川沙 金宗德선생 자료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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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05-02 01:20 조회2,265회 댓글0건본문
川沙 金宗德선생 자료소개
오늘 점심시간에 (?점심도 못 먹고) 도서관에 다녀 왔습니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실려있는 경순왕 관련자료를 조사 수집하여 왔습니다. 간 김에 川沙 金宗德선생 자료도 복사하여 왔습니다.
이번주에 경순대왕 자료를 수집분석해서 책자화하라는 안사연 주인 항용 종친님의 하명을 수행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분석하지는 못하고 원문 그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천사 선생 저서 3종 (심경강록간보, 천사선생문집, 초려문답) 그림도 복사하였는데, 우리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리는 방법을 몰라서 올리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필요하신 분 계시면 이메일 알려 주세요
▣ 이미지 자료
●심경강록간보
조선 후기의 학자 이상정이 이덕홍의 ≪심경강록≫에서 누락된 부분 등을 뽑아 주석을 붙인 책. 1795년(정조 19)에 간행되었다. 목활자본. 규장각도서. 인심도심장 부분.
●천사선생문집
조선 후기의 학자 김종덕의 문집. 간행시기는 조선 말기로 추정된다. 19권 10책. 장서각도서.
●초려문답
조선 후기의 학자 김종덕이 학문의 중요성과 진리에 대하여 제자들과 문답한 내용을 모아 엮은 책. 손자 수창이 간행하였으며, 연대는 미상이다. 6권 3책. 규장각도서.
▣ 검색어 "김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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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곡유고(九曲遺稿)
남병집(南屛集)
마암문집(磨巖文集)
만취동일고(晩翠洞逸稿)
매야집(邁繆集)
면재집(潭齋集)
묵산문집(默山文集(남기만))
백산문집(白山文集)
부안김씨종중고문서(扶安金氏宗中古文書)
서울시청소년교향악단(――市靑少年交響樂團)
성학입문(聖學入門)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심경강록간보(心經講錄刊補)
애국계몽운동(愛國啓蒙運動)
영은문집(瀛隱文集(김상전))
유장원(柳長源)
이야순(李野淳)
조선(1)(연구사)
조술도(趙述道)
천사문집(川沙文集)
초려문답(草廬問答)
●김종덕(金宗德)
1724(경종 4)∼1797(정조 21).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도언(道彦), 호는 천사(川沙).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이다. 1753년(영조 29)에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오직 학업에만 열중하였다.
또한, 과거란 선비의 학문에 대한 뜻을 흐리게 하는 것이라고 배척하고,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관계진출을 사양하였다. 관력은 1779년(정조 3)에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의금부도사를 지냈을 뿐이다.
저서로는 ≪천사집≫·≪성학입문 聖學入門≫·≪예문일통 禮門一統≫·≪석학정론 釋學正論≫·≪정본고증 政本考證≫·≪초려문답 草廬問答≫·≪예서 禮書≫ 등이 있다.
≪참고문헌≫ 川沙集, 嶺南人物考.
韓相甲
●김종발(金宗發)
1740(영조 16)∼1812(순조 12).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온(景蘊), 호는 용연(容淵). 아버지는 남응(南應)이며, 어머니는 순천김씨로 주억(胄奮)의 딸이다.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77년(정조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1779년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그뒤 장릉별검(莊陵別檢)·종부시주부·사헌부지평을 역임하고 1798년 장령에 승진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갔다.
형인 종덕(宗德)·종경(宗敬)·종섭(宗燮)을 비롯하여 동문인 유장원(柳長源)·이지춘(李遲春)·황학중(黃學中) 등과 더불어 사설(師說)의 계승, 발전에 노력하였다.
학문적으로는 특히 ≪대학≫·≪중용≫을 비롯하여 주자서와 ≪심경≫ 등에 심취하여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경세의 도를 연구하기에 힘썼다. 저서로는 ≪용연일고≫ 2책이 있다.
≪참고문헌≫ 容淵逸稿.
