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익원공 연보자료 19 (56세, 1396년)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6-04-18 22:34 조회1,754회 댓글1건

본문

 

(56세) 1396년 태조5

 

태조 009 05/03/04 (신유) 004

/ 자은종의 도승통 종림과 전 판사 윤안정이 판교원이란 원집을 지어 도성 쌓는 인부들의 병을 치료하다

--------------------------------------------------------------------

자은 도승통(慈恩都僧統) 종림(宗林)이 전 판사(判事) 윤안정(尹安鼎)과 함께 판교원(板橋院)을 짓고, 성 쌓는 사람으로 왕래하다가 병이 있는 자에게 의원을 청하여 병을 진찰시키고 약을 지어 구료한데다, 또한 음식도 공급하여 병이 나으면 식량을 주어서 보냈다. 우정승 김사형이 이를 듣고 임금께 아뢰니, 임금이 미두(米豆)와 염장(鹽醬)을 내려 주도록 명하였다.

 

 

태조 010 05/08/16 (신축) 002

/ 조준 등의 건의로 공신 이서로 하여금 3년 동안 왕비의 능을 지키게 하다

--------------------------------------------------------------------

공신(功臣)인 문하 좌정승(門下左政丞) 조준(趙浚)과 우정승(右政丞) 김사형(金士衡) 등이 상언(上言)하였다.

 

 

태조 010 05/12/03 (정해) 001

/ 일기도·대마도를 정벌하러 떠나는 우정승 김사형 등에게 내린 교서

--------------------------------------------------------------------

문하 우정승(門下右政丞) 김사형(金士衡)으로 오도 병마 도통처치사(五道兵馬都統處置使)를 삼고,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 태학사(太學士) 남재(南在)로 도병마사(都兵馬使)를 삼고,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신극공(辛克恭)으로 병마사(兵馬使)를 삼고, 전 도관찰사(都觀察使) 이무(李茂)로 도체찰사(都體察使)를 삼아, 5도(道)의 병선(兵船)을 모아서 일기도(一岐島)와 대마도(對馬島)를 공격하려고 떠날 때에, 임금이 남대문 밖까지 나가서 이를 전송하고, 사형에게 부월(鈇鉞)과 교서(敎書)를 주고 안장 갖춘 말[鞍馬]·모관(毛冠)·갑옷·궁시(弓矢)·약상자(藥箱子)를 내려 주었으며, 재·무·극공에게는 각각 모관·갑옷·궁시를 내려 주었다. 교서는 이러하였다.

“예로부터 임금 된 자는 항상 중외(中外)를 어루만져 편안하게 하는 것으로 힘을 쓰는데, 불행히도 쥐나 개 같은 좀도둑이 생겼을 때에는 오로지 방백(方伯)에게 책임을 지워서 몰아 쫓고 잡게 하였으며, 그 세력이 성해져서 방백(方伯)이 능히 제어하지 못할 때에야 대신(大臣)에게 명령하여 출정(出征)하게 하는 것이니, 소호(召虎)가 회이(淮夷)를 정벌한 것과 윤길보(尹吉甫)가 험윤(玁狁)을 친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내가 즉위한 이래로 무릇 용병(用兵)의 도리를 한결같이 옛일을 따라서 일찍이 경솔한 거조가 없었던 것은 이들 백성들이 동요될까 염려하였던 것인데, 이제 하찮은 섬 오랑캐가 감히 날뛰어 우리 변방을 침노한 지가 3, 4차에 이르러서, 이미 장수들을 보내어 나가서 방비하게 하고 있으나, 크게 군사를 일으켜서 수륙(水陸)으로 함께 공격하여 일거(一擧)에 섬멸하지 않고는 변경이 편안할 때가 없을 것이다. 경은 의관(衣冠)의 명문(名門)이며 조정에서는 재상의 큰 재목이라, 기품(氣稟)이 삼엄(森嚴)하고 입지(立志)가 홍의(弘毅)해서 서정(庶政)을 처리할 때는 다 이치에 맞고, 인재(人材)를 천거하면 모두 그 소임에 합당하여, 밝기는 허(虛)와 실(實)을 잘 알고, 슬기로움은 외적의 난을 제어할 것이다. 이에 제도 병마 도통처치사(諸道兵馬都統處置使)를 삼고 절월(節鉞)을 주어 동렬(同列)을 시켜 돕게 하고, 널리 막료(幕僚)를 두어서 그 위엄을 중(重)하게 하니, 여러 장수들이 부복(俯伏)해서 명령을 들을 것이요, 적은 소문만 듣고도 간담(肝膽)이 떨어질 터이니, 경은 앉아서 계책을 세워서 장수와 군사들을 지휘하여 두 번 출병할 일이 없게 하여, 만전(萬全)을 도모하여 나의 생각에 맞게 하라. 혹시나 장수나 군사가 군율(軍律)을 어기거나, 수령(守令)들의 태만한 일이 있거든 법대로 징계할 것이며, 크거나 작은 일을 물론하고 즉시 처결(處決)하라.”

