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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숙공 (김승용)은 광정대부(匡靖大夫)인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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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6-06-13 12:52 조회1,769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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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숙공 (김승용)은  광정대부(匡靖大夫)인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인가?

 

충숙공(김승용)의 관직명에 대해서 일부 논의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충숙공께서는 최종으로  보문관대제학을 지내셨음이 역사적으로 밝혀지고 이숙기가 쓴 묘지명에도

 

광정대부보문관대제학이라고 되어 있으니 이는 틀림 없습니다.

 

우선 고려시대의 관직에서 당시 광정대부로 불린 종2품의 품계를  살펴봅니다.

 

1060년(문종14년)에 정해진 품계에 의하면 종2품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문신계29게중 3계로 정해집니다.(이때 종1품은 개부의동삼사)


1275년(충렬왕1년)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라는 명칭이 원나라의 명칭과 같다고하여                

               광정대부(匡靖大夫)로 고쳤습니다.


1298년(충렬왕24년)광정대부(匡靖大夫)를 폐지하고 종2품은 정봉대부(正奉大夫)로 고치고
              (이때 종1품은 숭록대부, 정2품은 흥록대부)


1308년(충렬왕34년)종2품은 통헌대부(通憲大夫)   정2품이 광정대부 (匡靖大夫)로  되고
              (정1품이 생기면서 삼한삼중대광과 벽상삼한삼중대광, 종1품은 중대광,벽상삼 한중대광)


1310년(충선왕2년)종2품상은 광정대부(匡靖大夫) 종2품하는 봉익대부(奉翊大夫)로 나뉘며
              (정1품 삼중대광, 종1품-중대광, 정2품상=大匡 정2품하는 正匡)


1356년(공민5년)광정대부(匡靖大夫)폐지

              종2품상 광록대부(光祿大夫) 종2품하 영록대부(榮祿大夫)                

           (정1품상=개부의동삼사, 정1품하는 부의삼사,   금자광록대부는 종1품상  금자숭록대부는 종1품하)

1362년(공민왕11년) 종2품은 봉익대부(奉翊大夫)로 개칭
               (정1품=벽상삼한삼중대광,하는 삼중대광,종1품=중대광, 광정대부는 정2품,)

1369년(공민왕18년)종2품상은영록대부(榮祿大夫) 종2품하는 자덕대부(資德大夫)
             (정1품=보국삼중대광,종1품은 삼중대광,중대광, 정2품은 광록대부 영록대부, )

 

충숙공(김승용)께서 돌아가신해는 1329년입니다.


이때 이숙기공이 지은 묘지명에는


--천력<天曆, 원나라 문종(文宗)의 연호> 二 년 기사(一三二九)년 三월 갑술(甲戌)에
선수선무장군(宣授宣武將軍) 관고려국만호(管高麗國萬戶) 광정대부(匡靖大夫) 밀직사(密直使)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상호군(上護軍) 김공이 표(表)를 받들고 원나라에 하례(賀禮)하고돌아오다가 압록강을 건너면서 병에 걸려 신안(新安)의 여관에서 죽었다.--

 

그러면 왜 묘지명 끝 부분에 금자의 위에 올랐다고 썼을까요?
(-- 아아! 향년(享年)이 예순둘이니 일찍 돌아가신 것이 아니며 금자(金紫)의 품계에 올랐으니 관작(官爵)이 낮은것도 아니니,--- 이숙기찬 묘지명에서)

당시 종2품의 품계는 광정대부이나, 이전(1275년)까지는 종2품을 금자광록대부라고
칭했으므로  금자(金紫)의 품계에 올랐다고 썼을 것입니다.

 

위에서 살펴본대로 충숙공(김승용)의 품계는 당시에 품계대로 광정대부라고
칭함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참고자료;관직표는 고려사百官志에서 인용하였음

 

 

광정대부 (匡靖大夫) -야후백과사전-

고려 문산계(文散階) 종2품 품계. 1275년(충렬왕 1)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를 고친 이름으로 1298년(충렬왕 24)에 폐지했다가 1308년(충렬왕 34)에 부활시켰다. 1310년(충선왕 2)에는 종2품 상(上)으로 개정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폐지했다. 1362년(공민왕 11) 다시 정2품으로 두었으나 1372년(공민왕 21) 폐지했다.
 
금자광록대부 (金紫光祿大夫)-야후백과사전
고려시대 문산계(文散階)의 하나. 문종이 정한 종2품 벼슬로, 금자흥록대부(金紫興祿大夫)의 후신이다. 1076년(문종 30)에 문산계 29계 중 제3계로 정해졌으며, 1275년(충렬왕 1)에 원(元)나라의 관제와 서로 같으므로 광정대부(匡靖大夫)로 고쳤다. 그 뒤 1356년(공민왕 5)에는 이를 폐지하고 금자광록대부로 명칭이 바뀌면서 종1품 상계가 되었고, 1362년(공민왕 11) 다시 종1품을 중대광(重大匡)이라 칭하였다.

 

 


 

댓글목록

김태영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태영
작성일

  대부님 잘 보았습니다. 출전을 알고 싶군요?
저 역시 광정대부가 맞는걸로 주장합니다만  논의하는 측에서 복사해온 자료는 민족문화백과대사전 과 한국사 대백과사전에는 따온것 같습니다. 종1품 상계는 금자광록대부, 하계는 금자숭록대부로 되어있고 1314년(충숙왕1) 보문각대제학 정2품의 품계가 있습니다. 시대별로 변화가 심하여 이러한 논쟁이 일어나는것 같습니다.

김발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발용
작성일

  잘 보았습니다. 강진의 충숙공 할아버님 묘소의 묘비에는 4품인 봉정대부로 음각되어 있습니다.
충숙공의 묘지명이 발견되기 이전에 건립하여 오기가 되었나 봅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세밀하고 정확한 논거 제시와 결론에 감사합니다. 
관직명이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면 당시대에 살던 사람은 해당 관직명을 쓰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다만, 약간의 해설을 첨부한다면 금상첨화구요.
충숙공의 품계명이 광정대부(匡靖大夫)로 입증되도록 애쓰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홈 &lt;김승용&gt;란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