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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백범일지(20)기구한 젊은 때(9) - 이렇게 호랑이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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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5-12-29 17:38 조회1,56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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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한 젊은 때(9) - 이렇게 호랑이 같은...

배석하였던, 총순인지 주사인지 분명치 아니하나, 어떤 관원이 경무관 김윤정에게 이 사건이 심히 중대하니 감리 영감께 아뢰어 친히 심문하게 함이 마땅하다는 뜻을 진언하니 김 경무관이 고개를 끄덕여 그 의견에 동의한다. 이윽고 감리사 이재정(李在正)이 들어와서 경무관이 물러난 주석에 앉고 경무관은 이 감리사에게 지금까지의 심문 경과를 보고한다. 정내에 있는 관속들은 상관의 분부가 없이 내게 물을 갖다가 먹여준다.

나는 이 감리사가 나를 심문하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를 향하여 입을 열었다.

"나 김창수는 하향 일개 천생이언마는 국모 폐하께옵서 왜적의 손에 돌아가신 국가의 수치를 당하고는 청천백일하에 제 그림자가 부끄러워서 왜구 한 놈이라도 죽였거니와, 아직 우리 사람으로서 왜왕을 죽여 국모 폐하의 원수를 갚았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거늘, 이제 보니 당신네가 몽백(蒙白) - 국상으로 백립을 쓰고 소복을 입었다는 말 -을 하였으니, 춘추대의에 군부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는 몽백을 아니 한다는 구절은 잊어버리고 한갖 영귀와 총록을 도둑질하려는 더러운 마음으로 임금을 섬긴단 말이오?"

감리사 이재정, 경무관 김윤정, 기타 청상에 있는 관원들이 내 말을 듣는 기색을 살피건대 모두 낯이 붉어지고 고개가 수그러졌다. 모두 양심에 찔리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내 말이 다 끝난 뒤에도 한참 잠자코 있던 이 감리사가 마치 내게 하소연하는 것과 같은 음성으로,

"창수가 지금 하는 말을 들으니, 그 충의와 용감을 흠모하는 반면에 황송하고 참괴한 마음이 비길 데 없소이다. 그러나 상부의 명령대로 심문하여 올려야 하겠으니 사실을 상세히 공술해 주시오"

하고 말에도 경어를 쓴다. 이때 김윤정이 내 병이 아직 위험 상태에 있다는 뜻으로 이 감리사에게 수군수군하더니, 옥사정을 명하여 나를 옥으로 데려가라고 명한다. 내가 옥사정의 등에 업혀 나가노라니, 많은 군중 속에 어머니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그 얼굴에 희색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아마 군중이나 관속들에게 내가 관정에서 한 일을 듣고 약간 안심하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중에 어머님께 들은 말씀이어니와, 그날 내가 심문을 당한다는 말을 들으시고, 어머님은 옥문 밖에 와서 기다리시다가 내가 업혀 나오는 꼴을 보시고, 저것이 병 중에 정신 없이 잘못 대답하다가 당장에 맞아 죽지나 않나 하고 무척 근심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내가 감리사를 책망하는데 감리사는 아무 대답도 못하였다는 둥, 내가 일본 순사를 호령하여 내어쫓았다는 둥, 김창수는 해주 사는 소년인데 민 중전마마의 원수를 갚노라고 왜놈을 때려죽였다는 둥 하는 말을 듣고 안심이 되셨다고 하셨다. 나를 업고 가는 옥사정이 어머니 앞을 지나가며,

"마나님 아무 걱정 마시오. 어쩌면 이런 호랑이 같은 아들을 두셨소?"

