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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 상고사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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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6-05-27 18:02 조회1,75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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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83년 치사후

충렬공(김방경)이 늙어서 복주전나무골[檜谷]에 물러나 살았다.<학봉집>

*<학봉집>에는 ‘금계(金溪)아래 10리 되는 곳, 상락촌(上洛村)’ 이라 하였다.


금계(金溪)는 현재 학봉종택이 있는 서후면 금계리이다. 사림촌(士林村)이라고도 불리던 곳이다. 맞은편 교리(校里)는 안동의 옛 지명인 복주 때에 이 지역에 향교가 있었다고 해서 향교골이라 하였다. 남쪽에는 향교촌(鄕校村), 교촌(校村)마을이 있다.

◀1580 <경진보>에는 충렬공의 조부 김민성의 묘가 ‘安東府西一息林村’가 있었다고 하였는데, 증평 남하리 김명룡(金命龍, 1618년 생원급제) 묘비에는 ‘林村’이라 하였다.


안동 시내에서 서쪽으로, 풍산(豊山) 예천(醴泉)을 거처 서울을 향해 가는 길로 5킬로미터쯤 가게 되면 송야교(松夜橋)라는 다리가 있다. 이 다리는 옛날 공민왕(恭愍王)이 안동으로 몽진(蒙塵)할 때, 안동 향민(鄕民) 부녀들이 노국공주(魯國公主)와 왕비를 뫼시는데 사람으로 다리를 놓아 건너게 했다는〈놋다리 밟기〉의 전설을 남긴 냇물, 송야천(松野川)을 건너는 다리가 있다. 이 송야천을 건너서 제방을 따라 북쪽으로 조금 가다가 다시 포장도로를 따라 2킬로미터 정도 가게 되면 안동시(安東市) 서후면(西後面) 금계리(金溪里)다.


정부인 장씨의 출생지인 검재, 금계리(金溪里)는 오랜 역사를 가진 사림촌(士林村)이다. 한국 지방지(地方誌)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그 권위와 정확성을 자랑하는 영가지(永嘉誌)의 기록에다 조금 더하여 적어 본다.

『금지촌(金地村); 속명(俗名)은 금음지(今音知), 또는 금계(金溪)라 한다. 안동부에서 서쪽으로 20리에 있으며, 옛날부터 〈천년불패(千年不敗)의 땅〉이라 불리었고, 고려말의 명신인 사복정(司僕正) 배상지(裵尙志)가 살고부터 백죽당(栢竹堂)이 있었다. ---학봉 김성일(鶴峰 金誠一)이 임하(臨河)에서 이 동리에 옮겨 와 살면서 마을 이름이〈검제〉로 고쳐지고 한자로는 금계(金溪)로 적게 되었다. 이 금계동의 20리 안쪽에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성씨(姓氏)인 안동김씨,안동권씨,안동장씨의 시조 묘소가 있어 그 곳을 능골(陵谷), 능골이라 부르며, ---


2) 1295년,

충렬공(김방경) 84세, 상락군개국공 작위와 식읍 1천호 식실봉 300호를 받았다.<고려사> <동안거사집>

◀식읍지의 구체적 위치는 알수 없다. 회곡촌을 포함한 인근 지역으로 볼수 있다.


3) 1312년,

문영공(김순) 55세, 선친 충렬공의 작위와 식읍을 이어 받았다. <김순 묘지명>

충렬공(忠烈公)은 대대로 여기에 살면서 여러 대(代)에 걸쳐 벼슬하였다. 문극공(文克公) 설헌(雪軒) 정오(鄭? (傲에서 人변을 빼고 우측에 頁을 붙임) )와 대사간(大司諫) 설곡(雪谷) 정포(鄭? (言+甫) )는 외가이므로 와서 살았다. 《출전 : 국역 영가지 권지1 pp56》


4) 1342년 가을(10월), 1343년 여름

문영공(김순) 외손자 정오, 정포 형제가 회곡리에 들렸다. 그때 외삼()촌 김좌랑(金佐郞) 승고(承古(固-대동보 표기))복주전나무골[檜谷]에 한가로이 살고 있었다.<동문선 제11권> 정포가 제공과 함께 영가에 있는 외삼()촌 김좌랑 승고 산장(山莊)을 다녀갔다.<설곡집>

◀김방경이 세운 정자에 손자 김좌랑(金佐郞) 승고(承古)가 거처한 것으로 볼수 있다.

*김방경---3김순---1녀+정책---정오, 정포 형제

*김방경---2김흔---1김승고


(정포)雪谷先生集 /詩

永嘉。同諸公過金佐郞承古舅山莊

鞍馬悤悤閱數州。夕陽携手更登樓。謫來未厭湖山好。事去空驚歲月?。半壁殘燈孤館夜。傍?疏樹故園秋。欲知別後相思意。天際長江??流。


*정포(1309∼1345)의 자는 중부(仲孚), 호는 설곡(雪谷), 본관은 청주(淸州). 최해(崔瀣)의 문인.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에 이름. 설곡집(雪谷集)이 있다.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 해(#해(王+皆-대동보 표기)15)의 손자로, 판선공(判繕工) 책(責(심방변+責-대동보, 영가지 표기))의 아들이며, 최문도(崔文度)의 사위이다.


◀충렬공(김방경) 손자 김영돈은 정해에게서 배웠다.

*김방경---3김순---1녀+정책(부 정해)---정오, 정포 형제

*김방경---3김순---1남 김영돈


5) 1392년 12월,

익원공(김사형) 52세, 상락백의 작위와 식읍 1천호 및 식실봉 300호를 받았다.<조선왕조실록>

◀식읍지의 구체적 위치는 알수 없다. 예부터 대대로 안동, 문경 인근에 익원공 후손이 많은 것과 연관지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댓글목록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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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렬공 선대 세거지 찾기, 충렬공 조부(김민성) 묘 화림촌 찾기, 그리고 충렬공 정자 고산정과 상락대 찾기 작업은 아래 일대를 모두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적어 봅니다.
1) 금계리 : 옛 금계(상락촌 위 10리 되는 곳), 안동부西20리 사림촌(?화림촌), 학봉(김성일) 거주, 학봉 종택, 현재의 낙암정 주인 배환의 부 배상지 은둔처
2) 금계리에서 송야천 건너 교리 : 고려 복주시절 향교, 송암(권호문) 거주, 송암 종택
3) 송야교 건너 풍산쪽 막곡리 : 송암과 학봉의 흔적 가득한 청성산(성산), 성산西에 김방경 유상처
4) 계평리 : 옛 계곡, 퇴계(이황)의 시에 권판서 강정(김방경의 유상처), 상락암이 있던 곳
5) 회곡리 : 옛 복주의 전나무골, 금곡촌, 상락촌(금계 아래 10이 되는 곳), ?안동부西일식 화림촌, 김방경 만년 퇴거지 유상처, 상고산, 고산정, 상락대가 있던 곳.
6)회곡리 앞 낙동강 건너 단호리 : 현 상락대, 낙암정(배상지-배환의 정자)이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