徐智源
●구곡유고(九曲遺稿)
조선 후기의 학자 이중륙(李重浪)의 시문집. 2권 1책. 목활자본. 1892년(고종 29) 그의 손자인 장표(章彪)·기락(基洛) 등이 편집한 것을 현손 우구(宇九)가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상의(李相義)의 서문과 권말에 이만인(李晩寅)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273수, 서(書) 2편, 서(序)·지(識)·잠·축문 각 1편, 제문 3편, 권2는 부록으로 행장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시에는 〈몽배이소산옹 夢拜李小山翁〉·〈단오배소산옹 端午拜小山翁〉·〈상소산옹십육운 上小山翁十六韻〉등 이광정(李光靖)에게 보낸 것과 정종로(鄭宗魯)·김종덕(金宗德)·김굉(金乍) 등과 수창한 것이 수십 수 있다.
서 가운데 〈와유도서 臥遊圖序〉는 평소에 친구들과 명승지를 유람하며 지은 시를 모아 만든 시첩(詩帖)에 대한 서문이다. 지 중 〈제유관록후 題遊觀錄後〉는 비로봉(毗盧峰)·태백산 등을 유람하고 와서 기록한 〈유관록 遊觀錄〉의 지이다.
잠 가운데 〈자신잠 自新箴〉은 사람의 나이는 새로워질 수 없어도 덕은 새로워지는 것이므로 덕을 쌓아야 하는데, 그 방법은 배움만이 있을 뿐이라고 경계한 글이다. 그 밖에 이광정에게 보낸 편지와 권한표(權漢杓) 등의 제문이 있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李鍾德
●남병집(南屛集)
조선 후기의 학자 정박(鄭璞)의 시문집. 4권 2책. 목판본. 아들 세구(世求)의 편집을 거쳐, 1753년(영조 29) 문인인 이주정(李周禎)·이종주(李宗周) 등에 의해 간행되었다. 권두에 정종로(鄭宗魯)의 서문과 권말에 이종주의 발문이 있다.
권1·2는 시·애사·뇌문(柰文)·서(書), 권3은 서(序)·기·제문·상량문·행장, 권4는 부록으로 행장·만사·제문 등이 차례로 실려 있다. 시는 고시·오언절구·칠언절구·오언율시·칠언율시·배율·행(行)·만사(輓詞)의 순으로 배열되었으며, 주로 한제영(閒題詠)·창수(唱酬) 및 당운(唐韻)을 염출(拈出)해 읊은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여흥이 있으면 거문고를 타고 퉁소를 불어서 그 강개한 심회를 달래기도 하고, 긴 휘파람과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 그 막히고 답답한 기운을 풀어본 시가 군데군데 보인다.
〈취성당팔경 醉醒堂八景〉은 대주(對酒)·권주(勸酒)·음주(飮酒)·취주(醉酒)·시주(詩酒)·가주(歌酒)·면주(眠酒)·성주(醒酒) 등을 제목으로 취성당을 시주자오(詩酒自娛)에 부쳐 표현한 작품이다.
만사에는 김종구(金宗九)·권순(權淳)·이상정(李象靖)·김종경(金宗敬)·김용보(金龍普) 등 당대의 유명한 인사들에 대한 것이 많다.
서(書)는 친지인 김종덕(金宗德)·이유수(李維秀)·김도행(金道行)·이종화(李宗和) 등과 주고받은 서한으로, 대부분이 학문에 관한 논설과 산수에 대한 취지를 논하고 있다.
기의 〈독소문기 讀蘇文記〉는 소식(蘇軾)의 ≪동파집 東坡集≫을 읽고 소감을 쓴 것이다. 동생인 소철(蘇轍)과 함께 그 아버지이자 스승인 소순(蘇洵)에게 탁월한 문장재주를 배웠기 때문에 그 학술은 대가 같으나 그 웅걸하고 평담(平淡)한 것이 다른 점은 기품의 차이라고 논평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趙基大
●마암문집(磨巖文集)
조선 후기의 학자 조진도(趙進道)의 시문집. 3권 1책. 목판본. 1898년 현손 병희(秉禧)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말에 조승기(趙承基)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72수, 서(書) 19편, 권2에 서(序) 1편, 기(記) 3편, 발(跋) 2편, 상량문 1편, 뇌문(柰文) 2편, 축문 1편, 제문 5편, 가장(家狀) 2편, 권3은 부록으로 행장 1편, 묘갈명 1편, 제문 6편, 만사 21수, 복과후개제고사(復科後改題告辭)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시는 주로 자연을 읊은 것이 많은데, 〈춘양팔경 春陽八景〉의 한수정(寒水亭)·창애정(滄厓亭)·수월암(水月庵) 등과 이황(李滉)이 지은 〈도산십이곡 陶山十二曲〉을 차운(次韻)한 시는 완숙한 정서를 표현한 뛰어난 작품이다.
