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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만덕사터 차 자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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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6-01-22 03:56 조회1,6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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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만덕사터 차 자생지

(한국일보 97.06.17 24면 (문화) 기획․연재)


◎ 수백년 숨어있던 수천 그루 차나무/고려말 일 원정 몽골군이 심어놓은 듯/동래 차밭골 옛 명성 묵묵히 입증


  『만덕사 부근에 엄청 큰 차나무 군락이 있다고?』 부산 차인들은 물론이고 전국 차인들에게는 단연 빅뉴스다. 부산 북구 만덕동 만덕사 이웃에 살면서 차나무 숲을 발견한 정태중(59․부산 북구 만덕1동 871)씨, 전각가이자 차 연구가인 심무용(54․부산 동래구 온천동)씨와 함께 지난 11일 현장을 찾았다. 다람쥐가 뛰노는 키 큰 소나무, 굴참나무, 아카시나무, 시원한 바람에 서걱이는 산죽, 닥치는 대로 칭칭 감고 올라 간 칡넝쿨. 그 사이 사이 시원한 그늘 아래 크고 작은 차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금정산록에서는 오래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는 귀한 차나무다. 어쩌다 한 두 그루가 아니라 산비탈 곳곳 수천평에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5년전 봄 이 근처를 산책하다 잎이 새파란 어린 차나무를 우연히 발견했는기라』 정씨는 대나무 숲 뿐 아니라 이 일대 3,000여평 비탈에서 2m가 넘는 키 큰 차나무에서 부터 막 새순이 나온 듯한 어린 것 까지 크고 작은 수천 그루의 차나무를 확인했다. 돈이 된다면 닥치는 대로 마구 캐내는 무지막지한 채취꾼 때문에 그동안 입을 다물어 왔다고 했다.

  동래 온천장에서 제1만덕 터널을 막 벗어나면 오른편에 「부산기념물 3호」 만덕사터가 나온다. 만덕사터를 지나 금정산 상계봉 병풍암으로 가는 폭 2, 3m의 넓직한 등산로에 들어선다. 넉넉한 그늘을 만들고 있는 소나무 숲, 올려다보면 우뚝 솟아있는 병풍바위 등 금정산록 중에서도 경치가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다. 힘들여 멀리까지 오를 것도 없다. 오른쪽으로 비탈진 숲속을 내려다보면 쉽게 차나무를 찾을 수 있다. 잡목으로 뒤얽힌 숲을 헤치고 내려가면 군락을 이루고 서 있는 차나무가 지천으로 늘어 서 있다. 좀 자란 놈을 골라 밑둥치를 살펴보면 깜짝 놀라고 만다. 흙을 걷어내면 흙에 덮인 뿌리 지름이 20~30㎝나 되는 것도 있다. 이만한 굵기라면 수백년은 족히 됐다는 전문가 분석이다.

  계획적으로 차씨를 뿌렸을 리 없는데 사라졌다는 차나무가 어째서 이렇게 군락을 이루며 살고 있는가. 산불이나 남벌로 눈에 보이는 나무의 둥치는 없어졌지만 그 뿌리에서 돋아난 순이 자라 그 씨가 퍼져 군락을 이루게 된 것이라는 게 식물학자들의 추정이다.

  부산이 부산포였던 시절 만덕사 동쪽 너머 동래 차밭골에서는 동래부 지역의 수요를 충당하고 수출까지 할 정도로 넉넉한 차가 생산됐다. 만덕사가 언제 건립되고 또 폐허가 됐는지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설왕설래이다. 대략 고려 초에 지어진 대사찰로 절의 경계가 사방 4㎞에 이르렀다고 한다. 고려 때는 불교를 숭상했던 시기이자 차문화가 가장 융성했던 때다.

  더욱이 만덕사 자리는 범어사와 함께 낙동강 하구 일대와 부산포가 한눈에 보이는 전략적 요충으로 유사시 군사기지가 되기도 했다. 특히 고려말 일본을 공략하기 위한 고려․원나라 연합군의 전진기지였던 곳이다. 1274년 고려의 김방경이 원나라 군대와 함께 1차로 일본 정벌에 나섰다가 실패한다. 1281년 2차정벌에 나섰으나 또 실패하고 만다. 수십년 동안 일본 정벌을 위해 연합군이 이곳에 주둔했으니 몽골인들의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차를 조달하기 위해 차밭을 조성했을 것이라는 게 부산 사학자들의 추정이다. 만덕사의 경계가 사방 4㎞라면 동래 온천동 차밭골은 만덕사가 관리하던 차밭이다. 일본정벌 전초기지인 만덕사를 왜구들이 전략적으로 폐허로 만들었다는 추리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차밭골」은 지금 사직구장이 있는 부산 동래 사직동에서 동북쪽 원예고등학교를 지나 온천장 일대와 서쪽인 금정산 산비탈인 만덕사터까지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 지방 최대의 차생산지였던 차밭골에 지금은 단 한그루의 차나무도 볼 수 없다. 울창한 송림과 차밭대신 고급 주택가와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 서 버렸다. 동래에 차밭이 있었다는 것조차 아득한 얘기가 돼 버렸다. 이런 마당에 차밭골의 차나무가 다시 살아 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랄 일이다.

  정씨는 아무래도 걱정을 떨치지 못하는 눈치였다. 『보도가 되면 귀중한 이 차나무들이 수난을 당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닌가베. 차나무는 뿌리가 곧고 깊게 뻗어 내리는 성질이어서 옮겨 심으면 100% 죽어버릴거여』

  그는 『나무를 옮겨 심으려 하지 말고 늦가을 씨를 받아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이른 봄 이 씨를 며칠간 물에 불려 심으면 얼마든지 차나무를 키울 수 있다』며 『부산의 차인들이 이곳 차밭을 가꾸고 지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김대성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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