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김방경(조선왕조실록에서)-3- 세종실록지리지 창원도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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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5-12-30 10:45 조회1,471회 댓글1건본문
◎ 창원 도호부(昌原都護府) |
의창현(義昌縣)은 본디 굴자군(屈自郡)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의안군(義安郡)으로 고치고, 회원현(會原縣)은 본디 골포현(骨浦縣)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합포(合浦)로 고쳐서 의안군(義安郡)의 영현(領縣)을 삼았다. 〈고려〉 현종 9년 무오에 두 현을 모두 금주(金州) 임내(任內)에 붙였다가 뒤에 각기 감무(監務)를 두었는데, 충렬왕(忠烈王) 8년 임오에 의안(義安)을 의창(義昌)으로, 합포(合浦)를 회원(會原)으로 고쳐서 모두 현령관(縣令官)으로 승격시켜, 동정(東征) 때에 공억(供億)한 노고를 상주었다.【원나라 세조(世祖) 지원(至元) 18년 신사에 황제가 원수(元帥) 흔독(欣篤)·다구(茶丘)를 보내어 일본(日本)을 치게 하고, 또 우리 나라 중찬(中贊) 김방경(金方慶)을 관고려군 도원수(管高麗軍都元帥)로 삼아서 흔독 등을 따라 출정(出征)하게 하였다. 4월에 충렬왕이 합포에 거둥하여 몽고·중국·고려의 군사를 크게 사열하고 5월에 모든 군사가 합포를 떠났고, 황제가 또 망한 송나라의 항복한 장수[降將] 범문호(范文虎)로 하여금 오랑캐 군사[蠻軍] 10만 명을 거느리고 강남(江南)을 떠나 일본에 모이기를 기약하였는데, 흔독 등이 패가대(霸家臺)에 이르러 왜군과 싸워서 패하고, 군중(軍中)에 큰 병이 있어 죽는 자가 잇따르고, 범문호가 기한이 지나도록 이르지 이르지 아니하니, 장차 회군(回軍)하기를 의논하던 차, 7월에 범문호가 전함(戰艦) 3천 5백 척을 거느리고 이르렀는데, 얼마 아니 되어 큰 바람을 만나, 배가 파손되어 오랑캐 군사가 모두 빠져 죽고, 8월에 흔독·다구·범문호및 김방경 등이 돌아와 합포에 이르니, 돌아오지 못한 군사가 무려 천만이 넘었다. 이 달에 왕이 경상도로부터 이르고, 흔독 등 3인도 또한 원나라로 돌아갔다.】 본조 태종 8년 무자에 두 현을 합하여 창원부(昌原府)로 만들고, 을미년에 예(例)에 의하여 도호부(都護府)로 고쳤다.【의창(義昌)은 별호(別號)가 회산(檜山)이고, 회원(會原)은 별호가 환수(還殊)이다.】 향(鄕)이 1이니, 내포(內浦)요, 소(所)가 1이니, 동천(銅泉)이다. |
주물연진(主勿淵津)은 부 북쪽에 있다.【낙동강 하류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김해(金海)에 이르기 17리, 서쪽으로 함안(咸安)에 이르기 27리, 남쪽으로 김해(金海) 임내(任內) 웅신(熊神)에 이르기 32리, 북쪽으로 칠원(漆原)에 이르기 24리이다. |
호수는 1천 94호, 인구가 4천 9백 55명이며, 군정(軍丁)은 시위군(侍衛軍)이 52명, 영진군(營鎭軍)이 1백 19명, 선군(船軍)이 6백 89명이다. |
의창(義昌)의 성이 4이니, 공(孔)·황(黃)·박(朴)·현(玄)이요, 내성(來姓)이 3이니, 김(金)·허(許)·정(鄭)이며, 촌성(村姓)이 2이니, 정(丁)·구(仇)이다. 회원(會原)의 성이 4이니, 감(甘)·유(兪)·정(鄭)·현(玄)이요, 내성(來姓)이 2이니, 김(金)·문(文)이며, 촌성(村姓)이 1이니, 제(諸)이다. |
땅이 기름지고 기후는 따뜻하며, 풍속은 거칠고 사나우며 소송(訴訟)하기를 좋아한다. 간전(墾田)이 4천 6백 63결이다.【논이 약간 많다.】 토의(土宜)는 벼·조·기장·콩·보리·뽕나무·삼이요, 토공(土貢)은 꿀·밀[黃蠟]·모래무지[沙魚]·건합(乾蛤)·죽순(竹笋)·죽피방석(竹皮方席)·왕대[簜]·어교(魚膠)·돼지털·사슴가죽·여우가죽·삵가죽·노루가죽·수달피(水獺皮)·칠(漆)이며, 약재(藥材)는 궁궁이[窮芎]다. 토산(土産)은 미역·우무[牛毛]·세모(細毛)·대구어(大口魚)·굴조개[石花]·해삼(海蔘)과 사철(沙鐵)【부(部) 남쪽 악상리(岳上里) 부을무산(夫乙無山)에서 난다.】·연동석(鉛銅石)【부(府) 동북쪽 배사동(背寺洞)에서 난다.】 이다. 염소(鹽所)가 3이니, 모두 부(府) 남쪽에 있고,【염창(鹽倉)이 있고, 염장관(鹽場官)이 감독하고 지킨다.】 자기소(磁器所)가 1이니, 부(府) 북쪽 산북촌리(山北村里)에 있다.【하품이다.】 |
염산 석성(簾山石城)은 부(府) 남쪽에 있다.【높고 험하며, 둘레가 1천 70보인데, 안에는 내[川]가 1, 시내[溪] 1이 있다.】 온천(溫泉)이 부(府) 북쪽 18리 거리의 초미흘(草未訖)에 있다.【욕탕이 3간, 주사(廚舍)가 3간이다.】 벽허루(碧虛樓)는 객사(客舍) 동쪽에 있고, 월영대(月影臺)는 회원(會原) 서쪽 바닷가에 있다. 역(驛)이 4이니, 자여(自如)·신퐁(新豐)·안민(安民)·근수(近殊)이다. 병마 절제사 영성(兵馬節制使營城)은 합포(合浦)에 있다.【바다 어귀까지 4리인데, 둘레가 5백 88보이며, 안에 우물 3이 있다.】 봉화가 3곳이니, 장복산(長卜山)은 부(府) 남쪽에 있다.【동쪽으로 웅신(熊神) 사화랑(沙火郞)에 응하고, 서쪽으로 회원(會原) 여포(餘浦)에 응한다.】 여포(餘浦)【북쪽으로 김해(金海) 완포현(莞浦縣)의 고산(高山)에 응한다.】 성황당(城隍堂)은 예전 회원현(會原縣)의 북쪽에 있다.【동쪽으로 완포(莞浦)에 응하고, 북쪽으로 칠원(漆原) 재곡산(在谷山)에 응한다.】 |
월경처(越境處)는 칠원(漆原) 임내(任內)인 구산현(龜山縣)이 회원(會原)·진해(鎭海) 두 현 사이에 쑥 들어갔다. |
【원전】 5 집 650 면 |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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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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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합포가 창원이 되었군요. 잘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