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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원공 연보자료 20 (57세, 13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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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6-04-19 21:51 조회1,4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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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세) 1397년 태조6

 

태종 031 16/04/02 (갑자) 001 / 문성 부원군 유양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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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축년(丁丑年)에 왜구(倭寇)가 크게 떨치니, 태조(太祖)가 우정승(右政丞) 김사형(金士衡)을 보내어 가서 토벌하게 하였다. 그때 왜구(倭寇)가 마침 이르매 유양이 변장(邊將)과 함께 공격하니, 왜적의 형세가 궁해서 항복하고자 하였다. 변장(邊將)이 허락하였으나 적은 아직 허실(虛實)을 엿보고 우물쭈물하면서 결정을 짓지 못하였다. 유양이 궁시(弓矢)를 풀어 놓고 적의 진중으로 말을 달려 들어가 다른 뜻이 없음을 보이니, 적이 이를 믿고 악수(握手)하고 마음을 털어놓고 좋은 칼을 주었다. 유양이 즉시 항복한 왜인의 사자(使者) 10인을 데리고 김사형(金士衡)의 막사(幕舍)로 가니, 김사형이 왜선(倭船)을 울산포(蔚山浦)에 머물러 두고, 바로 왜사(倭使)를 조정에 보내었다. 명하여 양미(糧米)를 후하게 주어 그들을 위로하여 회유하게 하고, 비밀히 변장(邊將)을 시켜 그들을 섬멸하게 하였는데, 병선(兵船)을 징발하여 아직 모으지도 아니하여, 적이 비어(飛語)를 듣고 마침내 울산 군사(蔚山郡事) 이은(李殷)과 아전[使] 1명, 기생 1명을 붙잡아서 갔다.



태조 011 06/01/28 (신사) 003

/ 투항해온 왜적이 울주 지사 이은을 납치해간 일 때문에 삼남 절제사들을 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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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당(都堂)을 중심으로 각사(各司)와 기로(耆老)에게 명하여 최운해(崔雲海)·이귀철(李龜鐵)·김빈길(金贇吉)·김영렬(金英烈) 등의 죄를 의논하게 하였다. 당초에 항복을 청해 온 왜적이 경상도 울주포(蔚州浦)에 와서, 왜적의 괴수인 나가온(羅可溫)이 그의 아들 도시로(都時老)와 반당(伴黨) 곤시라(昆時羅)를 볼모로 삼아 계림 부윤(鷄林府尹) 유양(柳亮)에게 보낸 것을, 유양이 질병으로 나가 보지 않았더니, 왜적이 스스로 의혹한 나머지 지울주사(知蔚州事) 이은(李殷)을 납치하여 도망갔었다. 이때 최운해는 경상도 도절제사였고, 이귀철은 충청도 도절제사였으며, 김빈길은 전라도 도절제사, 김영렬은 경기우도 절제사였는데, 최운해가 영을 어긴 탓으로 도망하는 것을 놓쳐버렸고, 이귀철·김빈길·김영렬 등도 모두 그 기한에 미치지 못하여, 5도 도통사(五道都統使) 김사형(金士衡)이 이들을 경산부(京山府)에 잡아 가두고서 〈이 사실을〉 긴급 보고하며 그 죄를 청한 것이었다.

 

 

태조 011 06/01/30 (계미) 001

/ 5도 도통사 김사형이 돌아오니 흥인문 밖까지 거둥하여 맞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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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도 도통사 김사형이 돌아오니, 임금이 흥인문(興仁門) 밖까지 거둥하여 그를 맞아 위로하였다.



태조 011 06/02/08 (신묘) 001

/ 의안백 화와 좌정승 조준 등에게 명하여 우정승 김사형 등에게 잔치를 베풀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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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안백(義安伯) 이화(李和)·좌승정 조준(趙浚)·봉화백(奉化伯) 정도전(鄭道傳)에게 명하여 우정승 김사형(金士衡)에게 잔치를 베풀게 하니, 사은사(謝恩使) 권중화(權仲和) 이하 여러 사신(使臣)과 구육(㡱六)도 이에 참예하였다. 김사형에게 서대(犀帶)를 하사하였다.

