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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일기 38---상해 귀양 계림 여행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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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11-27 17:00 조회1,997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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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화) 여행1일차

9시 하얼빈공항 출발. 11:40분 상해푸동(浦東)공항 도착. 최근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푸씨(浦西) 지역내 한 호텔로 이동. 충청북도 주관 BT산업설명회가 열리는 날이다. 상해시는 인구 1,700만명. 유동인구 포함하면 2,000만명에 이름. 한국인은 7만명(4만). 유동인구 포함하면 10만명(5만)으로 최근 격증하고 있다고 함. 푸동 일대는 마천루가 가득하여 고층건물만 4,600개 라고 한다. 시내는 개발이 거의 완료된 상태로 내년도 시정방침이 외곽개발이라고 한다. 충북도청 대표단은 어제 도착해서 (청주공항에서 상해 푸동공항까지 1시간 10분 소요. 왕복 18만원) 황푸쟝(黃浦江) 와이탄(外灘) 야경 구경하고, 오늘 오전 상해시정부 방문과 상해임시정부청사 관람을 위하여 이미 출발한 상태였다. 저녁 6시 설명회 행사 준비로 분주했다. 행사는 비교적 성황리에 원만히 마무리되었다. 지난 8월 16일 부임하신 김양 상해총영사도 참석. 7,80년전 할아버지(백범 김구)께서 독립운동하신 곳에 손자(김양)가 외교책임자로 부임한 것이다.


김양(金揚) 상해총영사

-생년월일 : 1953년 2월 24일생

-직업 : 기업인, 외교관

학력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국 조지워싱턴대 국제관계학 석사

경력

-씨티뱅크 서울지점 부장

-디케이아이 대표이사

-코스닥시장 상장기업 EBT 네크워크 대표이사



11월 16일 (수) 여행2일차

7시 호텔 출발. 3시간 넘어 강소성 쑤저우시(蘇州市) 지나 우씨시(無錫市) 도착. 현대 하이닉스에서 ST반도체와 합작으로 25억불을 투입하여 건설하고 있는 반도체 공장 상량식에 참석. 건설현장과 행사장 주변에는 중국인 노동자들이 가득했다. 날씨 화창하고 잔치 기분이 가득했다. 요며칠째 날씨가 흐렸는데 (이곳 중국에서는 상량식에는 날씨가 맑아야 한다고 함) 오늘은 날씨도 맑고, 멀리 한국에서 건너온 축하객으로 무석시 간부들과 하이닉스 관계자들이 매우 흐뭇해했다. 오찬후 타이후(太湖)와 영산대불을 관람. 명성과는 달리 큰 볼거리는 아니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지고 다시 몇시간을 되돌아와 밤늦게 상해 호텔로 돌아왔다. 

 

11월 17일 (목) 여행3일차

6시 충북도청 대표단이 일정을 모두 마치고 귀국하기 위하여 호텔을 떠나갔다. 직장 상사와 동료들을 외국에서 배웅하는 기분에 잠시 울적해졌다. 나와 동행자 Y는 다음 일정을 위해서 호텔에 남아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상해시에도 볼거리가 많은데 늦게 참석한 죄로 하나도 구경할수 없음이 너무나 아쉬웠다. 虹口공원(현 魯迅공원), 豫園, 新天地, 東方明珠, 外灘, 黃浦江 등등. 동행자 Y를 꼬득여 임시정부청사를 방문하기로 했다. 시간이 없으므로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임시정부청사에 도착했다. 임시정부청사 주변은 모두 번화가로 개발이 끝나 버렸고, 청사 주변 수십M 거리 좌우의 건물만이 옛 모습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청사 입구 표지석부터 회의실, 화장실, 주방, 집무실겸 침실, 정부집무실, 요인숙소, 전람실 등을 두루 관람하였다. 방명록에 서명하고 약간의 성금을 냈다. ‘임시’자가 붙지만 그래도 명색이 정부청사인데 건물이 3층 연립주택 정도로 너무 작고 협소하여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었으나 주변이 모두 개발되어 버린 상태에서 이만큼 이라도 보존되어 있음이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한국 독립기념관과 수많은 단체 개인, 그리고 상해시 노만구 등의 노력 덕분임을 알수 있었다. 성금내역 표지판에 독립기념관 56만불, 삼성 30만불 등이 적혀 있었다. 다만, 상해시 노만구에서 보호 관리하면서 노골적으로(?) 성금을 요구하고 있고, 그 좁은 벽면에도 곳곳에 성금내역 표지판을 붙여 놓고 있어 눈에 거슬렸다.


