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넣었습니다.] 5월7일... 의성 사촌에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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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홍 작성일06-05-03 21:38 조회2,392회 댓글3건본문
금년 5월 7일 의성 사촌의 만취당에서 "월란척촉회"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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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된 유림모임 속월란척촉회(續月瀾躑躅會)
석사과정 3학기 김태홍
‘월란(月瀾)’은 월란사를 이야기하고, ‘척촉(躑躅)’은 철쭉의 한자표현이다. 이 모임은 약 400여년된 것으로, 현재 유림의 모임으로 크게 알려진 ‘박약회’나 ‘유도회’보다도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유림의 대표적인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월란척촉회가 안동지역 유림사회에서 가지는 비중은 대단하다. 월란척촉회의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양반으로 대접을 받는다.1)
1. 월란척촉회
월란척촉회는 400년 전 농암과 퇴계선생을 중심으로 한 오늘날의 문학동호회와 같은 성격의 유림모임이다. 퇴계와 농암의 회동에 농암의 자제와 퇴계의 제자들이 따라와 그대로 회원으로 구성되었으며, 그리하여 이 모임은 안동문화를 형성시킨 요소이자 모태가 되었다.2) 이 모임은 도산면 원촌리에 위치한 월란정사(月瀾精舍)에서 행해졌다. 월란정사는 원래 작은 사찰인 월란사(月瀾寺)가 있던 자리이다. 강세황의 ‘도산서원도’ 우측 끝에 그려진 이곳은 폐허가 된 16세기에 농암과 퇴계에 의해 알려졌다. 농암과 퇴계는 함께 이곳에서 ‘월란척촉회’를 개최하였고, 퇴계는 이후 강학의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월란척촉회에 대한 농암과 퇴계의 애착은 농암집에 드러난다.(원문생략)
“월란척촉지회는 나를 위해 연기한 듯 하나 이제 나는 늙고 병든 몸이라 제외시킴이 어떻겠는가. 또한 일직이 강산 전체를 그대에게 붙여준 편지가 있었는데, 다만 이번만은 언약도 있고 하니 부득불 병든 몸을 이끌고라도 그대의 뜻에 부응하고자 하니 요량하기 바라네.”
1555년 4월 10일, 농암 늙은이 손이 떨려 대강대강 쓰노라.
2. 속월란척촉회(續月瀾躑躅會)
이 모임은 퇴계선생의 후대에 와서는 한동안 행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월란정사 역시 버려져 있다시피 하였는데, 1968(丙寅)년 이래 몇 유림이 선현의 유적지를 수심(搜尋)해오다가 도산 강학의 발원지임을 알게 되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93년, 월란칠대기적비를 세우고 ‘월란척촉회’의 전통을 계승하고자 권오봉, 이근필, 김창회, 류창훈 선생 등이 논의하여 ‘속월란척촉회’(아래부터 월란척촉회로 통칭)를 결성한 이래 지금까지 계승되어 오고 있다.
1) 월란척촉회의 구성과 임원
월란척촉회가 발기할 당시의 위원회를 살펴보면 위원장, 부위원장, 총무, 재무, 편간, 직일, 감사로 구성이 되어 있다. 첫 번째 임원진은 발기 당시의 임원들이 그대로 연임 하였다. 월란척촉회는 회장, 부회장, 총무, 감사로 구성이 되어 있다. 임원의 임기는 2년이며, 연임도 가능하다. 현 회장은 류창훈(안동향교 전교)씨이다.
2) 월란척촉회의 회원
월란척촉회의 가입은 상당히 까다롭다. 회원으로 등록되기 위해서는 유림의 추천이 있어야 하며, 정기 모임 때 기존회원들의 수락이 있어야만 회원으로 활동 할 수 있다. 회원의 가입에서도 한집안(가정)에서 한명의 회원만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그 이유는 회원의 직함이 자손대로 유임되기 때문인데, 장남에게만 유임이 된다. 예외로 형제가 가입된 것이 의성의 안동김씨(아래부터 사촌김씨) 문중에서 두 사례, 부자3)가 가입된 것이 진성이씨와 영천이씨에서 각각 한 사례가 나타난다. 회원의 회비는 가입 당시 2만원이며 년 2만원을 계속 낸다.
