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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파정(碧波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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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6-02-08 17:11 조회1,4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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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의 고군면 벽파리에 있었다는 벽파정은 즉 1263년(원종4)에 김방경이 왜구를 격파한 기념으로 세웠으며,
1429년(세종 11)에 군수 박후생이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고려 후기의 명장김방경이 원종 4년에 진도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치고 상장군이 된 것과 결부하여 이 누정의 건립을 그렇게 추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벽파정 제영에는 고려 때의 인물인 고조기, 조희직, 채보문의 누정시가 전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앞에 든 세 사람의 누정시 외에 또 김신윤, 이원등의 벽파정시도 소개되어 있다.
위에서 거명한 누정시인  가운데 이원(1368-1429)은 고려 말 사람이라고 하나 조선시대 세종 때의 상신으로서
그의 벽파정시는 선초의 작으로 보아진다. 그리고 조희직은 그의 생존 연대를 명확히 알 수 없으나,
고조기와 채보문, 김신윤 등은 각각 고려 인종, 또는 의종, 그리고 명종 때의 문신이다.
고,채,김 세 사람의 생몰시기는 김방경이 태어나기 전, 내지는 그이 소년 시적에 해당한다.
이 세 인물이 벽파정시를 남긴 점을 감안하면 이 누정의 건립은 고려 중기까지 소급하여 추정되어야 할 것이다.
어떻든 진도의 벽파정은 고려 중기 무렵부터 당시의 문인들이 출입하여 누정시 제작의 무대가 되고,
이같은 누정제영의 작자는 위에 든 선비들 외에도 더 있었으리라고 추측이 되어 주목이 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로서 진도의 고읍지인 옥주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록이 있다.

벽파정의 뛰어난 경계는 남쪽 고을에서 으뜸이다. 정자 앞은 벽해의 파도를 임하여,
만경의 넓은 바다엔 점점으로 나열된 섬들이 원근에 펼쳐 있다.이 누정에 오르면 희비가 함께 느껴진다.
소인묵객으로서 이곳을 지나는 자 정자에 오르지 아니할 수 없었으므로,
고려 시대 이래로 거기에서 제영하는 자가 많았다.  민몰되지 아니하고 유전되는 것으로 고려 조의 평장사
고조기의 5언율시와 예부상서 채보문의 7언율시, 정언 조희직의 절구 2수, 홍하의 의 10운 율시 등이 있다.
훗날 이에 이어 따르는 자 또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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