당시의 문사들과 수창한 시도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고, 이상정(李象靖)·이종악(李宗岳)·김상열(金相說)·김종경(金宗敬)·이중광(李重光) 등 당시 석학들에 대한 만사가 많다. 서(書) 중 채제공(蔡濟恭)·이광정(李光庭)·김종덕(金宗德)·정종로(鄭宗魯) 등과 왕복한 서한에는 주로 경전(經典)·훈고(訓鈐)에 대한 논술이 많다. 규장각도서와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趙基大
●만취동일고(晩翠洞逸稿)
조선 후기의 학자 황학(黃軟)의 시문집. 2권 1책. 목판본. 1883년(고종 20) 문하생 황경헌(黃景憲)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조성복(趙星復)의 서문이 있고 발문은 없다. 권1에 시 20수, 서(書) 23편, 제문 2편, 문 1편, 권2는 부록으로 저자에 대한 만사 8수, 애사 8편, 제문 2편, 행략(行略) 1편, 묘표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서(書)의 별지에는 주로 경전·훈고(訓鈐)와 성리설에 대한 것이 많이 있다. 스승 김종덕과 왕복한 별지는 ≪논어≫의 예지용화위귀(禮之用和爲貴)·불천노(不遷怒)·지자요수(智者樂水)·인자요산(仁者樂山) 등 9항목에 대한 문답이고, 유범휴(柳範休)에게 보낸 별지는 자재천상장(子在川上章) 주(註)의 도체(道體)와 위체(爲體)의 2체자(體字)에 대한 토론이다.
유낙문(柳洛文)에게 보낸 별지는 이황(李滉) 등의 이기설(理氣說)과 ≪대학≫을 토론한 것이다. 또 서에는 학문하는 방법 등에 대한 논술도 있어 이 책 가운데 가장 비중을 두어야 할 부분이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李鍾德
●매야집(邁繆集)
조선 후기의 학자 서활(徐活)의 시문집. 6권 3책. 목판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자와 간행 연대를 알 수 없으나 권말에 있는 이병운(李秉運)·유태명(柳台明) 등의 간기에 의하여 1850년경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권1∼4에 시·서(書)·서(序)·기(記), 권5에 발(跋)·뇌문(柰文)·제문·묘지·행장, 권6에 유사, 부록으로 만사·제문·행장·묘갈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서정시와 차운시가 대부분이고, 고운사(孤雲寺)에서 스승인 김종덕(金宗德)의 문집을 교정하면서 동문인 이야순(李野淳)·김청진(金淸進)·신정주(申鼎周) 등과 수창한 시가 군데군데 보인다.
또한 김굉(金乍)·이원상(李元祥)·이정규(李鼎揆)·김령(金譏)·이현일(李玄逸)·김성탁(金聖鐸) 등 당시 학문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에 대한 만사가 들어 있다.
서(書)는 권렴(權濂)·김종덕·유장원(柳長源)·권이복(權以復)·유범휴(柳範休)·김종발(金宗發)·이우(李箔)·김굉·정필규(鄭必奎)·이원상 등과 주고받은 것으로 191편이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이 학문에 관한 내용이다. 이 가운데 유내봉(柳來鳳)에게 답한 글은 ≪중용≫에 대한 문목을 해답한 것이다.
잡저의 〈후암선생언행사차 厚庵先生言行私箚〉는 저자가 처음에 집지했던 권렴의 행적을 상세히 서술한 것이다. 〈초려문견록 草廬聞見錄〉은 김종덕의 문하에서 수업할 때 듣고 본 것을 기록한 글이다.
〈사문기 師門記〉는 김종덕과의 문답을 기록한 것이다. ≪대학장구 大學章句≫, ≪심경 心經≫ 서문(序文), ≪심학도설 心學圖說≫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밖에 아들 원모(元模)가 관례한 날에 마음은 일신(一身)의 주재가 된다고 지적, 항상 오륜(五倫)을 마음에 두라는 내용으로 오륜의 각 제목마다 해설을 붙인 〈성인설 成人說〉이 있다.
