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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일기 45---남경, 황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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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6-01-06 00:06 조회1,3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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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 (수) 여행 10일차

<역사고도 남경!>

(13시간후) 아침8시 남경역에 도착했다. 기차역이 웅장하고 깨끗하게 새로 건립된 초현대적 청사로 신축공항청사 같았다. 기차역 앞으로는 거대한 호수(현무호)가 펼쳐지고, 지하에는 남경지하철이 연결되어 있었다(남경에는 1개노선의 지하철 운행중).

南京도 역사고도로서 삼국시대 吳(229-280)와 東晋(317-420), 南朝시대 宋(420-479) 齊(479-502) 梁(502-557) 陳(557-589), 그리고 明 초기(1368-1420년경까지), 태평천국의 난(1851-1864)과 中華民國(1912-1949) 한때(1928-1937, 1945-1949)의 수도였다. 남경에는 명나라 초기 사행길에 오르신 우리가문의 김구용, 김사안, 김사형, 김구덕 선조님의 사행길이 닿은 곳이다. 특히 남경에서 중경, 노주까지 양자강 따라 가는 길은 척약재 김구용 선조님의 유배길, 백범 김구 선생의 임시정부 피난길이다. 원래는 남경에 이삼일 머무르면서 척약재학음집에 나오는 남경의 명 고궁터와 1시간 거리의 진강에 있는 금산공원의 금산사(金山寺), 북고산공원에 있는 감로사(甘露寺) 등도 살펴보려 했으나, 중국 최고의 명산이라는 황산(黃山)을 가기로 변경하고 기차표를 예약해 두고, 짐을 기차역에 맡겨 놓고 하루동안의 남경시내 답사에 나섰다.

<손문의 중산릉, 주원장의 명효릉>

남경의 주산인 자금산에는 1911년 신해혁명의 주역인 손문의 능인 중산릉과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능인 명 효릉이 자리잡고 있다. 삼민주의로 유명한 손문은 외세열강의 중국침탈이 계속되는 가운데 1911년 신해혁명을 일으켜 수천년 이어온 봉건중국을 마감시키고 중화민국을 세운 인물로 본토의 공산당, 대만의 국민당 모두 중국의 국부로 여기는 인물이었다. 그의 능인 중산릉은 본인의 뜻과는 다르게 웅장한 규모로 조성되었는데, 높은 계단을 한참을 오른 후에야 도달할 수 있었다. 주원장은 1368년 농민군을 이끌고 원나라를 몰아내고 남경에 한족의 명나라를 세운 인물로 명 홍무제라 불리는 사람이다. 1420년 그의 손자 영락제가 북경으로 수도를 옮기게 된다. 그의 능인 명 효릉은 산같이 보였는데, 능(산) 앞에 있는 건물에 박혀 있는 벽돌에는 당시의 글씨가 새겨 있는 것이 많이 보였다.

남경시내로 나와서 남경학살기념관, 태평천국의 난 기념관을 둘러보고 나니 해가 넘어가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서둘러 명 고궁터를 찾아 가니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고궁 건물은 흔적이 없어지고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유지와 초석을 발굴하여 노출시키고 있었다. 600여 년전 이곳을 다녀가신 우리가문의 김구용, 김사안, 김사형, 김구덕 선조님을 그려 보았으나 남아 있는 유적이 없었다.

저녁을 먹고 남경역으로 이동해서 밤11시 황산(안휘성)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12월 22일 (목) 여행 11일차

<황산>

(7시간후) 새벽6시 황산역에 도착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황산 아래 도시 탕구에 도착해서 호텔에 짐을 풀고 여행사 봉고차에 올랐다. 황산의 동쪽 구역 서너군데(석문협, 구룡폭 등)을 여행했는데, 큰 감동은 일지 않았다.

 

 

12월 23일 (금) 여행 12일차

<중국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황산>

황산을 등산하기로 했다. 여행사 버스에 올라 단체여행팀에 합류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황산 동쪽에 올랐다. 사진에서 수없이 보던 구름과 안개 깔린 경치는 볼 수 없었으나 온통 바위산에 드문드문 보이는 그림같은 소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최고봉이라는 연화봉, 천도봉을 끼고 돌면서 황산 서쪽으로 이동한후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중국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황산이라고 했으나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의 설악산과 비슷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다음에 설악산에 올라 비교해 볼 참이다.

<마르코폴로가 극찬했던 항주로!>

항주로 이동해야 했으므로 서둘러 호텔로 돌아와 짐을 챙겨 가지고, 오후4시 항주가는 버스에 올랐다. 5시간 걸려 <동방견문록>을 남긴 마르코폴로가 중국에 있는 동안(1274-1291) 와보고 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시라고 극찬했던 항주에 오후9시 도착했다. 서호 번화가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유스호스텔에 짐을 풀었다. 1층 로비에 컴퓨터 2대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공짜였다. 짐은 아이둘 편에 올려 보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안동김씨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열람하고 리플을 달았으나 ‘정상적으로 하라’는 메시지만 자꾸 뜨고 입력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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