회원의 성씨는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어, 이것이 유림의 연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으나, 주로 많은 수를 차지하는 성씨는 진정이씨와 사촌김씨이다.
3) 모임시기와 성격
월란척촉회의 모임은 정일이지만 통문을 매번 발송한다. 매년 5월 첫째주 일요일에 월란정사의 아래에 있는 월란칠대기적비 앞에서 모임을 가진다.4) 모임에서는 회원의 가입과 제명에 대해 논하고, 그해의 결산을 하며 친목을 다지는 데, 가장 주된 내용은 역시 유림의 동향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다. 모임이나 유림활동에 대한 자금은 회비와 위토, 찬조금을 사용한다. 최근에는 월란척촉회의 역사와 활동내용, 그리고 선현들의 가르침 등을 기록한 ‘월란지’를 발간하였다.
4) 또다른 모임, 월란정사관리회5)
월란정사는 퇴계선생이 제자인 만취당 김사원 선생을 아껴 곁에 두고자 했으므로, 월란정사를 주고 그곳에서 공부하게 하여, 사촌김씨 문중의 소유로 되어 있었다. 지금 현재는 사촌김씨문중과 퇴계문중의 공동 소유로 되어 있다.
월란정사의 관리 역시 두 문중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실제는 사촌김씨가 거의 주관하여 관리한다. 그 이유는 버려졌던 월란정사를 사촌김씨 문중에서 기금을 마련해 중수하고 위토를 만들어 관리하기 때문이다. 진성이씨가 포함된 이유는 발표자의 생각으로는 퇴계선생의 영향이 있겠지만 월란정사 바로 밑의 마을에 집성촌이 있었으므로 관리가 수월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쨌든 월란정사를 중수한 이후 월란정사관리회가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되었다.6)
월란정사를 관리하기 위한 모임은 퇴계의 후손 중에서 유사 한명과 사촌김씨 문중에서 유사 한명을 두고 있다. 2년마다 한번씩 월란정사에서 모임을 갖는데, 봄에 모임을 한다. 모임은 비정일이며 통문을 띄운다. 모임의 모든 운영비는 사촌김씨문중에서 지출하고 있다.
모임 내용은 월란정사의 보수나 유지에 관련한 것이 주 내용이지만 두 문중의 친목도모에도 큰 역할을 한다.
조사일시 : 2005. 12. 4
제 보 자 : 김창회(71세, 속월란척촉회 발기인),
김기회(55세, 월란정사관리모임 전년도 유사)
1) 김기회(55세), 월란척촉회 회원, 2005. 12. 4 조사
“월란척촉회에 있는 분들은 다 대단한 분들이래, 여기 보면 이름만 말하면 유림들은 누구나 아는 사람들로 되어 있다고.. 나는 여기서 나이가 네 번째로 적다”
2) 강호문학연구소, 농암 이현보의 강호문학, 2000. 6, 44p
3) 농암종손, 퇴계종손이 그 사례인데 차종손의 이름 위에 찬앙(贊仰)이라고 표시해 두었다.
4) 원래 첫회는 월란정사에서 모임을 가졌으나, 길이 험하고 연로한 분들이 많아 지금은 밑의 기적비 앞 공터에서 모임한다.
5) 정식으로 명칭이 정해진 것은 아니므로 발표자가 임의로 설정한 명칭입니다.
6) 속월란척촉회는 1993년도에 새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지만, 월란정사관리회는 훨씬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속월란척촉회의 중심 성씨가 진성이씨와 사촌김씨가 된 것은 아닐지..
댓글목록
김태홍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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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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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이 글은 제가 대학원 수업과정에서 안동의 유림모임에 대해 조사하였던 자료 중...
월란척촉회부분만 발췌하여 요약한 것입니다.
김태홍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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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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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이번 모임에 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참여하여.. 사진으로 담아보려 합니다.
사촌에서 열리는 영남유림모임이라.. 큰 행사가 될 것 같습니다.
사진으로 담게되면 올리겠습니다.
김정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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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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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큰 모임이 만취당에서 열리는 군요~!
소개에 감사 드리며 한번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