기(記)의 〈매야당기 邁繆堂記〉는 정사(精舍)를 짓고 스승인 김종덕에게서 받은 호인 매야(邁繆)의 뜻을 해설해 기록한 글로 명문이다. 〈유백운동기 遊白雲洞記〉는 순흥의 백운동 소수서원(紹修書院)에서 거행한 향음주례(鄕飮酒禮)를 구경하고 느낀 소감과 오고갈 때의 자연을 묘사한 글로 일기체로 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도서에 있다.
趙基大
●면재집(潭齋集)
조선 후기의 문신 이병운(李秉運)의 시문집. 5권 3책. 석인본. 1896년 증손 중명(重明)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1∼3에 시 86수, 소(疏) 1편, 서(書) 57편, 잡저 3편 서(序) 5편, 기(記) 2편, 발(跋) 5편, 축문 6편, 권4에 제문 23편, 묘지명 4편, 묘갈명 1편, 권5에 행장 3편, 부록으로 만사·제문·행장·묘갈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서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신적 내면 세계를 담담하게 묘사한 〈동야우음 冬夜偶吟〉·〈우좌유감 偶坐有感〉·〈효기즉사 曉起卽死〉 등이 있다. 또한 유람의 소감을 적은 〈속리산청계사 俗離山淸溪寺〉·〈월암 月巖〉·〈이화동 梨花洞〉, 채제공(蔡濟恭)·조술도(趙述道)·이정운(李鼎運)·권사보(權思溥)·유휘문(柳徽文)·이근오(李覲吾)·서활(徐活)·문정유(文正儒) 등에 대한 만시(輓詩)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疏)의 〈응지진민막소 應旨陳民壟疏〉는 1809년 함창현감에 재직할 때 올린 소이다. 과중한 부역(賦役), 무질서한 호적장부(戶籍帳簿), 부당한 환곡책정(還穀策定), 역졸(驛卒)들의 행패, 근거 없는 인정전(人情錢)의 징수 등 폐단을 광범위하게 지적하고 그 시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서(書)에는 스승인 김종덕(金宗德)에게 학문연마, 심신수양, 일상사에 대해 상의한 내용과 관찰사에게 시정을 건의한 내용 등이 있다. 잡저 가운데 〈동정일록 東征日錄〉은 1796년 관동(關東) 유람을 마치고 여정(旅程)과 소감을 기록한 장편의 글이다.
〈구폐사의 救弊私議〉는 1837년(헌종 3) 이후석(李侯捿)이 지방관으로 부임해오자 고을의 독특한 풍속과 고충을 주지시키고 아울러 고을 주민들의 요망사항을 알리는 내용이다.
〈사득록 思得錄〉은 성현들의 가르침에 대해서 저자가 일상 생활을 하는 동안 체득한 것을 기술한 글이다.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金東鉉
●묵산문집(默山文集(남기만))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남기만(南基萬)의 시문집. 4권 2책. 목판본. 종현손 고(皐) 등이 편집, 교정해 1874년(고종 11)에 간행하였다. 권두에 유후조(柳厚祚)·이휘재(李彙載)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고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권2에 소(疏)·서(書), 권3에 제문·상량문·발(跋)·잠(箴)·잡저·묘지, 권4는 부록으로 행장·묘갈명·만사·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자연을 읊은 것과 교우들과의 수창한 시가 대부분이다.
소는 저자가 사간원정언으로 있을 때 올린 〈진시폐면군덕소 陳時弊勉君德疏〉와 〈구언응지소 求言應旨疏〉 등 5편이 있다. 당시의 폐단으로 적정(蛇政)·군정(軍政)·전정(田政)·적정(籍政) 등 4개항을 열거해 개혁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이언적(李彦迪)의 〈일강십목소 一綱十目疏〉와 이황(李滉)의 ≪성학십도 聖學十圖≫를 좌우에 두고 강론한 것, 그리고 ≪서경 書經≫에 있는 홍범(洪範)을 해석해 올린 것으로, 백성을 중히 여기고 임금의 덕을 닦아 태평성세를 이룩할 것을 내용으로 한 글도 있다.
서(書)는 이빈(李檳)·유장원(柳長源)·김종덕(金宗德) 등 당시 명유들과 왕복한 것인데, 주로 학문을 논란하고 있다. 잠의 〈무자기잠 毋自欺箴〉은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속이지 않는 데 경계될 만한 좋은 문구를 간단명료하게 적어놓은 것이다.