도당(都堂)에서 한강(漢江)까지 전송하였다.

 

 

공이 어명을 받고 동정(東征)주D-001할 때 전별차 지은 많은 갱운(?韻 남의 시에 차운하여 화답하는 것)

---

양촌선생문집 제18권  (序類)

시중(侍中) 김사형(金士衡)을 축하하는 시의 서



태조 010 05/12/22 (병오) 001

/ 오도 병마 도통처치사 김사형에게 궁온을 내려 주다

--------------------------------------------------------------------

경흥 윤(敬興尹) 장자충(張子忠)을 보내어 처치사(處置使) 김사형(金士衡)에게 궁온(宮醞)을 내려 주었다.

 

 

그가 동정(東征)할 적에는 위덕(威德)이 닿는 곳마다 싸우지 않고 스스로 굴복하며 투항하는 자가 잇닿아 해구(海寇 왜적(倭賊))가 영원히 소탕되었으니, 공은 참으로 편안하게 웃고 즐기면서 정신으로 적을 막아 내는 사람이라 하겠다.

[주 D-001] 동정(東征) : 1396년(태조 5) 10월에 왜구(倭寇)가 동래(東萊)·울진(蔚珍) 등지에 침입하므로, 12월에 김사형(金士衡) 등을 보내어, 일기(壹岐)와 대마도(對馬島)를 치게 한 일을 가리킨다. 《太祖實錄 五年條》

양촌선생문집 제18권  (序類)

시중(侍中) 김사형(金士衡)을 축하하는 시의 서



○ 손자 김종윤(김승의 3남)이 태어났다.

*전첨공 김종윤(典籤公 金宗潤) (1396년 태조 5년∼1464년 세조 10년)

벼슬은 종친부 전첨에 이르다. 묘소는 포천에서 실전하여 충북 괴산군에 설단하여 세향을 지내고 있다.



○8촌 김성목(金成牧)의 손자 김익정(金益精), 문과급제하였다.

<조선문과방목>

김익정(金益精)

태조(太祖) 5년 (병자, 1396년), 식년시(式年試) 을과1(乙科1)

인적사항

본관(本貫) 안동(安東)

거주지(居住地) 미상(未詳)

가족사항

손(孫) 김수녕(金壽寧)

제(弟) 김익렴(金益濂)

부(父) 김휴(金休)

조부(祖父) 김성목(金成牧)

증조부(曾祖父) 김구(金玖)

외조부(外祖父) 김효신(金孝信)

처부(妻父) 권담(權湛)

이력 및 기타사항

전력(前歷) 생원(生員)

관직(官職) 이조/참판(吏曹/參判)



<시대상황>

○정도전(鄭道傳), 1396년에 이른바 표전문(表箋文)문제가 일어나 명나라가 이를 트집삼아 내정을 간섭하자, 전부터 추진해오던 요동(遼東)수복운동에 박차를 가하여 군량미확보, 진법훈련(陣法訓鍊), 사병혁파를 적극 추진하였다.

 

○권근(權近), 1396년 이른바 표전문제(表箋問題)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때 그는 외교적 사명을 완수하였을 뿐 아니라, 유삼오(劉三吾)·허관(許觀) 등 명나라 학자들과 교유하면서 경사(經史)를 강론하고, 명나라 태조의 명을 받아 응제시(應製詩)24편을 지어 중국에까지 문명을 크게 떨쳤다.

귀국한 뒤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으로 화산군(花山君)에 봉군되고,




댓글목록

김용주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용주
작성일

  주회대부 익원공연보 매일 잘보고 있읍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