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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소설-이 생에서는 늘 이별이었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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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6-05-08 18:43 조회1,4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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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회>

 

 

 

 

  『 나, 낙향하려고 사직소를 올렸네. 』
 전혀 생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가끔 이견은 관직에 회의감을 표시했고, 그때마다 푸념처럼 술자리서 낙향을 말하곤 했다. 그러나 말 그대로 푸념일 뿐 이처럼 단언적이진 않았다.
  『 *아계(鵝溪)공 때문입니까? 』
 이견은 잠시 곤혹스런 표정을 짓더니 술잔을 들었다. 작년12월 퇴계선생이 타계한 뒤, 퇴계 적통은 자신에게 있다고 아계가 떠들고 다닌다는 소문이 사림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 꼭 그 때문만은 아닐세. 선생께서 비운 자리가 너무 커 마음이 공허해서 견디기가 어려워.』
  『 그럼 얼마간 휴가를 연장하면 될 일 아닙니까? 』
  『 아니야, 이참에 아주 물러나 그동안 못한 공부를 할까 하네. 선생께서 타계하신 뒤에야 환로(宦路)와 학문이 병행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네. 』
 이견의 결심이 워낙 단호해서 그는 만류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이견은 오래 전부터 낙향을 계획하고, 준비해 온 듯 보였다. 그것은 낙숫가엡. 봉의 상념은 거기서 깨어졌다. 성암이 말을 건넸기 때문이었다.
  『 다른 특별한 말은 없었소? 』
  『 낙숫가 서애(西厓)라는 언덕에 서당을 세울 땅을 마련해 놨다더군요. 』
 바람이 심해졌다. 바람에 날리는 도포자락을 손으로 여미며, 하당이 말했다.
  『 그 친구 결심을 아주 단단히 한 모양이군. 이젠 이견이 아니라 서애라 불러야겠구먼. 』
  『 아니야, 그는 돌아 올 걸세. 한번 환로에 들어서면 떠나고 싶다고 마음대로 떠날 수가 없다네. 그는 반드시 돌아 올 거야. 자첨(子瞻. 김첨(金瞻)의 자) 그만 가세나. 』 성암은 확신하듯 말하며, 걸음을 옮겼다.
  『 저희 집에 들러, 잠시 쉬시다 가시지요. 』
  『 아니오, 마음이 허전해서 어디…  어른 오시거든 못 뵙고 간다고 말씀 전해주시오. 』
 두 사람은 어두운 표정으로 발길을 뗐다. 허봉은 그들이 도포자락을 날리며, 저만큼 멀어져 가는 것을 한동안 바라보다 돌아섰다. 발걸음이 이상할 만큼 허전했다. 동네로 들어섰다. 줄지어 늘어선 솟을대문들. 그가 이십년을 살아온 낯익은 동네였다. 이견의 집 앞을 지났다. 대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이견이 살던 집은 이견의 종제가 들어와 살 것이라 했다. 어릴 때부터 친형처럼 기대던 이견이었다. 그런데 그가 떠났다. 아주 온 동네가 비어 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내가 갈 길을 먼저 열어놓기도 한 셈이다.
 이견을 생각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자기 집 앞에 와 있었다. 대문을 밀고 들어섰다. 그는 안채에 들러 모친께 반필면을 하고는 우물가에서 대충 씻고는 바깥사랑채로 들어와 이불을 펴고 누웠다. 더 이상 속이 메슥거리진 않았으나 피곤했다. 한숨 자고 일어나 저녁때 아버지에게는 사암댁에서 바로 미암선생 강학에 간척하면 될 것이었다. 입이 무거운 형은 걱정 않아도 될 터였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런데 청하는 잠은 오지 않고 문득 땟국이 흐르는 꾀죄죄한 도포에 찌그러진 갓을 쓴 손곡의 초라한 모습이 떠올랐다. 십 년 전에 처음 만났을 때처럼 손곡은 여전히 꾀죄죄한 차림의 떠돌이 행색 그대로였다. 손곡이 송악에 살림을 차렸다는, 오래 전부터 떠돌던 소문은 역시 소문에 불과했던 모양이었다.

 

 

註)
*아계(鵝溪1539∼1609) 조선중기 문신 이산해(李山海)의 호. 동서분당 때 동인이었고, 동인이 남 북인으로 갈릴 때 북인이 되었으며, 북인이 대북, 중북, 소북으로 나뉘어 질 때 대북의 영수가 되었다. 영의정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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