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백범일지(41)민족에 내놓은 몸 7. 제비처럼 입으로 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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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6-04-15 12:33 조회1,814회 댓글0건본문
7. 제비처럼 입으로 밥을
차입 밥! 얼마나 반가운 것인가. 그러나 왜놈들이 원하는 자백을 아니하면 차입은 허하지 아니한다. 참말이나 거짓말이나 저희들의 비위에 맞는 소리로 답변을 해야만 차입을 허하는 것이다. 나는 종내 차입을 못 받았다. 조석 때면 내 아내가 내게 들리라고 큰 소리로,
"김 구 밥 가져왔어요"
하고 소리치는 것이 들리나 그 때마다 왜놈이,
"깅 가메 나쁜 말이 했소데 사시이레(차입) 일이 오브소다"
하고 물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깅 가메'라는 것은 왜놈들이 부르는 내 별명이다.
그러나 배고픈 것보다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 있으니 그것은 우대였다.
내가 아내를 팔아서라도 맛있는 것을 실컷 먹고 싶다고 생각할 때에 경무총감 명석(明石元二郞)의 방으로 나를 불러 들여 극진히 우대하였다. 더할 수 없는 하지하천의 대우에 진절머리가 났던 나에게 이 우대가 기쁘지 않음이 아니었다.
명석이놈이 내게 한 말의 요령은 이러하였다. 내가 신부민으로 일본에 대한 충성만 표시하면 즉각으로 자기가 총독에게 보고하여 옥고를 면하게 할 터이요, 또 일본이 조선을 통치함에 있어서 순전히 일본인말을 쓰는 것이 아니라 덕망이 높은 조선 인사를 얻어서 정치를 하게 하려 하니 그대와 같이 충후한 장자로서 대세의 추이를 모를 바 아닌즉 순용함이 어떠냐, 그런즉 안명근 사건에 대한 것은 사실대로 자백을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명석에게 대하여,
"당신이 나의 충후함을 인정하거든 내가 자초로부터 공술한 것도 믿으시오"
하였다. 그놈은 가장 점잖은 체모를 가지나 기색은 좋지 못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뒤에 오늘 내가 불려나와서 처음에 당장에 때려죽인다고 하다가 이놈의 방으로 끌려들어온 것이었다.
이놈은 국우(國友)라는 경시다. 그는 제가 대만에 있을 때에 어떤 대만인 피의자 하나를 담임하여 심문하였는데 그 사람이 나와 같이 고집하다가 검사국에 가서야 일체를 자백하였노라 하는 편지를 국우에게 보내었다 하며, 나도 검사국에 넘어가거든 잘 자백할 터이니 그러면 검사의 동정을 얻으리라 하고 전화로 국수장국에 고기를 넣어서 가져오라고 명하여 그것을 내 앞에 놓고 먹기를 청한다. 나는 나를 무죄로 안다면 이 음식을 먹으려니와 나를 유죄로 안다면 나는 입에 대지 않는다고 하고 술을 들지 아니하였다.
그런즉 그놈이,
"김 구 씨는 한문병자(漢文病者)야. 김 구 씨는 내게 동정을 아니 하지마는 나는 자연히 김 구 씨께 동정이 간단 말요. 그래서 변변치 못하나마 드리는 대접이니 식기 전에 어서 자시오"
한다. 그래도 나는 일향 사양하였더니 국우는 웃으면서 한자로,
"君疑置毒否(그대는 음식에 독을 넣었다고 의심하는가?)"
하는 다섯 자를 써 보이고, 이제는 심문도 종결되었고, 오늘부터는 사식 차입도 허한다고 하였다. 나는 독을 넣었다고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그 장국을 받아먹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부터 사식이 들어왔다.
나와 같은 방에 이종록(李宗錄)이라는 청년이 있는데 그를 따라온 친척이 없어서 사식을 들여줄 이가 없었다. 내가 밥을 그와 한방에서만 먹으면 그를 나누어 줄 수도 있겠지마는 사식은 딴 방에 불러내어서 먹이기 때문에 그리할 수가 없어서 나는 밥과 반찬을 한 입 잔뜩 물고 방에 돌아와서 제비가 새끼 먹이듯이 입에서 입으로 옮겨 먹였다.
그러나 그것도 한 때 뿐이요, 이튿날 나는 종로 구치감(鐘路 拘置監)으로 넘어갔다. 방은 독방이라 심심하나 모든 것이 총감부보다는 편하고 거기서 주는 감식이라는 밥도 총감부의 것보다는 훨씬 많았다.
내 사건은 사실대로만 처단한다 하면 보안법 위반으로 극형이라 하여 징역 1년밖에 안될 것이지마는 나를 억지로 안명근의 강도 사건에 끌어다 붙이려 하였다. 내가 억지로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내가 서울 양기탁의 집에서 서간도에 이민을 하고 무관 학교를 세울 목적으로 이동녕을 파견할 회의를 한 날짜가 바로 안악에서 안명근, 김홍량 등이 부호를 협박할 의논을 하였다 하는 그 날짜이므로 나는 도저히 안악에서 한 회의에 참예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하건마는 안악 양산 학교 교직의 아들 이원형이라 하는 14세 되는 어린아이를 협박하여 내가 그 자리에 참예하는 것을 보았노라고 거짓 증언을 시켜서 나를 안명근의 강도 사건에 옭아 넣었다. 애매하기로 말하면 김홍량이나 도인권이나 김용제나 다 애매하지마는 그래도 이들은 그날 안악에는 있었으니 회의에 참에했다고 억지로 우겨댈 수도 있겠으나 5백 리 밖에서 다른 회의에 참예하였다고 저의 기록에 써놓은 내가 같은 날에 안악의 회의에도 참예시킨다는 것은 요술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나는 내게 대한 유일한 증인이 이원형 소년이 내가 심문 받는 옆방에서 심문 받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너는 안명근과 김 구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보았지?"
하는 심문에 대하여 이 소년은,
"나는 안명근이라는 사람은 얼굴도 모르고, 김 구는 그 자리에 없었소"
하고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옆에서 어떤 조선 순사가,
"이 미련한 놈아, 안명근이도 김 구도 그 자리에 있었다고만 하면 너의 아버지를 따라 집에 가게 해줄 터이니 시키는 대로 대답을 해"
하는 말에 원형은,
"그러면 그렇게 할 터이니 때리지 마셔요"
하였다.
검사정에서도 이원형을 증인으로 불러들였으나 이 소년이,
"예"
하는 대답이 있자마자 다른 말이 더 나오는 것을 꺼리는 듯이 곧 문 밖으로 몰아내었다. 나는 5백 리를 새에 둔 두 회의에 한 날에 참예하는 김 구를 만드느라고 매우 수고롭겠다고 검사에게 말하였더니 검사는 그 말에는 대답도 아니하고,
"종결!"
하고 심문이 끝난 것을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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