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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백범일지(25)기구한 젊은때(14) 탈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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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6-01-19 09:25 조회1,5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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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탈옥하다

나는 조덕근으로 하여금 김백석을 충동하여, 김백석으로 하여금 황가를 졸라서, 황가로 하여금 내게 김백석을 탈옥시켜 주기를 빌게 하였다. 계교는 맞았다. 황가는 날더러 김백석을 놓아달라고 졸랐다. 나는 그를 준절히 책망하고 다시 그런 죄 될 말은 말라고 엄명하였다. 그러나 김백석에게 자꾸 졸리우는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졸랐다.

내가 뿌리치면 뿌리칠수록 그의 청은 간절하여서 한 번은,

"제가 대신 징역을 져도 좋으니 백석이만 살려줍시오"

하고 황가는 울었다. 비록 더러운 애정이라 하더라도 애정의 힘은 과연 컸다. 그제야 내가 황가의 청을 듣는 것 같이, 그러면 그러마고 허락하였다. 황은 백배 사례하고 기뻐하였다. 이리하여 둘째 준비도 끝이 났다.

다음에 나는 아버님께 면회를 청하여 한 자 길이 되는 세모난 철창 하나를 들여 줍소사고 여쭈었다. 아버지께서는 얼른 알아차리시고 그날 저녁에 새 옷 한 벌에 그 창을 싸서 들여주셨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탈옥할 날을 정하였으니, 그것은 무술년 3월 초아흐렛날이었다.

이날 나는 당번하는 옥사정 김가에게 돈 1백 50냥을 주어, 오늘 밤에 내가 죄수들에게 한턱을 낼 터이니 쌀과 고기와 모주 한 통을 사달라 하고 따로 돈 스물 닷 냥을 옥사정에게 주어 그것으로는 아편을 사먹으라고 하였다. 이 옥사정은 아편장인 줄을 내가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죄수에게 턱을 낸 것은 전에도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옥사정도 예사로이 알았을 뿐더러 아편 값 스물 닷 냥이 생긴 것이 무엇보다도 좋아서 두말 없이 모든 것을 내 말대로 하였다.

관속(官屬)이나 죄수나, 나는 조만간 은명으로 귀히 되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아무도 내가 탈옥 도주를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할 리가 없었다. 조덕근, 양봉구, 황순용 김백석 네 사람도 나는 그냥 옥에 머물러 있고 자기네만을 빼어 놓을 줄로 믿고 있었다.

저녁밥을 들고 오신 어머님께, 자식은 오늘 밤으로 옥에서 나가겠으니 이 밤으로 배를 얻어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셔서 자식이 찾아갈 때를 기다리시라고 여쭈었다.

50명 징역수와 30명 미결수들은 주렸던 창자에 고깃국과 모주를 실컷 먹고 취흥이 도도하였다.

옥사정 김가더러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죄수들 소리나 시키고 놀자고 내가 청하였더니 김가는 좋아라고,

"이놈들아, 김 서방님 들으시게 장기대로 소리들이나 해라"

하고 생색을 보이고 저는 소리보다 좋은 아편을 피우려고 제 방에 들어가 박혔다.

나는 적수 방에서 잡수 방으로, 잡수 방에서 적수 방으로 왔다갔다 하다가 슬쩍 마루 밑으로 들어가서 바닥에 깐 박석 - 정방형으로 구운 옛날 벽돌 -을 창 끝으로 들쳐내고 땅을 파서 옥밖에 나섰다. 그리고 옥 담을 넘어 줄사다리를 매어 놓고 나니 문득 딴 생각이 났다. 다른 사람들을 끌어내려다가 무슨 일이 날는지 모르니, 이 길로 나 혼자만 나가 버리자 하는 것이었다.

그자들은 좋은 사람도 아니니 기어코 건져낸들 무엇하랴. 그러나 얼른 돌려 생각하였다. 사람이 현인 군자에게 죄를 지어도 부끄러웁거늘, 하물며 저들과 같은 죄인에게 죄인이 되고서야 어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으랴. 종신토록 수치가 될 것이다.

나는 내가 나온 구멍으로 다시 들어가서 천연스럽게 내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그들은 여전히 흥에 겨워서 놀고 있었다. 나는 눈짓으로 조덕근의 무리를 하나씩 불러서 나가는 길을 일러주어서 다 내어 보내고 다섯째로 내가 나가 보니 먼저 나온 네 녀석들은 담을 넘을 생각도 아니하고 밑에 소복히 모여 앉아서 벌벌 떨고 있었다.

나는 하나씩 하나씩 궁둥이를 떠받쳐서 담을 넘겨 보내고 마지막으로 내가 담을 넘으려 할 때 먼저 나간 녀석들이 용동 마루로 통하는 길에 면한 판장을 넘느라고 왈가닥거리고 소리를 내어서 경무청과 순검청에서 무슨 일이 난 줄 알고 비상 소집의 호각 소리가 나고 옥문 밖에서는 벌써 퉁탕퉁탕하고 급히 달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직도 옥 담 밑에 섰다. 인제는 내 방으로 돌아갈 수도 없은즉, 재빨리 달아나는 길밖에 없건마는 남을 넘겨 주기는 쉬워도 길 반이나 넘는 담을 혼자 넘기는 어려웠다. 줄사다리로 어름어름 넘어갈 새도 없다. 옥문 열리는 소리, 죄수들이 떠들썩하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나는 죄수들이 물통을 마주 메는 한 길이나 되는 몽둥이를 짚고 몸을 솟구쳐서 담 꼭대기에 손을 걸고 저편으로 넘어 뛰었다.

이렇게 된 이상에는 내 길을 막는 자가 있으면 사생 결단을 하고 결투를 할 결심으로 판장을 넘지 아니하고 내 쇠창을 손에 들고 바로 삼문을 나갔다. 삼문을 지키던 파수 순검들은 비상 소집에 들어간 모양이어서 거기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탄탄대로로 나왔다. 들어온 지 2년 만에 인천옥을 나온 것이었다.

'기구한 젊은 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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