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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온공의 교류 인물(2) 포은 정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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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6-04-07 11:17 조회1,5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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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선생과 척약재 선조님과는 1살차이나는 절친한 친구이시었습니다.

두분다 성균관이 중영되면서 학관으로 참여하시었으며

친명파로서 명나라와의 외교관계를 원만히 하시느라 애쓰신 점도 똑 같습니다.

척약재께서 일찍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아마도 포은선생과 운명을 같이 하셨으리라 짐작됩니다.

 

교류한 시문도 또한 많아서 이루 다 적을 수 없습니다만, 대표적인 것만 추려보면

[포은 상공구연 가이증지] [모추야 기달가정몽주 부지][기달가한림 종군한정당막][대창병중 기달가사성][기달가]

[척약재명]등이 있다.

 

척약재께서 1384년 운남 대리로 귀양가시는 중 영녕현 감문참에서 순국하신후 포은 선생은 다시 명나라에 성절사로

오셨다가  강소성 진강시에 있는 북고산이 있는 감로사에 들려 아래와 같은 시를 지었다.

 

揚子江渡望北固山悼     圃隱  鄭夢周

 

    先生豪氣蓋南州     선생의 호기가 중국 남쪽을 다 덮으니

 

    憶昔同登多景樓     다경루에 더불어 오른 옛일 생각나네

 

    今日重來君不見     오늘  다시 왔어도 그대 볼 수 없으니

 

    蜀江何處獨魂遊     양자강 어느곳에 홀로 넋이 떠 계시느뇨

 

주석에 선생은 척약재 선생과 함께 북고산 다경루에 오르신 적이 있다.  김선생은 홍무갑자년에 운남으로 유배가시던중 촉땅에서 돌아가셨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州甘露寺多景樓次韻二首

    윤주감로사다경루차운 이수    척약재 김구용


倦遊聊後此登樓  군유료후차등루  聊=귀울료, 도울료

天豁風微意欲秋  천활풍미의욕추  豁=열릴활. 뚫릴활

南北江山雲自起  남북강산운자기

古今興廢水空流  고금흥폐수공류

錢幢相見千年物  전당상견천년물

玉笛吹笙萬里愁  옥적취생만리수

賴有高僧如惠遠  뢰유고승여혜원

夕陽歸去更回頭  석양귀거갱회두

江流漠漠鳥飛還  강류막막조비환

天近雲霞手可攀  천근운하수가반

始信此樓無價處  시신차루무가처

望中相作畵圖看  망중상작화도간

 

유람에 지쳤지만 다시 다경루에 오르니

하늘 넓고 바람없어 가을이 가까운 듯 한데

남북강산에 바람 절로 일고

고금의 흉폐에도 물은 덧 없이 흐르네

생각컨데 전당(양무제때의 옛 그릇)은 천년묵은 물건이요

옥저와 생황소리는 만리의 근심일세

헤원과 같은 고승이 있어

석양에 다시 옛일 생각하네

강물은 아득하고 새는 날아드는데

저녁놀 가까워 잡을 듯 하네

누각은 천만금일지라도

바라보니 그림만 같네


 

惕若齋銘       鄭夢周

 

惟天之行, 日九萬程, 須臾有間,


유천지행, 일구만정, 수유유간,


物便不生, 逝者如斯, 袞袞無已,


물편부생, 서자여사, 곤곤무이,


一念作病, 血脈中否, 君子畏之,


일념작병, 혈맥중부, 군자외지,


夕惕乾乾, 積力之極, 對越在天.


석척건건, 적력지극, 대월재천

 

하늘에 운항하는 것이 하루 구만리라.


잠깐이라도 간단(間斷)이 있다면, 물(物)은 나지 못한다. 


운행하는 것은 이와 같아서 쉬지 못한다. 


잠깐동안이라도 병이 생기면 혈맥이 중단되는 것이다. 


군자가 그를 무서워하여


[낮에는 부지런하고] 밤에는 두렵게 반성하여


공부를 지극히 쌓으면 하늘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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