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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 上古史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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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6-05-01 22:37 조회1,529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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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김일긍


   김일긍(金日兢)은 1580년 <경진보>의 <김방경행장>에 ‘(김방경이) 나이 16세가 되어 삼한공신 태사대광을 지낸 선조 日兢의 蔭補로 양온사 同正에 선임되었다’고 하였다. <조선씨족통보>에 안동김씨 시조라고 하였고, <족보>에는 ‘금자광록대부 상서우복야 삼한공신 태사대광’을 역임하였다고 적었다.

 

- 둘째, 김일긍은 1580년「경진보」의 「김방경행장」에 있는데 계보상의 위치를 알 수 없어 세계에 기록하지 않았다.  1739년「기미보」는 '세계원류'에 달았고 방주에 김방경의 선계인 것은 분명하나 세계가 분명하지 않다고 기록하였다.  1825년「을유보」도 「기미보」의 내용을 그대로 따랐을 뿐 다른 자료를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재 방식은 「경진보」와 비교하면 가능한 한 관련 인물을 세계에 기록하려는 조선후기 분위기를 보여준다.



7) 김이청


   김이청(金利請)은 1580년 <경진보>에 경순왕 11대손으로 적고, 당시에  안동김씨의 시조로 본 듯하다. <족보>에는 상락군(안동태수) 역임, 고령 즉 안동에 거주하였다고 하였다. <여지승람 본부 인물기>에서 인용한 ‘世載名德 受籍安東 自公始’를 첨기하였다.

   증평 남하리 서당골에 있는 김명룡(金命龍, 1618년 생원급제) 묘비(*3,40년전 세운 듯)에 ‘始祖 利請 上洛君 新羅敬順王玄孫 配大昌夫人昔氏’ 라 새겨 있는데, 고증할 수 없으나 김명룡 가계에 전해오는 가승에 의해 적은 듯하다. 특이한 것은 배위가 ‘大昌夫人昔氏’ 라는 것으로 다른 데서 볼수 없는 唯一 기록이다.


- 첫째, 김이청은 1580년「경진보」에 경순왕 11대손으로 처음 나타나지만 논증하지는 않았다. 1739년「기미보」는 '세계원류'에 기록하고 '경주김씨분파보'에 11세손으로 되었다고 방주를 달았는데 자료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1825년「을유보」는 '씨족원류'가 아닌 본문에 기록하고 있어 기재 방식의 변화를 볼 수 있다. 1825년「을유보」는 김이청을 경순왕 11세손으로 기록하지 않고 경순왕 후손이요 원조(遠祖)로만 기록하였다.


댓글목록

솔내님의 댓글

profile_image 솔내
작성일

  ‘금자광록대부 상서우복사 .... 우복야라고 적어야  맞습니다.  직위를 나타낼때는 사가 아니라 야로 적어야 합니다.

김주회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주회
작성일

  솔내 대부님! 감사합니다.
지적해 주신 대로 정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