실로 많은 지면이 필요하나 중요한 내용만 간단히 요약하면 을사5조약이 체결된 후 후일 대종교를 창건하였을 뿐 아니라 혁혁한 독립운동가인 나인영(나철)선생과 오기호, 윤주찬, 김인식 등과 함께 을사오적을 주살할 것을 결의하고 자신회自新會를 조직하여 권중현權重顯을 총살하였으나 실패하고, 박제순朴齊純등에 대해서도 살해를 시도했으나 실패하여 진도에 유배되었던 혁혁한 애국독립투사이며 자주를 주장한 유명한 학자이다. 합방을 예견하고 비분을 참지 못하고 단식 끝에 운명을 맞았다한다. 이기선생은 단학회를 조직하여 초대회장을 지냈다.


한단고기를 전한 계연수桂延壽 선생은 이기李沂선생이 한단고기를 직접 감수監修했다고 밝히고 있음으로 스스로 고려 말부터 구한말에 이르는 배달Paedal 사상을 잇는 중요한 갈래의 한 부분을 담당했음을 한단고기에서 밝히고 있다.


계연수桂延壽 선생이 묘향산 단군암에서 한단고기를 쓰는 비용을 역시 혁혁한 독립운동가인 홍범도洪範圖,오동진吳東振선생이 대어주었음을 한단고기는 밝히고 있다.


계연수 선생은 이기 선생의 단학회를 이어받아 만주에서 독립운동단체인 천마대,서로군정서,의민사,벽파대,기원독립단등의 무장독립운동에 대하여 정신적, 사상적 계몽협조를 했다.


1920년 계연수 선생은 일본인 스파이에 의하여 피살되었다.

그 다음 단학회의 한단고기의 전래는 천마대天摩隊대장 최시흥崔始興선생에게 이어졌고 다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이덕수李德秀 선생에 이어졌으나 이덕수 선생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침체되었다.


해방 후 일제에 의해 수감되었던 이용담 선생이 출옥하면서 평양에서 그 맥을 이었으나 기관지 태극에서 신탁통치반대론을 주장함으로서 태극의 주간 이유립 선생이 구속되면서 단학회의 활동은 다시 중단된다.


그 후 이유립 선생이 월남에 성공함으로서 단단학회를 세워 계연수 선생의 한단고기는 다시 세상에 전해질 계기가 생겨났다. 작고하신 이유립 선생은 1979년 한단고기를 세상에 펴낸다.


그러나 1982년 이 이유립 선생의 한단고기가 한글로 번역이 되기도 전에 천만뜻밖에도 일본의 가지마가 일본어로 번역하여 발행을 해서 세상에 펴내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구한말과 일제시대라는 배달Paedal 민족 최대의 암흑기에도 위대한 인물들이 마치 릴레이를 하듯 서로 이어받고 그 가난했던 시기에도 자금을 대고해서 전해진 한단고기가 해방된 조국에서 그것도 소위 단군 이래 가장 잘 살게 되었다는 1980년대 초에 어이없게도 일어로 먼저 번역된 것이다.


자손만대를 위한 소중한 민족적 지적재산이 국내에서 출판되지 못하고 일본에서 먼저 출판되는 수모를 우리 모두는 당한 것이다. 그 시대의 우리는 진정 중요한 일을 하는 인물들이 단돈 몇 푼의 출판자금이 없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를 살았던 한국인중 한사람으로 당시에 한단고기의 존재를 몰랐다 해도 한없는 부끄러움을 가지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한단고기에는 천부경, 삼일신고가 원문 그대로 전해지며 또한 366사는 참전계경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이유립 선생에 의해 전해진다.


한편 이 한단고기는 제대로 된 증거조차 제시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위서로 매도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이 위서라는 보편타당성을 갖춘 주장을 아직 단 하나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만일 제2의 일본인 가지마가 출현하여 한단고기 등에서 전하는 천부경, 삼일신고, 366사(참전계경)를 세계의 문화시장에 내놓고 이를 일본의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어떠할 것인가 ?


과거나 지금이나 일본인은 남의 것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지식정보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정작 우리의 소중한 지적재산이 무언지도 모르는 이 기막힌 현실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이 과연 이 시대에 얼마나 있는지 궁금해진다.


2) 묘향산석벽본妙香山石壁本

천부경 81자에 대한 자료로 잘 알려진 묘향산석벽본은 1917년(丁巳年 正月 初十日) 계연수 선생이 묘향산석벽에 새겨진 천부경을 탑본하여 당시 서울의 단군교 앞으로 서신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군교부흥경략(1937년)에는 이 서신과 함께 천부경 81자가 전해지며 또한 삼일신고의 원문도 전한다.


3) 최문창후 전집

성균관대학교 소장의 최문창후 전집의 고운선생사적孤雲先生事跡에는 천부경 81자의 원문이 기록되어있다. 다만 이 기록에는 한단고기 태백일사와 묘향산 석벽본의 천부경 81자와는 약간 다른 글자가 보인다. 析을 碩,衍을 演,動을 同,昻을 仰,地를 中으로 하는 등의 것이다.


이 두 가지 출처의 내용은 음은 같지만 표기가 틀린 것이 대부분이다.


4) 삼일신고

삼일신고는 발해의 석실본과 천보산 태소암본, 고경각의 신사기본의 세 가지 이본이 전해진다.


5) 366사(참전계경)

366사(참전계경)는 단군교팔리,성경팔리상하,단군예절교훈,참전계경등이 전해진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원

한단고기: 계연수 저 임승국번역,주해 1986년 정신세계사

단군교부흥경략: 정진홍 1937년 계신당

삼일철학역해종경합편: 대종교출판사 1992년

한민족뿌리사상: 송호수 저 1991년 기린원

커발한문화사상사: 이유립 저 1976년 커발한 개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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