잡저의 〈인심도심설 人心道心說〉은 사단(四端)은 도심, 칠정(七情)은 인심이라는 선유들의 학설을 인용, 자신의 견해를 문답식으로 피력한 것이다.
〈기삼백주해 朞三百註解〉는 ≪서경≫에 있는 기삼백을 저자 나름대로 주석을 가해 해설한 것이다. 〈책제 策題〉는 ≪중용≫에 있는 지(智)·인(仁)·용(勇)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글이다. 규장각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趙基大
●백산문집(白山文集)
조선 후기의 학자 김희분(金熙奮)의 시문집. 4권 2책. 목판본. 서문·발문·목차 등이 없으며, 권두의 일부가 낙장된 것으로 보인다.
권1·2에 부(賦) 1편, 시 50수, 서(書) 29편, 권3에 서(序) 1편, 기(記) 2편, 발(跋) 1편, 제문 20편, 축문 2편, 애사 3편, 뇌문(柰文) 7편, 상량문 1편, 잡저 3편, 권4는 부록으로 저자를 위한 만사·제문·묘갈명·행장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賦)인 〈반창승부 反蒼蠅賦〉는 구양수(歐陽脩)의 〈창승부 蒼蠅賦〉를 답습해 지은 것이다. 파리를 소재로 인간적인 애증(愛憎)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시에는 강원도·함경도·평안도 등지를 여행할 때 절경을 보고 지은 시가 많다. 〈명승과선죽교 名勝過善竹橋〉·〈등만월대 登滿月臺〉 등에서는 흘러간 역사에 대한 감회를 표현하고 있다. 〈해금강 海金剛〉·〈관북만영 關北亶詠〉등은 서경성(敍景性)이 높다.
〈수전위한발소상탄 水田爲旱魃所傷歎〉에서는 가뭄에 벼가 말라죽는 것을 보고 애타는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 밖에는 만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권1의 서(書)에는 스승 이상정(李象靖)과 이광정(李光靖)에게 보낸 편지가 있지만, 일반적인 문안의 내용이다.
학문적인 토론은 동문인 유장원(柳長源)·김종덕(金宗德)·정종로(鄭宗魯)·남한조(南漢朝)·유범휴(柳範休)·남한호(南漢染) 등과 주고받은 편지에 포함되어 있다.
유장원에게 보낸 3편의 편지에서는 주로 ≪대학≫의 수기(修己)·치인(治人)에 대한 경지(經旨)를 논변하였다. 김종덕에게 보낸 편지에는 ≪중용≫에 관한 의목(疑目)이 첨부되어 있다. 남한조에게 보낸 편지에는 ≪태극도설≫에 관해 논변한 별지(別紙)가 있다.
권2의 서(書)는 이병원(李秉袁) 등 문인들의 유교 경전에 관한 질문에 답한 것이 대부분이다. 잡저의 〈통문경문 通聞慶文〉은 남편을 위해 순절한 문경의 박씨 부인에 대해 포상을 건의하기 위한 통문이다.
이 밖에 그가 1780년(정조 4)부터 이상정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으면서 문답한 내용을 모아 기록한 〈사문문답 師門問答〉이 주목된다.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李鍾德
●성학입문(聖學入門)
조선 후기의 학자 김종덕(金宗德)이 정주학(程朱學)을 중심으로 선유들의 성학에 관한 논설을 모아 편집한 수양서. 불분권 1책. 목판본. 1937년 경상북도 의성에서 간행되었다. 권말에 5대손 훈종(勳鍾)의 발문이 있다.
전반부에는 사서 및 ≪시경≫·≪서경≫ 중 수양론에 관계되는 부분을 발췌하여 정주학적인 정통유학의 견지에서 풀이하였다. 후반부에는 선유들의 정주학에 관계되는 학문적인 논설이 담긴 서한과 문답을 골라 실었다.
존심(存心)·지경(持敬)·함양(涵養) 등의 실행요목을 다룬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유학의 ‘시중사상(時中思想)’이 불교의 ‘사사물물사상(事事物物思想)’에 영향을 주었다고 하여 유학을 높이고 있다.
