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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백범일지 (24)기구한 젊은 때(13) - 무위로 돌아간 석방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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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6-01-16 12:41 조회1,5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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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한 젊은 때(13) - 무위로 돌아간 석방 운동

김주경은 이렇게 투전하여 얻은 돈으로 강화와 인천의 각 관청의 관속을 매수하여 그의 지휘에 복종케 하고 또 꾀 있고 용맹 있는 날탕패를 많이 모아 제 식구를 만들어 놓고는 어떠한 세도 있는 양반이라도 비리(非理)의 일을 하는 자가 있으면 직접이거나 간접이거나 꼭 혼을 내고야 말았다.

경내(境內)에 도적이 나서 포교가 범인을 잡으러 나오더라도 먼저 김주경에게 물어보아서 잡아가라면 잡아가고, 그에게 맡기고 가라면 포교들은 거역을 못하였다. 당시에 강화에는 큰 인물 둘이 있으니 양반에는 이건창(李健昌)이요, 상놈에는 김주경이라고 하였다. 이 두 사람은 강화 유수도 건드리지 못하였다. 대원군(大院君)은 이런 말을 듣고 김주경에게 군량을 맡는 중임을 맡긴 것이다.

하루는 사령반수 최덕만이가 내게 와서 하는 말이, 김주경이가 어느 날 자기 집에 와서 밥을 먹으면서 말하기를, 김창수를 살려내야 할 터인데, 요새에 정부의 대관놈들이 모두 눈깔에 동록이 슬어서 돈밖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아니하니, 이번에 집에 가서 가산을 모두 족쳐 팔아 가지고 김창수의 부모 중에 한 분을 데리고 서울로 가서 무슨 짓을 해서라도 석방 운동을 하겠노라 하더라고 하였다. 최덕만이 이 말을 한 지 10여 일 후에 과연 김주경이가 인천에 와서 내 어머님을 모시고 서울로 갔다.

뒤에 듣건대, 김주경은 첫째로 당시 법부대신 한규설(韓圭卨)을 찾아서 내 말을 하고 이런 사람을 살려내어야 충의지사(忠義志士)가 많이 나올 터이니 폐하께 입주하여 나를 놓아 주도록 하라고 하였다.

한규설도 내심으로는 찬성이나 일본 공사 임권조(林權助)가 벌써 김창수를 아니 죽였다는 문제로 삼아서 대신 중에 누구든지 김창수를 옹호하는 자는 무슨 수단으로든지 해치려 하니, 막무가내하라고 폐하께 입주하는 일을 거절하므로 김주경은 분개하여 대관들을 무수히 졸욕하고 나와서 공식으로 법부에 김창수 석방을 요구하는 소지를 올렸더니 그제사 '그 뜻은 가상하나 일이 중대하니 여기서 마음대로 할 수 없다(其義可尙 事關重大 未可擅便向事)' 하였다.

그 뒤에도 제 2차, 제 3차로 관계 있는 각 아문 - 관청 - 에 소장을 드려 보았으나 어디나 마찬가지로 이리 미루고 저리 미루어 결말을 보지 못하였다. 이 모양으로 김주경은 7,8삭 동안이나 나를 위하여 송사를 하는 통에 그 집 재산은 다 탕진되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번갈아서 인천에서 서울로 오르락내리락하셨으나 필경 아무 효과도 없이 김주경도 마침내 나를 석방하는 운동을 중지하고 말았다.

김주경은 소송을 단념하고 집에 돌아와서 내게 편지를 하였는데, 보통으로 위문하는 말을 한 끝에 오언절구 한 수를 적었다.

'새는 조롱을 벗어나야 좋은 새이며 고기가 통발 - 고기 잡는 기구 -을 벗어나니 어찌 예사스러울까. 충신은 반드시 효(孝가) 있는 집에서 찾고 효자는 평민의 집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脫籠眞好鳥 拔扈豈常鱗 求忠必於孝 請看依閭人)'

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내게 탈옥을 권하는 말이다. 나는 김주경이가 그간 나를 위하여 심력을 다한 것을 감사하고, 구차히 살 길을 위하여 생명보다 중한 광명을 버릴 뜻이 없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답장하였다.

김주경은 그 후 동지를 규합하여 관용선 청룡환(靑龍丸), 현익호(顯益號), 해룡환(海龍丸) 세 척 중에서 하나를 탈취하여 해적이 될 준비를 하다가 강화 군수의 염탐한 바가 되어서 일이 틀어지고 도망하였는데 중로에서 그 군수의 행차를 만나서 군수를 실컷 두들겨 주고 해삼위 방면으로 갔다고도 하고 근방 어느 곳에 숨어 있다고도 하였다.

그 후에 아버지는 김주경이가 서울 각 아문에 드렸던 소송 문서 전부를 가지고 강화에 이건창을 찾아서 나를 구출할 방책을 물으셨으나 그도 역시 탄식만 할 뿐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대로 옥중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신학문을 열심으로 공부하였다. 나는 만사를 하늘의 뜻에 맡기고 성현으로 더불어 동행하자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으므로 탈옥 도주는 염두에 두지 아니하고 있었다. 그러나 10년역 조덕근, 김백석(金百石), 3년 수 양봉구(梁鳳求), 이름은 잊었으나 종신수도 하나 있어서 그들은 조용할 때면 가끔 내게 탈옥하자는 뜻을 비추었다.

그들은 내가 하려고만 하면 한 손에 몇 명씩 쥐고 공중으로 날아서라도 그들을 건져낼 수 있는 것같이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두고두고 그들이 눈물을 흘려가며 살려 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내 마음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생각에는 나는 얼마 아니하여 우으로부터 은명이 내려서 크게 귀하게 되겠지마는 나마저 나가면 자기들은 어떻게 살랴 하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하였다. 상감께서 나를 죄인으로 알지 아니하심은 내 사형을 정지하라신 친칙으로 보아 분명하고, 동포들이 내가 살기를 원하는 것도 김주경을 비롯하여 인천항의 물주 객상들이 돈을 모아서 내 목숨을 사려고 한 것으로 알 수 있지 아니 하냐. 상하가 다 내가 살기를 원하나 나를 놓아 주지 못하는 것은 오직 왜놈 때문이다.

내가 옥중에서 죽어 버린다면 왜놈을 기쁘게 할 뿐인즉, 내가 탈옥을 하더라도 의리에 어그러질 것은 없다고. 이리하여 나는 탈옥할 결심을 하였다. 내가 조덕근에게 내 결심을 말한즉 그는 벌써 살아난 듯이 기뻐하면서 무엇이나 내가 시키는 대로 할 것을 맹세하였다. 나는 그에게 말하여 돈 2백 냥을 들여오라 하였더니 밥을 나르는 사람 편에 기별하여서 곧 가져왔다. 이것으로 탈옥의 한 가지 준비는 된 것이었다.

둘째로는 큰 문제가 있으니, 그것은 강화 사람 황순용(黃順用)이라는 사람을 손에 넣는 것이었다. 황가는 절도죄로 3년 징역을 거의 다 치르고 앞으로 나갈 날이 멀지 아니하므로 감옥의 규례대로 다른 죄수를 감독하는 직책을 맡아 가지고 있었다. 이 놈을 손에 넣지 아니하고는 일이 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황가에게 한 약점이 있으니, 그것은 그가 김백석을 남색으로 지극히 사랑하는 것이었다. 김백석은 아직 17, 18세의 미소년으로서 절도 3범으로 10년 징역의 판결을 받고 복역하는 지가 한 달쯤 된 사람이었다. 나는 김백석을 이용하여 황가를 손에 넣기로 계획을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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