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급-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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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6-01-13 17:27 조회1,501회 댓글1건본문
帆急
金九容
帆急山如走 舟行岸自移 (범급산여주 주행안자이)
異鄕頻問俗 佳處强題詩 (이향빈문속 가처강제시)
吳楚千年地 江湖五月時 (오초천년지 강호오월시)
莫嫌無一物 風月也相隨 (막혐무일물 풍월야상수)
* 帆 :【범】돛; 돛단 배; 돛달다
* 强 :【강】강하다; 억지로 (强의 本字)
* 一物 : 자기 소유물
1. 번역
돛단배가 빠르니 산이 달리는 듯하고
배가 나아가니 언덕이 절로 옮겨지네.
다른 고장이라 자주 그 풍속을 묻고
아름다운 곳에서는 굳이 시를 짓네.
오나라와 초나라가 천년을 누린 땅에
강과 호수는 오월의 시절이네.
일물이 없음을 싫어하지 말라
바람과 달이 잇달아 서로 따르나니.
2. 감상
시인은 배 안에 있다. 배가 아주 빠르게 물 위를 가르며 달리고 있다. 배 안에 있는 시인에게는 양 옆의 산이 달리는 것처럼 보이고 언덕이 저절로 옮겨지는 듯하다. 부딪쳐오는 바람을 몸으로 맞는 시원함과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시인은 다른 고장에 와서 궁금한 것이 많은 듯 자주 그 풍속을 물어 본다. 또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 반드시 시를 지어서 남긴다. 여기서는 시인의 호기심과 여유로움이 드러난다.
5구의 옛날 오나라와 초나라가 차지했던 땅이라는 말에서 시인이 있는 곳을 짐작할 수 있는데 아마도 양쯔강을 흘러가고 있는 중인 듯하다. 지금은 5월이 되어 아름다운 한봄의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어쩌면 그곳을 호령했던 옛 영웅들과 자신을 비교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조금은 태평한 자세로 이렇게 말한다. 비록 내가 가진 것이 없지만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바람과 달이 계속해서 나를 쫓아오고 있지 않은가. 돛단배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바람이 뒤에서 불어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시인은 바람이 배를 따라오는 것처럼 느꼈을 수 있다. 또 달을 보면서 걸어가면 달이 자신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배 위에서 보는 달 역시 배를 따라 오는 것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이렇게 시인은 가진 것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는커녕 바람과 달을 자신의 친구로 삼는 여유롭고 낙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 심화자료
♧ 7,8구는 소식(소동파)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 나오는 “또한 천지의 사이에는 사물이 각기 주인이 있으니,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면 비록 털 하나라 하더라도 취하지 말라.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 사이의 밝은 달은 귀에 닿으면 소리가 되고 눈과 만나면 빛깔이 된다. 취해도 금함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이것은 조물주의 다함이 없는 창고이고, 그대와 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바이다.”(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惟江上之淸風與山間之明月 耳得之而爲聲 自遇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子之所共適)라는 단락의 뜻을 빌어 온 것이다.
- 성범중,《척약재 김구용의 문학세계》, 울산대학교 출판부, 1997.
♧ 민족문화대백과사전 (9권 508페이지) : <범급>은 고려말의 문신인 김구용(金九容)의 한시. 오언율시 2수중 두 번째 것이다. 그의 저서인 《척약재학음집(小易若齋學吟集)》권하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은 돛단배가 빠르게 달려 나가니 마치 산기슭이 저절로 옮겨지듯 한다고 하여 속도감을 흥기시키고 나서, 작자는 타향에 오면 자주 그 고을의 풍속을 묻고 좋은 곳을 찾아가 힘써 시를 짓곤 한다고 하였다. 타향이지만 때는 5월이라, 강호에 찾아가보니 더불어 놀만한 사물이 하나도 없으나, 풍월이 함께 따라와 즐기노라 말한다. 이 작품은 작자가 대리(大理)에 귀양을 갔을 때 지은 것이므로 읽는 이로 하여금 창연(섭섭하고 서운하다)해지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시 구절에서 “가처(佳處)에서 힘써 시를 짓노라(强題詩).”라고 하였듯이 그의 귀양지에서의 고독함과 괴로운 심정을 간곡하게 시적 언어로 표출시켜 놓고 있다. 또 끝구절에서 역시 “풍월만이 따라와 주네”라고 한 것에서도 그와 같은 고적감이 다시 제고되고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靑丘風雅(金宗直), 小易若齋學吟集(金九容). 閔丙秀(서울대 교수, 국문학)
4. 작가
金九容(1338~1384)은 고려말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경지(敬之), 호는 척약재(惕若齋), 초명은 제민(齊閔)이다. 공민왕 때 16세로 진사에 합격, 그 뒤 문과에 급제하여 덕녕부주부(主簿)를 거쳐 민부의랑(民部議郞) 겸 성균관직강(直講)이 되었다. 1367년(공민왕 16) 성균관이 중건되자 정몽주(鄭夢周)·박상충(朴尙衷)·이숭인(李崇仁) 등과 성리학을 일으키고 척불숭유의 선봉이 되었다.
친명파로서 1375년(우왕 1) 삼사좌윤으로 있을 때, 이숭인·정도전(鄭道傳)·권근(權近) 등과 함께 북원(北元)에서 온 사신의 영접을 반대하다가 죽주(竹州)에 유배되었다. 1381년 풀려나와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 이듬해 대사성·전교시판사가 되었다. 명나라와의 외교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던 1384년에 행례사(行禮使)로서 명나라에 가던 중 요동에서 붙잡혀 난징[南京]으로 압송된 뒤, 대리(大理)로 유배되어 가다가 여주 영녕(永寧)현에서 병사하였다. 사장(詞章)을 잘하였으며, 《동문선》에 8편의 시가 전한다. 문집에 《척약재문집》, 저서에 《선수집(選粹集)》, 《주관육익(周官六翼)》 등이 있다.
5. 참고자료
성범중,《척약재 김구용의 문학세계》, 울산대학교 출판부, 1997.
Naver 백과사전 (김구용의 생애)
안동김씨 홈페이지 (http://iandong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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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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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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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공식 홈페이지에 실린 문온공 관련 범급 자료에 우리 홈페이지가 참고자료로 기록될 만큼 학술자료로서 자리 매김하고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