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백범일지(39)민족에 내놓은 몸 5. 왜놈들의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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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6-04-06 12:39 조회1,516회 댓글0건본문
5. 왜놈들의 고문
나는 생각하였다. 평시에 나라를 위하여 십분 정성과 힘을 쓰지 못한 죄로 이 벌을 받는 것이라고. 이제 와서 내게 남은 일은 고 후조 선생의 훈계대로 사육신과 삼학사를 본받아 죽어도 굴치 않는 것뿐이라고 결심하였다.
심문실에 끌려 나가는 날이 왔다. 심문하는 왜놈이 나의 주소, 성명 등을 묻고 나서,
"네가 어찌하여 여기 왔는지 아느냐?" 하기로 나는, "잡아오니 끌려 왔을 뿐이요, 이유는 모른다" 하였더니, 다시는 묻지도 아니하고 내 수족을 결박하여 천장에 매달았다. 처음에 고통을 깨달았으나 차차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정신이 들어 보니 나는 고요한 겨울 달빛을 받고 심문실 한 구석에 누워 있는데 얼굴과 몸에 냉수를 끼얹는 감각뿐이요, 그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없었다.
내가 정신을 차리는 것을 보고 왜놈은 비로소 나와 안명근과의 관계를 묻기로, 나는 안명근과 서로 아는 사이나 같이 일한 것은 없다고 하였더니, 그놈은 와락 성을 내어서 다시 나를 묶어 천장에 달고 세 놈이 둘러서서 막대기로, 단장으로 수없이 내 몸을 후려갈겨서 나는 또 정신을 잃었다. 세 놈이 나를 끌어다가 유치장에 누일 때에는 벌써 훤하게 밝은 때였다. 어제 해 질 때에 시작한 내 심문이 오늘 해 뜰 때까지 계속된 것이었다.
처음에 내 성명을 묻던 놈이 밤이 새도록 쉬지 않는 것을 보고, 나는 그놈들이 어떻게 제 나라의 일에 충성된 것인가를 알았다. 저놈은 이미 먹은 나라를 삭히려기에 밤을 새거늘 나는 제 나라를 찾으려는 일로 몇 번이나 밤을 새웠던고 하고 스스로 돌아보니 부끄러움을 금할 수가 없고, 몸이 바늘방석에 누운 것과 같아서 스스로 애국자인 줄 알고 있던 나도 기실 망국민의 근성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니 눈물이 눈에 넘쳤다.
이렇게 악형을 받은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옆 방에 있는 김홍량, 한필호, 안태국, 안명근 등도 심문을 받으며 끌려나갈 때에는 기운 있게 제 발로 걸어나가나 왜놈의 혹독한 단련을 받고 유치장으로 돌아올 때에는 언제나 반죽음이 다 되어 있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나는 치미는 분함을 누를 길이 없었다.
한 번은 안명근이 소리소리 지르면서,
"이놈들아, 죽일 때에 죽이더라도 애국 의사의 대접을 이렇게 한단 말이냐?"
하고 호령하는 사이사이에,
"나는 내 말만 하였고, 김 구, 김홍량들은 관계가 없다고 하였소"
하는 말을 끼워서 우리의 귀에 넣었다.
우리들은 감방에서 서로 통화하는 방법을 발명하여서 우리의 사건을 보안법 위반과 모살급 강도의 둘로 나누어서 아무쪼록 동지의 희생을 적게 하기로 의논하였다. 양기탁의 방에서 안태국의 방과 내가 있는 방으로, 내게서 이재림이 있는 방으로 이 모양으로 좌우 줄 20여 방, 40여 방이 비밀히 말을 전하는 것이었다.
왜놈들은 우리의 심문이 진행됨에 따라 이것을 통방이라고 칭하였다. 사건의 범위가 점점 축소되는 것을 보고 의심이 났던 모양이어서 우리 중에서 한순직(韓淳稷)을 살살 꾀어 우리가 밀어하는 내용을 밀고하게 하였다. 어느 날 양기탁이가 밥 받는 구멍에 손바닥을 대고 우리의 비밀한 통화를 한순직이가 밀고하니 금후로는 통방을 폐하자는 뜻을 손가락 필답으로 전하였다. 과연 센 바람을 겪고야 단단한 풀을 알 것이었다.
안명근이 한순직을 내게 소개할 때에 그는 용감한 청년이라고 칭양하더니 이 꼴이었다. 어찌 한순직뿐이랴, 최명식도 악형을 못 이겨서 없는 소리를 자백하였으나 나중에 후회하여 긍허(兢虛)하고 호를 지어서 평생에 자책하였다. 그 때의 형편으로 보면 내 혀끝이 한 번 움직이는 데 몇 사람의 생명이 달렸으므로 나는 단단히 결심을 하였다.
하루는 또 불려 나가서 내 평생의 지기가 누구냐 하기로 나는 서슴지 않고,
"오인형(吳麟炯)이 내 평생의 지기다"
하고 대답하였더니 종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는 일이 없던 내 입에서 평생의 지기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극히 반가와하는 낯빛으로 그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천연하게,
"오인형은 장련에 살더니 연전에 죽었다"
하였더니 그놈들이 대로하여 또 내가 정신을 잃도록 악형을 가하였다.
한 번은 학생 중에는 누가 가장 너를 사모하더냐 하는 질문에 나는, 창졸간에 내 집에 와서 공부하고 있던 최중호의 이름을 말하고서는 나는 내 혀를 물어 끊고 싶었다. 젊은 것이 또 잡혀와서 경을 치겠다고 아픈 가슴으로 창 밖을 바라보니 언제 잡혀왔는지 반쯤 죽은 최중호가 왜놈에게 끌려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진고개 끝 남산 기슭에 있는 소위 경무총감부에서는 밤이나 낮이나 도수장에서 소나 돼지를 때려잡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이것은 우리 애국자들이 왜놈에게 악형을 당하는 소리였다.
하루는 한필호 의사가 심문을 당하고 돌아오는 길에 겨우 머리를 들어 밥 구멍으로 나를 들여다보면서,
"모두 부인했더니 지독한 악형을 받아서 나는 죽습니다"
하고 작별하는 모양을 보이기로, 나는,
"그렇게 낙심 말고 물이나 좀 자시오"
하고 위로하였더니 한 의사는,
"인제는 물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고는 다시 소식을 몰랐는데 공판 때에야 비로소 한필호 선생이 순국한 것과 신석충 의사가 사리원으로 끌려오는 도중에 재령강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 것을 알았다.
하루는 나는 최고 신문실(最高訊問室)이라는 데로 끌려갔다. 뉘라서 뜻하였으랴. 17년 전 내가 인천 경무청에서 심문을 당할 때에 방청석에 앉았다가 내가 호령하는 바람에 '칙쇼 칙쇼'하고 뒷방으로 피신하던 도변(渡邊 : 와다나베) 순사놈이 나를 심문하려고 앉았을 줄이야. 그놈은 전과 같이 검은 수염을 길러 늘이고 낯바닥에는 약간 노쇠한 빛이 보였으나 이제는 경무총감부의 기밀과장(機密課長)으로 경시의 제복을 입고 위의가 엄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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