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어리석은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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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6-02-09 15:08 조회1,423회 댓글0건본문
1. 1차 여몽연합군 몽고 장수
1차 여몽연합군이 일본을 정복하러 갔을 때 승승장구 하였다.
그당시 일본은 말그대로 오합지졸이었다, 일본무사들은 자신의 가문을 뽑내며 연합군에 단신으로
돌격하였고 연합군의 활에 무참히 전사하였으며 그들은 연합군의 신무기인 화포에 꼼짝도 못하였다.
그러던중 몽고측 장수가 고려군의 행군이 빠르고 공적이 높아짐을 시기하여 군을 내륙으로 주둔시키지 않고
오히려 후퇴하여 배에서 주둔하게 하였다.
그날밤 일본에서 말하는 가미가제(신풍)이 불어 여몽연합군의 함선은 거의 침몰하였고
(다만 고려군 장수 김방경의 훌륭한 지휘로 고려측 함선들은 거의 파손되지 않았다.)
보급품을 상실한 연합군은 일본에 패배 하게 되었다.
2. 2차 여몽연합군 몽고 장수
1차 여몽연합군의 패배를 교훈삼아 태풍이 불지 않는 시점에 연합군은 총공격을 감행하였다.
1차 전투에 대한 교훈으로 일본의 저항이 상당히 거세었지만 무난하게 진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본부대로 구성된 강남군(송을 멸망시키고 이쪽의 군대를 원이 흡수하였다)의 장수가 바보같은 실수를 하고 만다.
그는 연합군의 승리를 과신한 나머지 강남군이 도착하여 바로 경작할 수 있게끔 경작할수있는
농기구들을 준비한다고 10만이나 되는 군의 출진을 늦혀 버린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일본으로 간 선진 연합군은 일본의 저항에 진격을 하지 못하였고 늦게 출발한 강남군은 운명의 아이러니로
또 다시 가미가제를 바다위에서 만나 침몰하게 되었다.
그 피해는 1차 원정보다 더 심각해서 우리 나라 마산 앞바다 일대에 몇일간이나 강남군의 시신이 떠내려 오기도 하였고
일본의 선진 연합군은 구원과 보급없이 일본군에 버티다 굶어 죽게 되었다.
중화사상에 동화 되지 않은 몽고의 전사였다면
이같은 바보같은 결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 그 시점에 일본은 여몽연합군에 항복을 하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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