또, 의리로써 맹자가 말하는 양기(養氣)에 힘쓸 것과 과불급(過不及)이 없이 중용의 도를 취할 것을 강조하였다. 또, ‘거경궁리(居敬窮理)’ 4자가 입도(入道)의 문이며 궁리와 함양을 병진해야 성학을 높일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책은 성학이 무엇인가를 밝혀, 유학을 진작시킴과 동시에 후학들이 선학(禪學)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데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영남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李東述
●심경강록간보(心經講錄刊補)
조선 후기의 학자 이상정(李象靖)이 이덕홍(李德弘)의 ≪심경강록 心經講錄≫에서 누락된 부분과 해석하기 어려운 자구를 뽑아 주석을 붙인 책. 4편 1책. 목활자본.
1795년(정조 19) 김종경(金宗敬)·김종덕(金宗德) 등에 의하여 간행되었다. 이만운(李萬運)의 서문과 김종덕의 발문이 있다. 범례·서(序)·찬(贊)·심학도(心學圖) 등을 비롯하여, 제1편에는 인심도심장(人心道心章) 등을, 제2편에는 성의장(誠意章) 등을, 제3편에는 우산지목장(牛山之木章) 등을, 제4편에는 계명이기장(鷄鳴而起章) 등을 본경(本經)의 순서에 따라 수록하였다.
이 책은 ≪심경강록≫을 근거로 하여 필요없는 부분은 삭제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충한 것이기 때문에 이덕홍과 이함형(李咸亨)이 문답한 내용에는 두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으며, 뜻이 미진한 곳이나 누락된 곳이 있으면 원집을 대조하여 보충하였다.
자기의 의사를 표시함에 있어서는 안(按)자를 쓰고 해석을 첨가하였다. 또한, 제가의 설을 인용하여 설명한 곳이 많다.
≪심경≫은 원래 송대의 학자 진덕수(眞德秀)의 저서인데 ≪심경강록≫에는 진덕수에 대한 해설이 없으나 이 책에서는 서장(序章)에서 저자의 약력과 행적을 밝히고 있다. 또한, 찬장(贊章)에서는 ≪심경강록≫의 ‘의인중정(義仁中正)’을 ‘의인’과 ‘중정’으로 분리하여 설명하였고, ≪심경강록≫에 ‘유리무형(惟理無形)’의 항목이 없는데, 그것을 표출하여 해석한 것 등의 특색을 들 수 있다. 규장각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權五虎
●영은문집(瀛隱文集(김상전))
조선 후기의 학자 김상전(金尙銓)의 시문집. 4권 2책. 석인본. 1770년(영조 46) 증손 동한(東翰)이 처음으로 편집, 간행하였고, 그 뒤 1900년대초에 6세손 조석(祚錫)이 습유하여 다시 편집, 간행하였다. 책머리에 김희주(金熙周)의 서문이 있고, 책끝에 동한과 6세손 조석의 발문이 있다.
권1·2는 시 149수, 권3은 시 2수, 서(書) 14편, 권4는 잡저 1편, 제문 5편, 부록으로 추제영(追祭詠)·유사·행장·묘갈명 각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잡저인 〈경의답문 經義答問〉은 ≪중용≫의 중화(中和)에 대한 문답을 시작으로 이(理)와 기(氣)의 선후문제, ≪맹자≫의 필유사언이물정조(必有事焉而勿正條), ≪논어≫의 송시삼백조(誦詩三百條), ≪서명 西銘≫의 이일이분수조(理一而分殊條) 등 각종 경전에서 21조목으로 발췌, 자문자답의 형식을 취하여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이 글은 사의(辭意)가 간단, 명료하여 학문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서(書)는 스승인 이상정(李象靖)과 주고받은 3편을 비롯하여 김굉(金乍)·이이장(李彛章)·정종로(鄭宗魯)·김종덕(金宗德)·신체인(申體仁) 등 당대의 명경(名卿)·석학들과 주고받은 것이 대부분으로, 내용면에서는 경전·훈고 등에 대한 논술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李鍾德
●유장원(柳長源)
1724(경종 4)∼1796(정조 20).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숙원(叔遠). 호는 동암(東巖). 아버지는 관현(觀鉉)이다. 1769년(영조 45) 대산 이상정(李象靖)을 스승으로 섬겨 심학(心學)을 전수 받았으며, 김종덕(金宗德)·이종수(李宗洙)와 함께 ‘호문삼로(湖門三老)’로 불려지고 있다.