 

태조 011 06/02/11 (갑오) 002

/ 투항해온 왜인이 도망간 일로 최운해·이귀철 등을 잡아다가 국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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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운해(崔雲海)·이귀철(李龜鐵)·김빈길(金贇吉)·김영렬(金英烈) 등을 잡아와 순군옥(巡軍獄)에 가두고, 대간(臺諫)과 형조로 하여금 이를 국문(鞫問)하게 하였다. 옥사(獄事)가 이루어지니, 우정승 김사형(金士衡)과 의성군(宜城君) 남은(南誾)이 그 죄를 감해 주기를 청하였다.

 

 

태조 011 06/02/17 (경자) 001

/ 좌정승 조준 등이 우정승 김사형을 위하여 잔치하니 술을 쓰도록 허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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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 공신(開國功臣) 좌정승 조준(趙浚) 등이 우정승 김사형(金士衡) 등을 위하여 잔치하니, 임금이 술을 쓰도록 허락하였다.


양촌선생문집 제8권 /시류(詩類) - 신도팔경(新都八景)

창녕(昌寧 봉호) 시중(侍中) 성여완(成汝完)이 김 정승 사형(金政丞士衡)에게 축하한 시의 운을 차한다

상은 지위가 상공이신데/右相位上公

기국과 재주가 거룩도 하네/器偉才亦雄

좋은 때 만나 흥운을 도와서/遭時翊興運

한번도 싸움을 해본 일 없네/不勞衣一戎

폐단을 죄다 제거하였고/弊蠹盡除革

현준을 높이 등용하였다/賢畯俱登崇

태평한 다스림이 흡족해지고/隆平政治洽

전옹이 격양가 노래부른다/擊壤歌田翁

공명이 벌열을 빛내니/勳名光閥閱

대마다 이룩한 공적이 있다/奕世有成功

봉작을 이어받아 식읍이 크고/襲封食大邑

높은 면관으로 조정에 간다/巍冕趨天宮

위태한 때에 함께 애쓰셔/安危共注意

임금의 권애가 나날이 깊다/聖眷日以鍾

명을 받고 나아가서 동쪽을 치니/受命出征東

조상의 공적과 또한 같았다/又與祖烈同

해구가 위성을 두려워해서/威聲讋海寇

많은 무리 와서 항복하였다/來降多率從

임금을 도와서 문교 베푸니/佐后矢文敎

황천이 내린 마음 능히 편케 하였다/克綏皇降衷

 

태조 012 06/10/06 (갑신) 001

/ 가례 도감을 설치하고 이화·조준·김사형·정도전 등으로 제조로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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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 도감(嘉禮都監)을 설치하여 영삼사사(領三司事) 이화(李和)·좌정승 조준(趙浚)·우정승 김사형(金士衡)·봉화백(奉化伯) 정도전(鄭道傳)으로 제조(提調)를 삼았다.

 

 

태조 012 06/12/16 (갑오) 001

/ 조준·김사형·김사행에게 겸직 등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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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趙浚)으로 겸 판의흥삼군부사(兼判義興三軍府事)를, 김사형(金士衡)으로 겸 판사헌부사(兼判司憲府事)를, 김사행(金師幸)으로 수충 보리 공신(輸忠輔理功臣) 판경흥부사(判敬興府事) 동판도평의사사사(同判都評議使司事)를 삼았다.


<시대상황>

○정도전(鄭道傳), 1397년에 《경제문감별집 經濟文鑑別集》을 저술하여 군도(君道)를 밝히고, 12월에 동북면도선무순찰사가 되어 군현의 지계(地界)를 획정하고 성보(城堡)를 수선하며 참호(站戶)를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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