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 축은집(11)-김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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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6-01-09 10:08 조회1,548회 댓글2건본문
(김영순을 대리하여 축은에게 주는 시 ---박상충 작)
杜村日事不兒呼 (두촌일사불아호) : 두촌의 일상일에 아이를 부르지 않으니
可笑平生老蠢愚 (가소평생로준우) : 가소롭구나 평생 무지렁뱅이의 삶이
世上少年皆罪面 (세상소년개죄면) : 세상 젊은이들은 모두 죄인 얼굴이고
人間白髮摠鰥夫 (인간백발총환부) : 백발된 사람들은 모두가 홀아비런가
酒情疏豁喉門咽 (주정소활후문인) : 술 취하면 확 트여 목놓아 울고
飯味辛酸腹府麤 (반미신산복부추) : 밥맛은 시큼하고 배알이 틀리네
午枕聽鷄閑送日 (오침청계한송일) : 닭소리 들릴 때까지 낮잠 자고 한가로이 세월 보내며
豊年樂事保微躬 (풍년락사보미궁) : 풍년의 즐거운 농사로 미천한 몸이나 보존하리
蠢=꿈틀거릴준, 어리석을준 鰥=환어환, 홀아비환 疏=토일소, 豁=열릴활 麤=거칠추, 현미추
김방려 1324-1423
김영돈 1285-1348
박상충 1332-1375
박상충(朴尙衷) 1332(충숙왕 복위 1)∼1375(우왕 1).
고려 말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성부(誠夫). 밀직부사 수(秀)의 아들이다.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이 예조정랑에 이르렀다. 이때 고례(古禮)를 참작하여 순서대로 조목을 지어 사전(祀典)을 썼다. 1367년(공민왕 16)성균관생원의 수를 늘려 100인으로 하고 오경사서재(五經四書齋)를 마련하여 생원을 교수하게 하였는데, 이때 김구용(金九容)·정몽주(鄭夢周)·박의중(朴宜中)·이숭인(李崇仁) 등과 함께 경술(經術)의 사(士)로 교관을 겸하게 되었다. 뒤에 전교령(典校令)이 되었는데, 이때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3년복을 입으려 하였으나 사대부들이 부모상에 100일만 복을 입으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대신 3년간 고기를 먹지 않았다.
1375년 이인임(李仁任) 등의 친원책에 대하여 임박(林樸)·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이를 반대하고 친명책을 주장하였다. 뒤이어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가 되어 정몽주 등과 함께 친명책을 쓸 것과 북원(北元)의 사신과 그 수행원을 포박하여 명나라로 보낼 것을 상서하였다. 그해 간관 이첨(李詹)·전백영(全伯英) 등이 상소하여 북원과 통하는 것을 반대하고 친원파 이인임과 지윤(池奫)의 주살을 주장한 것에 연좌되어 친명파인 전녹생(田祿生)·정몽주·김구용·이숭인·염흥방(廉興邦) 등과 함께 귀양가다가 도중에서 죽었다.
성품이 침착하여 말이 적고 강개하여 큰 뜻이 있었으며, 경사에 해박하고 글을 잘 지었으며 성명학(星命學)에도 통달하였다. 벼슬에 나아가서는 부지런하고 삼가하며 사람이 불의로 부귀함을 보면 멸시하였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댓글목록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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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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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박상충은 1332년생을 문숙공(김영돈)선조님이 돌아가실때(1348년)17살입니다.
축은집에 나오는 김영순과 김영돈이 동일인문인지는 좀더 연구해봐야 할 듯 싶습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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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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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잘 맞지 않습니다. 김영순이란 인물이 김영돈과 다른 인물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