용모가 준수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학문에 전념하여 경학, 제자백가, 예학에 두루 통하였다. 저서로는 ≪동암집 東巖集≫·≪계훈유편 溪訓類編≫·≪호서유편 湖書類編≫·≪자경록 資警錄≫·≪사서찬주 四書纂註≫·≪상변통고 常變通攷≫ 등이 있다.
金鶴洙
●이야순(李野淳)
1755(영조 31)∼1831(순조 31).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진보(眞寶)·자는 건지(健之), 호는 광뢰(廣瀨). 황(滉)의 9세손으로 통덕랑 구휴(龜烋)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전주 이씨(全州李氏)로 사인(舍人) 약송(若松)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자질이 총명하고 문장에 능했으며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다. 이상정(李象靖)·김종덕(金宗德)의 문하에서 이황의 성리학을 전습하였다.
젊어서 부형의 권유로 과거를 보러 갔다가 과장(科場)의 무질서와 폐습을 보고는 벼슬길을 단념, 일생을 학문에만 전심하였다. 특히, ≪논어≫와 ≪심경 心經≫에 몰두했고, ≪퇴계서≫ 탐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1796년(정조 20) 뇌석정(瀨石亭)을 중건해 이황의 저술들을 수집해 두고 그 연구와 강습으로 소일하였다. 1808년(순조 8) 암행어사 이우재(李愚在)의 추천으로 이듬해 경기전참봉에 임명되었고, 1821년 국장도감감조관, 1831년 장악원주부에 승진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취임하지 않았다.
그의 학문은 이황의 성리학을 계승했고, 특히 예학에 조예가 깊었다. 또한 그는 성리학의 주요 명제나 자신이 체득한 것을 도설로 체계화하였다.
〈심잠도 心箴圖〉·〈인설전도 仁說前圖〉·〈인설후도 仁說後圖〉·〈염려사지의도 念慮思志意圖〉·〈자수명도 自修銘圖〉·〈심통성정도 心統性情圖〉 등 11개의 도표와 설명이 문집에 실려 있다.
그는 이황이 강의하고 이덕홍(李德弘)이 정리, 편찬한 ≪주자서강록 朱子書講錄≫의 오류를 교정하고 보완하는 데 진력하였다.
그 밖에 ≪도산연보보유 陶山年譜補遺≫·≪예설유편 禮說類編≫·≪요존록 要存錄≫ 등의 저술과 시문집인 ≪광뢰선생문집≫ 13권 7책이 전한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定齋集(朴泰輔), 廣瀨集(李野淳).
李迎春
●조술도(趙述道)
1729(영조 5)∼1803(순조 3). 조선 후기의 학자. 영양 출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성소(聖紹). 호는 만곡(晩谷). 덕린(德紐)의 손자로 아버지는 희당(喜堂)이며, 어머니는 장수 황씨(長水黃氏)로 종만(鍾萬)의 딸이다.
청년기까지는 과거 공부에 종사했으나 1759년(영조 35) 아우 조진도(趙進道)가 문과에 합격하고도 조덕린의 손자라는 이유로 삭과(削科)되자 과거를 단념하고 성리서를 탐독하였다.
향인들이 그를 월과(月課)의 학정(學正)으로 추대하자 상벌을 엄격하게 행하는 한편 여씨향약(呂氏鄕約)에 준해 생도들을 가르쳤다.
1765년(영조 41) 이상정(李象靖)·김낙행(金樂行)의 문하에 입문하고 김종덕(金宗德)·유장원(柳長源)·이종수(李宗洙)·정종로(鄭宗魯)와 학문을 토론하였다. 1776년에는 월록서당(月麓書堂)을 지어 후학들을 지도하고 ‘만곡(晩谷)’으로 자호하였다.
조술도는 조부 조덕린의 신원운동을 위해 수차례 서울을 왕래했으며, 당시 남인의 영수 채제공과도 자주 접촉하였다. 그 결과 1789년(정조 13)에는 신원운동이 성사되고 채제공과의 관계도 더욱 밀접해졌다.