하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나는 감방에 돌아오는 길로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다. 나를 전과 같이 다른 도적들과 함께 착고를 채워 두는 데 대하여 나는 크게 분개하여 벽력 같은 소리로,

"내가 아무 의사도 발표하기 전에는 나를 강도로 대우하거나 무엇으로 하거나 잠자코 있었다마는 이왕 내가 할 말을 다 한 오늘날에도 나를 이렇게 홀대한단 말이냐. 땅에 금을 그어놓고 이것이 옥이라 하더라도 그 금을 넘을 내가 아니다. 내가 당초에 도망갈 마음이 있었다면 그 왜놈을 죽인 자리에 내 주소와 성명을 갖추어서 포고문을 붙이고 집에 와서 석 달이나 잡으러 오기를 기다리겠느냐? 너희 관리들은 왜놈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내게 이런 나쁜 대우를 한단 말이냐?"

하면서 어떻게나 내가 몸을 요동하였던지 한 착고 구멍에 발목을 넣고 있던 여덟 명 죄수가 말을 더 보태어서 내가 한 다리로 착고를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자기네 발목이 다 부러졌노라고 떠들었다. 이 소동을 듣고 경무관 김윤정이 들어와서,

"이 사람은 다른 죄수와 다르거늘 왜 도적 죄수와 같이 둔단 말이냐. 즉각으로 이 사람을 좋은 방으로 옮기고 일체 몸은 구속치 말고 너희들이 잘 보호하렷다!"

하고 옥사정을 한편 책망하고 한편 명령하였다. 이로부터 나는 옥중에서 왕이 되었다.

이런 지 얼마 아니하여서 어머님이 면회를 오셨다. 어머님 말씀이, 아까 내가 심문을 받고 나온 뒤에 김 경무관이 돈 1백 쉰 냥 - 30 원 -을 보내며 내게 보약을 사먹이라 하였다 하며, 어머니께서 우접하시는 집 주인 내외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랑 손님들까지도 매우 나를 존경하여서 '옥중에 있는 아드님이 무엇을 자시고 싶어하거든 말만 하면 해드리리다' 하더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아홉 사람의 발목을 넣는 큰 착고를 한 발로 들고 일어났다는 것은 이화보를 여간 기쁘게 하지 아니하였다. 대개 그가 잡혀 와서 고생하는 이유가 살인한 죄인을 놓아 보냈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밥 일곱 그릇을 먹고, 하루 7백 리 가는 장사를 어떻게 결박을 지우느냐고 변명하던 그의 말이 오늘에야 증명된 것이었다.

이튿날부터는 내게 면회를 구하는 사람이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감리서, 경무청, 순검청, 사령청의 수백 명 관속들이 내게 대한 선전을 한 것이었다. 인천항에서 세력 있는 사람 중에도 또 막벌이꾼 중에도 다음 번 내 심문 날에는 미리 알려달라고 아는 관속들에게 부탁을 하였다고 한다.

두 번째 심문 날에도 나는 전번과 같이 압뢰의 등에 업혀서 나갔는데 옥문 밖에 나오면서 둘러보니 길에는 사람이 가득 찼고, 경무청에는 각 관아의 관리와 항내(港內)의 유력자들이 모인 모양이요, 담장이나 지붕이나 내가 심문을 받을 경무청 뜰이 보이는 곳에는 사람들이 하얗게 올라가 있었다.

정내에 들어가 앉으니, 김윤정이가 슬쩍 내 곁으로 지나가며,

"오늘도 왜놈이 왔으니 기운껏 호령하시오"

한다. 김윤정은 지금은 경기도 참여관이라는 왜의 벼슬을 하고 있으나 그때에는 나는 그가 의기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였었다. 설마 관청을 연극장으로 알고 나를 한 배우로 삼아서 구경거리를 만든 것일 리는 없으니, 필시 항심 없는 무리의 일이라 그 때에는 참으로 의기가 생겼다가 날이 감에 따라서 변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댓글목록

김태서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태서
작성일

  얼렁뚱땅 일년이 넘어 가고 있습니다
무얼 했는지 늘 후회지만
올해는 후회같은건 하지 않으려 해요.
정신없이 살아가는건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한것이 아닐까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