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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사 진각국사비 안내판 수정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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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6-05-18 11:56 조회1,613회 댓글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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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시제에 다니는 길목에 상서공(김효인=충렬공의 아버님)께서 쓰신 진각국사비가 있는 월남사지가 있습니다.

월남사지진각국사비의 안내판에는 이 비의 글씨를 탁연이 썼다고 되어 있어 이를 강진군청에

고쳐달라고 민원을 냈었습니다.

 

강진군청에서 온 답신입니다.

 

 

▣ 월남사지 안내퍈 오류 수정요구에 대한 답변

평소 남도답사일번지 강진 군 문화유적에 관심을 가져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현재 우리 군에 설치된  안내판 내용은  전남지역 문화재 안내판 개선대책으로 전라남도에서 학술단체에 학술용역을 실시후 문안용역을 완료하여 문안집을 시달 제작된 내용입니만 선생님께서  의견을 제시한 내용을 문화재 위원님께 상의한 결과 정확한 걸로 사료되어  조속한시일내에 수정토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소중한 의견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강진군청 민원 원문


>안녕하십니까?
>
>몇일전 강진군 일대를 관광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강진을 관광하면서 군청의 담당하시는 분들의 노고를 느끼면서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어 편지보내니 확인하시고 맞으면 수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월남사지에 가면 진각국사비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더군요.
>여기에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
>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보물제313호
>
>.........전략
>이 비석은 월남사를 창건한 진각국사(1178-1234)를 추모하기 위하여
>고려고종 37년(1250년)에 세워진 것이다.
>비문은 이규보(1168-1241)가 지었고, 글씨는 서예가로 이름난 탁연이
>왕명을 받아 썼다.
>후략.......
>
>위와 같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 진각국사비는 앞면의 글은 이규보가 짓고 글씨는 당대의
>명필인 김효인이 썻으며, 뒷면의 음기는 최자가 짓고 탁연이 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대한 근거 자료를 덧 붙여 보내오니 살펴보시고 맞으면 빠른 시일내에
>고쳐주시기 바랍니다.
>
>....전략
>비문은 이규보가 지었고, 글씨는 서예가로 이름난 김효인이(金孝印) 왕명을 받아 썼다.
>뒷면의 음기는 최자가 지었고 글씨는 탁연이 썼다.
>하략.....
>
>이렇게 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
>감사합니다.
>
>  
>  
>
>   월남사지진각국사비(月南寺址眞覺國師碑)  
>
>
>        시대   고려
>  
> 연대   1235년(고종22년)
>  
> 유형/재질   탑명·등명 / 돌  
>  
> 문화재지정   보물 - 313호  
>  
> 크기   세로 115.1cm, 가로 63.6cm, 글자크기 2.1cm
>  
> 출토지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813 월남사지  
>  
> 소재지   (한국)-월남사지 -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813
>  
>
>서체   해서(楷書)
>  
>
>찬자/서자/각자    이규보(李奎報) / 김효인(金孝印) / 미상  
>
>  
>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월남사 터에 있는 고려 후기의 고승 진각국사 혜심[眞覺國師 慧諶 : 1178(명종 8년)~1234(고종 21년)]의 비. 고려 후기의 대표적 문인 이규보(李奎報)가 짓고 김효인(金孝印)이 써서 1235년(고종 22)에 세웠다. 비는 현재 원 자리에 남아 있는데 귀부 위에 절단된 비신이 있고 마모 상태가 심하여 글자를 판독하기 어렵다. 비문은 수선사의 제2세 사주인 진각국사가 향공진사의 아들로 태어나 과거에 급제한 후 보조국사에게 출가하여 간화선을 수행하고 보조국사에 이어 수선사의 사주가 되어 강종의 지원으로 수선사를 확장하고 집정자 최우는 두 아들을 국사에 출가시키는 등 연관을 맺고 월등사에서 입적한 생애를 기술하였다. 진각국사는 입적하자 입적처인 월등사에서 다비하여 영골을 거두어 본산인 송광사에 돌아가 광원암에 탑을 세웠다 하였는데 실제로 비는 월남사에 있다. 음기는 입적 후 16년이 지난 1250년(고종 37)에 최자(崔滋)가 짓고 탁연(卓然)이 썼는데, 내용은 음기 건립 사실과 승려와 재가 문도들을 열거하였다. 그런데 문도에 대선사, 승통, 선사, 수좌, 삼중대사 이하로 이어져 이때부터 선사의 문도에 교종 승계를 지닌 승려가 등장하는 자료가 된다. 또한 재가신도들은 당시 왕족과 재추 등 고위관료가 대거 등장하여 이를 분석하여 수선사와 고려 정계와의 관계를 밝힌 연구의 바탕이 되기도 하였다.  
>
> (단행본)李智冠, 1997, 『校勘譯註 歷代高僧碑文』【高麗篇4】, 伽山文庫
>(단행본)許興植, 1984, 『韓國金石全文』中世下, 亞細亞文化社
>(단행본)朝鮮總督府 編, 1976, 『朝鮮金石總覽』上, 亞細亞文化社
>(논문)閔賢九, 1973 「月南寺址 眞覺國師碑 陰記에 대한 一考察」『震壇學報』36
>(단행본)葛城末治, 1935, 『朝鮮金石攷』  
>
> 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http://www.nricp.go.kr/kr/index.jsp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금석문찾기/진각국사비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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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드디어 또 하나의 일을 해내셨습니다.
강진군청의 빠른 수정 사업만이 남아 있습니다.
대부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김태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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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이로써 문중사의 또 한페이지가 음지에서 양지로 펼쳐 졌습니다.
내년 강진 시제 길에는 새로운 안내판을 볼수가 있겠군요. 감사합니다.

김태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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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늘 기쁨을 얹어주시니 그저 황공하옵지요.

김발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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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학술단체에서 문안집 시안이 나와있는 상태였다니 조금만 늦었어도 반영이 안 된 안내문이 세워질 뻔 했습니다.
내년 시제 길에는 상서공 할아버님의 휘자를 접할 수 있겠습니다.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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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우리 모두의 큰 기쁨입니다.
아울러서 안내판 어느 부분에라도 비석 전면 비문과 후면 음기 탁본 이미지를 첨부하고 간단한 설명을 곁들이면 더욱 확연해 질 것으로 봅니다.

김윤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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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대부님! 수고하셨습니다.
안내판을 접하였을 때 할아버지 휘가 빠져 할아버지께 죄송하고 문화재당국엔 서운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답사할 수 있게 되어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