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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연,2006년 대마도 원정기-2(귀국길 선상에서 삼행시를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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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작성일06-07-20 20:09 조회1,778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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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도 원정 후 개인적인 감회를 몇 자 적습니다.

 제1차(1274년) 일본 원정길에 충렬공께서 상륙하셨다는 사스우라(佐須浦)의 해안가에 자리하고 있는 신사의 각종 표지판과 기념비를 보면 어김없이 원구(元寇)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물론 원나라 도적이라고 하면 무난하지만 寇(도둑구)字를 파자(破字)하면,元이 치러(등글월문)와 덮어(갓머리) 버렸다가 되니 한자가 생긴 것이 고래인데도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당시에 일본 본토나 대마도에서는 사전에 최후통첩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수만의 여몽연합군을 상대할 여력이 없었고 단순무식하게 그냥 막아내든가 죽어야만 했습니다.

 모두 다 아는 것은 원세조 쿠빌라이가 칭기즈칸으로 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를 변형하지 못하고 무모하게 시작한 정복자로서의 야욕 때문에 혹사를 당한 것입니다.

 나는 홀로 시커먼 모래로 덮힌 코모다 해안까지 가서 몽니를 부리던 쿠빌라이 놈과 거기에 빌붙어 깝죽거린 흔도와 홍다구를 불러 크게 꾸짖은 후에야 분을 삭일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대한해협이라는 해자가 있어 두 차례로 끝난 일본정벌 과정에서 겪은 섬나라의 고통은  대륙 끝의 반도라는 지리적인 위치로 갖은 고초를 감수해야 했던 고려에는 비할 수 없습니다.

 칭기즈칸이하 쿠빌라이까지의 칸들은 영웅이 아닙니다.살아남기 위하여,원한을 풀기위해 부족간의 싸움으로 시작된 것이 용케도 기회를 잘 타 몽골고원을 벗어나 대륙을 삼킨 것이고 거기에 빌붙은 자들이 버린 자존심과 배반자들이 저버린 애국심을 이용한 것일 뿐입니다.

 무엇이 우선인지는 몰라도 이 강토를 지키려다 순절하신 선조님들의 영웅적인 삶을 가슴에 되새기는 좋은 시간이었고 여말 몽골로 부터 받은 수난을 300여 년 후에 일구(日寇)로 부터 고스란히 받아야 했던 것에 가슴 아파하며 또한 저들도 타이르고 돌아왔습니다.

 원정팀이 지은 삼행(대,마,도)시를 별도로 소개합니다.

     김 주 회

 대 - 대한해협 넘실대는 검푸른 파도! 선조님 따라가는 동정 길.
 마 - 마음속엔 언제나 상락군개국공을 그리며,
 도 - 도원수의 후예로 대마군개국공을 도모하노라.대마도는 우리땅!.

     김 항 용

 대 - 對馬島 七百年뱃길 忠烈公魂 찾으리라
 마 - 마음 다진 金田 追慕祭 圓通寺 影幀찾소
 도 - 都元帥 가시던 그길 流芳百世 가득하리


     김 태 영                                      

 대(對):대마도를 찾은 충렬공 후손(안사연) 옛 일 더듬어
 마(馬):馬매어 놓고 宿營하셨던 金田에서 맑은 술 올리네.
 도(島):島主 종씨(宗正茂)는 高麗의 金方慶 將軍을 아는가!
    

     김 상 석

 對-對敵할 때 휘날리던 도원수 깃발,성상을 잊고 나부끼는데 馬-말들은 비루먹어 쓰러진 지 오래고 개들은 어딜갔는가? 島-島內의 신사를 찾아 아!,웅!하는 삽살개를 어루만지노라!.

댓글목록

김영윤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영윤
작성일

  대-대대로 이어져온 명문 안김의 후예 안사연
마-마음속에 기리는 충렬공의 발자취 답사는
도-도도히 흐르는 핏줄의 증명일세

김태우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태우
작성일

  대- 대마도라 이름진
마- 마주앉은 우리령
도- 도처마다 한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