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신변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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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작성일06-02-05 17:54 조회1,548회 댓글1건본문
제주의 이해(나는 다른 것을 보았다!. 편)---------------------------------
네 파수가 지나면 안사연 일행은 선조님의 행적과 필적을 찾아 오랫동안 준비하며 고대 해왔던 제주행을 감행할 것입니다.먼 옛날부터 척박한 대지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익혀야 했던 조냥(제주방언으로 절약,검소를 말함)정신과 바람이 많아 뿌린 씨앗을 밟으며 생겨난 노동요의 유래와 지리적으로 근접하여 발생한 왜의 잦은 노략질로 인한 굴뚝이 없는(연기가 노출의 원인이 됨) 전통가옥의 그을린 모습들,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한 수단으로 생겨난 똥돼지우리(앉으나 서나 불안하여 망을 보아야 했던 해우소의 역할로도 민초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와 사나운 바닷속을 자맥질 하며 먼저 보낸 지아비를 생각하며 토해내는 숨비소리에 묻어나는 푸념들,그리고 절망하지 않고 그들만의 유토피아인 이어도(최근 과학기지로 이용)의 삶을 노래하며 꿈꾸던 바다가 반길 것입니다.
`(아래아),가시어멍(각시엄마 즉 장모),시나브로 등의 고어체 사용,몽고지배(말목장) 시기에서 기인했을 법한 촐(草,풀 따위를 촐이라 함),무사(無事,무슨 일,왜?의 의미로 사용)의 상용,나스미깡(여름귤,하귤,머리통만한 귤로 씨가 많고 맛이 없으며 여름에도 나무에 매달려 있다),쎄미노루(오렌지와 교배한 것으로 아마도 최근 개발한 한라봉 등의 종자가 있기 전엔 모두가 일본에서 들여 온 듯 함),히라스(방어) 등 왜색용어도 만날 것입니다.
또한,다금바리,비바리,군바리 등의 바리형,마씀(마씸),핸(용례:경 핸!,그렇게 했니!)형,주게,수광(의문형,~니까?),수다(했수다,했습니다)형 등 그들만의 독특한 일상언어를 가는 곳 마다 들으실 것입니다.상고시대엔 거기도 하나의 나라였으니까요.
삼별초,영화화 되기도 했던<이재수의 난>,미군정치하의 <제주항쟁,흔히4.3항쟁> 등은 특히 이 지방만의 뚜렷한 저항의식과 함께 한 마을에서 같은 날 지내야 하는 제사날의 운명과 함께 그 옛날 중앙정부의 손길이 온전히 미치지 못할 적에 탐관오리 등으로 부터 고스란히 받아야 했던 착취에서 비롯된 "육지 것들(뭍,본토에서 입도한 사람)"이라는 배타적인 감정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제주를 달리 표현하는 삼무도(三無島)에서 남자가 없다는 것은 어업을 하면서 풍랑에 희생된 여느 섬지방의 상황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은 이처럼 공권력이나 외침에 항거하던 그들만의 저항의식의 표출로 특히 남자들이 정치적인 이해관계나 향리의 집단행동으로 몰살을 당한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고 또 다른 표현의 도둑이 없다는 이면에는 생계를 위해 척박한 대지를 일구며 사느라 육지와는 사뭇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간단한 음식조리법을 보면 이해가 간다.그만큼 여유가 없었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웠기에 나 보다 남이 더 가졌을리 만무하였기에 한 울타리 안에서 남의 것을 탐하지 않았을 것이라 사료된다.
지금은 제1횡단도로라 표기하는 5,16도로(군사정권 수립 후 불량배 등을 교육한다는 명목으로 동원하여 길을 냄,훗날 5공의 삼청교육과 흡사)의 개통과 남부지방을 위주(특히 하효,하례,위미의 것을 최고로 친다,쌀로 말하면 여주,이천 등지의 쌀임)로 밀감생산이 정착하면서 부터는 교육의 질적 향상을 꾀하여 밀감나무를 대학나무라고 까지 하였을 정도로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고욤나무는 감을 접하여 곶감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였고 탱자나무가 이 지방에서 귤이 되어 비로서 소득에 이바지 하였으니 곧 항공편 이용의 대중화,관광자원으로서의 역할로 호텔사업의 활성화와 더불어 1차산업을 뛰어 넘어 서비스산업의 비약으로 타지역과 확연히 대조적인 산업형태를 갖게 되었다.
1994년 늦가을 절해고도에 있는 벗을 찾아 와 열흘을 머물다 돌아가는 친구를 배웅하고자 5.16도로를 넘어 공항에 갔다가 석별의 정이 아쉬워 1100도로로 되돌아 와서 정상의 휴게실에서 뛰노는 노루들을 바라보며 시로미차를 나눈 후 돌려 보낸 뒤 다시 그 길을 되짚어 "영실기암"을 들러 영주산을 내려왔다.이 글은 그 때 적어 놓은 <신변잡기>에서 발췌하였고 그 친구는 전,후 아홉 번을 찾아 와 머물다가 돌아갔다.그 친구는 산본에 사는 이아무개인데 오히려 가깝게 살게된 지금에 만나는 횟수가 적으니 실로 통탄할 일이다.
댓글목록
김태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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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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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명문 잘읽었습니다. 몰랐던 제주도 방언도 잘 보았습니다.
자연산 다금바리는 제주도에서도 귀하다고 하던대 맛볼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