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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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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6-05-12 22:04 조회1,789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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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박장영       작성일 : 2004-08-14 오전 11:41:49 조회 : 308
  21 안동의 종택을 찾아서 20 <삼소재(三素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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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종택을 찾아서 20 <삼소재(三素齋)> 안동민속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박장영


안동시 풍산읍에서 하회마을 가는 길로 좌회전하여 1㎞ 쯤 가다보면 길 오른편에 마을이 바로 소산리이다. 이곳 소산마을에는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두 김씨 문중이 400여 년을 세거해 오고 있다. 하나는 고려의 개국공신 김태사 선평(宣平)공을 시조로 하는 후안동김씨이고, 다른 하나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넷째 아들 은열(銀說)공을 시조로 하는 선안동김씨이다.

이 집은 선안동김씨 시조의 18대손인 용추(用秋) 공의 종택으로 당호가 삼소재이며 안동시 풍산읍 소산1리 257번지에 있다. 삼소재는 용추 공의 5대 손인 김종락 공의 아호이다.

선생의 문집인 삼소재집(三素齋集)에 실린 학서(鶴棲) 류이좌(柳台佐)의 삼소재기에“내 친구 상락 김사문 기언은 글을 읽고 행의가 있는 집사람이다. 하루는 와서 청하기를‘사는 집에 현판이 없을 수 없으므로 삼소라고 써 걸어서 경계하고 반성하는 바탕으로 삼고자 한다’고 하였다. 그 뜻은 소리(素履)를 행하고(行素履), 소찬(素餐)을 먹고(食素餐), 소산(素山)에 산다(居素山)는 것이다. 나는 이르되‘아름다운지고 집의 이름이여’라고 했다.”

이 집은 조선조 현종 15년(1674)에 건립하였고, 1985년에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66호로 지정되었다. 마을 중턱의 완만한 경사면에 계단식으로 기단을 쌓아 앞에 화단을 꾸미고 그 뒤에는 ㅁ자집을, 우측에는 사당을 배치하였다. 안채는 중앙에 4칸 반의 넓은 대청을 두고 그 왼쪽에 안방 2칸과 뒷방 1칸을 두었으며 오른쪽에는 상방 1칸을 두었다. 대청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연등천장이며 외벽의 각 칸에는 쌍여닫이판문을 달았다.
바깥채는 중문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 마구간 1칸, 부엌 2칸을 배치했고 오른쪽에 사랑방과 사랑대청이 있다. 사랑채에는 삼소재 편액이 걸려있고 방이 1칸 반이고 마루가 1칸 반이다. 마루는 우물마루이고 머름중방이 있으며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벽은 중방과 하방 사이를 판벽으로 마감하고 널빤지 문짝을 달아 바라지창을 내었다.

사당은 장방형의 자연석으로 기단을 50㎝ 정도 쌓고 그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각주를 세운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 집이다. 전면에 반 칸의 퇴를 내었고 각 칸에는 넉살무늬가 있는 넌출문을 달았으며 중앙 칸에는 쌍여닫이문이다. 그리고 좌우는 여닫이문이고 양 측면 벽의 중방 위에는 각각 작은 넉살광창이 있다.

댓글목록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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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삼소재문집 해제는 여기(<a href=http://km.naver.com/list/view_detail.php?dir_id=81101&docid=195814)를 target=_blank>http://km.naver.com/list/view_detail.php?dir_id=81101&docid=195814)를</a> 클릭!!!
위 삼소재 전경 옛 사진  상단에 있는 건물은 사당인가요? 지곡서당인가요?

김태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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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위 글중 학서 유이좌는 유태좌의 오기인것 같습니다.
유태좌 [柳台佐, 1763~1837]
본관 풍산(豊山). 자 사현(士鉉). 호 학서(鶴棲). 1794년(정조 1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에 등용되고, 부총관을 거쳐, 1826년(순조 26) 대사간이 되었다. 문장에 매우 능하였으며 문집에 《학서문집》, 저서에 《주의휘편(奏議彙編)》 《천휘록(闡揮錄)》 《주서기송(朱書記誦)》 《백세운결록(百世隕結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