보경리(普慶里) 4호(현 상해시 노만구 마당로 306롱 4호) 임시정부청사는 1925년에 건설된 중국 근대식 석고문(石庫門) 구조의 건축.

1919년 성립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상해 프랑스 조계 내에서 처음 성립되었지만, 여러 차례 이사를 다녀야 했다. 그러다가 이곳 보경리 4호에 정착하게 된 것은 1926년 7월부터이며, 그후 김구 선생께서 윤봉길 의사를 통해 상해 홍구공원 의거를 일으키는 1932년 4월까지 7년동안이나 이곳에서 활동하였다.

이런 중요한 곳이 그동안 훼멸될 위기에 봉착되어 있다가, 1989년 한국 독립기념관에 의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현장조사가 이루어진후 원래의 모습을 잃지 않게 수리복원 공사를 진행하였다. 수리 복원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지만, 1990년 2월 19일 상해시 노만구 문물보호단위 제174호로 지정되어, 상해시 노만구 대한민국임시정부 옛청사관리처가 책임을 지며 관리하게 되었다. 1993년 4월 13일 공사가 완공되어 이를 알리는 준공식이 거행되었다. 2001년에 다시 대한민국임시정부 옛청사관리처와 한국의 독립기념관의 책임아래 건축물을 재차 수리 개축하면서 전람실 공간을 확대시켜 현재의 모습으로 되었다.


서둘러 공항으로 이동했다. 12시 상해 홍챠오(虹橋)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두시간을 더 날아가 꾸이저우셩(貴州省) 꾸이양시(貴陽市)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11.17일부터 20일까지 개최되는 <제3회 韓中 지방정부 교류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 한국 각 지방정부에서 중국내 각 지방정부에 파견나와 있는 공무원 50여명중 30명 가까이 참석하고, 중국 외교부와 각 지방정부 외사판공실 공무원 40여명이 참석하는 행사로서 한국 국제화재단 북경대표처와 중국 외교부 외사관리사 라는 곳에서 주최하는 행사였다.

나와 처지가 같은 동료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정이라서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귀양 공항에는 귀주성 인민정부에서 직원과 차량을 대기시켜 놓고 손님이 도착하는 대로 호텔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여 등록하고 방을 배정받고 3일동안 방을 함께 쓸 동숙자와 인사했다. 경기도 파주시에서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에 파견나와 있는 J였다. 유럽, 미국, 중국 등 배낭여행 경험이 많은 여행전문가였다. 연배도 비슷하고 가슴에 쌓인 말이 많은지 말을 쏟아내기 시작하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두세시간을 떠들어댔다.

저녁을 먹고 둘이서 귀양 시내 야경 구경을 나갔다. 시내를 흐르는 강 위에 떠 있는 명나라 시대 유적지로 정자 쟈씨우로우(甲秀樓)와 정원을 관람했다. 동숙자 J는 폼나는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시켜 놓고 장면을 찍어내는 폼이 멋있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밤늦게 호텔로 돌아왔다. 베트남과의 국경 바로 위 중국 남단 귀양시에서의 하룻밤이 깊어갔다.


댓글목록

솔내님의 댓글

profile_image 솔내
작성일

  오랫만에 소식 들으니 얼굴 대하는 듯 반갑습니다.
하얼빈에 식수문제가 연일 보도되어서 근심했는데
그만하다니 안심입니다.
상해에는 임정청사, 홍구공원등 백범선생님과 인연 깊은 곳이 많지요
홍구공원(현 노신공원)은 별 볼 것 없지만 그 의미가 크지요
상해총영사로 김양씨(백범손자)있는데 만나보셨다니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부디 몸건강히 귀국할 날을 고대하면서..

김정중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정중
작성일

  뜻깊은 중국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김영윤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영윤
작성일

  오래간만에 보는 주회씨의 중국소식 반갑게 읽었습니다
하얼빈의 식수 오염 보도에 걱정하던차였는데 가족들의 불편이 크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