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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해구제기적비. 청덕사. 권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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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6-06-26 06:45 조회1,54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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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사공(휘 영수) 선조님과 관련 있는 유적인 흥해구제기적비. 청덕사. 권무정의 사진을 포항에 사시는 재원 아저씨께 부탁을 드려 오늘 사진을 메일로 받았습니다. 바쁘신 시간을 내주신 재원 아저씨께 감사드립니다.


흥해구제기적비의 후면을 보니 上之 十年 丙午 五月 日 흥해군수 창녕 성대중 근기(興海郡守 昌寧 成大中 謹記)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상지 10년은 정조원년을  기준으로 한 10년으로 보이며 1784년(정조 8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1784년(정조 8)으로 흥해군수로 부임한 성대중(成大中. 호 靑城. 1732~1812)이 부임 2년 후 건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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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해구제기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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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해구제기적비 전면. 통제사공의 휘와 안동인임을 알리는 비문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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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해구제기적비 후면. 上之 十年 丙午 五月 日 흥해군수 창녕 성대중 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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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해구제기적비(興海九堤紀績碑)

소재지 : 흥해읍 남성리 권무정내  


생민지본(生民之本)은 농업에 있고 농사의 근본은 관계에 있으므로 백성을 위한 정사(政事)는 농사짓는데 이로운 보(洑)를 막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흥해 고을은 바닷가에 있어 읍이 윤택하고 농사는 많이 짓고 있으나 수원(水源)이 딸려 읍민들이 걱정하고 있었다. 영조 임오년(1762)통제사 김영수公이 흥해군수로 부임한 후 11개의 보를 막으니 太平,(?)洞, 枾木, 都, 德城, (?)재, 예(?), 城谷, 小長生, 大谷, 南(?)등이다.


군수 김 공이 보를 막을 때에 본인이 직접 현장에 나가 일을 시키면서 입을 옷과 신고 다니는 신발까지도 현장 가까운 곳에 가져다놓고 기숙하면서 새벽 일찍 공사장에 나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오며, 일하는 자 가운데 부지런한 사람에게는 현전(縣錢)으로 상을 주며 쇠고기와 술대접을 해가면서 노고를 치하함에 마치 군대를 통솔하는 것 같이 하였고, 때로는 백성들이 여가를 가지도록 해가면서 일 년에 보 11개소를 막았다. 농사를 다 지은 후에는 태평들에서 수세100석을 거두어 살기 어려운 김상철(金尙喆)등을 도와주고 10석은 민폐를 끼친 자에게 혜택을 주는 등 골고루 백성들에게 은혜를 미치게 하니 그의 공적은 보를 막는 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지금은 소장생보와 대곡보가 없어졌으나 당시 공적은 백성들이 칭송했었다. 공은 본디 안동사람으로 무과 급제하여 여러 고을 수령으로 다니면서 백성과 나라를 위해 진력한 기록이 뚜렷이 남아 있다. 그러다가 죄가 있다고 옥살이를 하게 되었으나 얼마 후 임금께 죄를 용서받아 통제사(統制使)를 제수 받았다고 한다.


그것은 곧 남을 속이지 않았으므로 임금에게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으리라, 이런 사실을 들어본 사람은 누구나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하기를 원하지 않으리요. 애석하게도 당시 보를 막은 김공은 벌써 늙어버렸으니 흥해군수로 재직 당시 보를 막은 업적은 거의 기록이 없어졌다. 그로부터 20년 후에 백성들의 간청에 의하면 공적을 특서(特書)하여 성상(聖上)에게도 알리고 흥해 백성들에게도 고하는 도다.  

상지(上之) 10년(十年) 丙午   5月     日

흥해군수(興海郡守) 창녕 성대중(昌寧 成大中) 근기(謹記)

 

<조선왕조실록>
 

정조 22권 10년 7월 7일 (무신) 002 / 이시수·유진항·임흘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시수(李時秀)를 이조 참의로, 유진항(柳鎭恒)을 삼도 수군통제사로, 임흘(任屹)을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로 삼았다. 임금이 유진항에게 말하기를,

“그전 장수의 칭찬이 구중궁궐에까지 들리었으므로 내가 실제로 ..남녁의 걱정을 잊고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중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경은 반드시 마음을 써서 앞 사람이 진작시킨 정사가 허사가 되지 않게끔 하라.”

하였는데, 옛날 장수는 김영수(金永綬)였다.

【원전】 45 집 580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청덕사(淸德祠)
 

청덕사(淸德祠)는 조선중기 건물로 당시 김영수와 유응환 흥해군수를 제사지내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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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덕사입구 좌측에 도열한 비석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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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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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덕사 내부에 배향되어 있는 김영수. 유응환 흥해군수의 위패. 위패의 글씨는 다 지워져 확인할 수 없다.

 

권무정(勸武亭)

조선조 영조때 김영수 흥해군수가 궁술 연마장으로 창건했다. 8.15전에 자연붕괴 되었다가 1976년 복원됐다. 뜰에는 몇개의 비가 서 있는데 그중에 '청덕사' 쪽에 있는 큰 비가 '흥해구제기적비'다. '청덕사'와 붙어 있다. [출처:숨어있는 더 큰 흥해를 찾아서/권기원 편저]

 

오늘 재원아저씨께서 권무정을 찾았을 때는 이미 권무정은 다 헐어 낸 뒤라 합니다. 몇 일전 뉴스에 방송이 된 뒤 시에서 조치를 취한듯한데 확인이 필요하겠습니다. 다른 장소로 이전 건립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합니다.
아래사진은 인터넷에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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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덕사를 중앙에 두고 좌측에 구제기적비(소나무 뒤) 우측이 권무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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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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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원아저씨께서 그려 보내주신 구제기적비 찾아 가는 길.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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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포항의 재원 대부님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귀한 자료를 볼 수 있게 해 주시어 가사드립니다.
눈이 이렇게 기쁘고 환할 수 없습니다. 약도까지 그려 주시니---, 안 가고는 아니 되겠습니다.
발용대부님 수고 많으셨습니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