그는 유학의 가르침에 충실해 서학(西學)·노장(老莊)에 대해서는 매우 엄정한 입장을 취했으며, 일생 사서(四書)·≪심경 心經≫·≪근사록 近思錄≫·주자서(朱子書)를 애독하였다. 만년에는 도선서원 유생들을 위해 〈향음주고정의식 鄕飮酒攷定儀式〉을 제정하고, ≪주서강록간보 朱書講錄刊補≫를 교열하였다.
경세론에도 조예가 있어 영양현감을 대신해 지은 9조항의 권농책(勸農策)은 유명하다. 저서로는 ≪만곡집 晩谷集≫과 불교를 유교적 입장에서 비판한 ≪유석명분변 儒釋名分辨≫, 서학을 유교적 입장에서 비판한 ≪운교문답 雲橋問答≫이 있다.
≪참고문헌≫ 大山全書, 晩谷集, 定齋集, 海隱集.
金鶴洙
●천사문집(川沙文集)
조선 후기의 학자 김종덕(金宗德)의 시문집. 19권 10책. 목판본. 간행연대는 정확히 밝힐 수 없으나, 책의 지질과 판형으로 보아 조선조 말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권1에 시·소(疏), 권2∼13에 서(書), 권14∼16에 잡저, 권17∼19에 서(序)·기(記)·발(跋)·잠(箴)·명(銘)·뇌문(柰文)·애사·제문·행장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대개 영물·서정 등의 율시로서, 특히 심(心)에 대한 제영(題詠)이 많다. 이 중 〈산재잡영 山齋雜詠〉 8수는 단순한 풍경의 음미가 아니라 자신의 학문세계를 피력한 작품으로서, 마치 중국의 염락시(濂洛詩)와 같은 느낌을 준다.
소는 이상정(李象靖)의 문묘배향을 청한 의소(擬疏) 1편 뿐이고, 서(書)는 이상정·채제공(蔡濟恭)·신체인(申體仁) 등 당시 유명학자들과 주고받은 것으로, 거의가 경의(經義)에 관한 문목(問目)이다.
잡저는 〈인설의품 仁說疑稟〉·〈성선설 性善說〉·〈함양설 涵養說〉 등으로, 이는 모두 심성철학(心性哲學)을 다룬 내용이다. 여기에서는 특히 정주설(程朱說)까지 인용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여 좋은 자료가 된다.
저자는 이황(李滉)의 학풍을 이어받은 이상정의 문인으로, 학문에만 전념하여 유저 역시 시문을 막론하고 모두 학구적이며 이론적이다.
특히, 잡저 부분에 수록된 〈태극도설설 太極圖說說〉을 보면, 먼저 그 도설이 생기게 된 이유를 제기한 뒤에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또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다른 사람의 이론까지 첨부하여 비교적 폭넓은 연구 성격을 띠고 있다. 장서각도서에 있다.
張順範
●초려문답(草廬問答)
조선 후기의 학자 김종덕(金宗德)이 학문의 중요성과 진리에 대하여 제자들과 문답한 내용을 모아 엮은 책. 6권 3책. 목활자본. 손자 수창(壽昶)에 의하여 간행되었으나 간행연도는 미상이다. 권말에 김도화(金道和)의 발문이 있다.
우선 학문의 중요성에 대하여 “천하 사람이 모두 선(善)하고 안정되면 학문이 별로 필요없을 것이나, 세상의 인심이 균일하지 않고 정치제도가 수시로 변천하기 때문에 진실한 사람으로서의 자세를 갖추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라고 학문의 대본(大本)을 설명하였다.
또, 역대 제왕의 시정제도에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은 학문의 응용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기본교육의 허점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소학≫에 수제치평(修齊治平)의 핵심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하우불이(下愚不移)는 힘써 가르치면 기질변화가 가능하다고 하였는데, 그렇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이는 맹자가 가장 애석하게 여긴 것으로, 사람은 본래 ‘금석(金石)’같은데 사욕에 사로잡히고 이속(俚俗)에 물들어 중도(中道)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경전을 널리 읽어 정사(正邪)를 판별하게 되면 기질변화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밖에도 수양에 도움을 주는 많은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규장각도서에 소장되어 있다.
申東虎
▣ 김항용 -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은회 - 천사 선조님 자료는 많이 남아 있으리라 생각됨니다. 계속 발굴 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 김영환 -
▣ 김재익 - 수고가 많으십니다,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 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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