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김시민장군 공신 교서 환수 기념 고유제 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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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6-07-26 08:00 조회2,109회 댓글0건본문
충무공 김시민 공께 드리는 고유제 축문
단군기원 4339년 7월 25일에 증 효충장의 협력선무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겸 영경연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관상감사 세자사 상락부원군 행 가선대부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겸 진주목사 증시 충무공이신 김시민 장군의 영전에 대한민국 국민의 이름으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뜰에서 삼가 고합니다.
공께서 선조 37(1604)년 10월에 국가로부터 받은 선무공신 교서가 후손들의 부주의로 인하여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어 상인들의 손에 떠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문화방송의 느낌표 팀이 주최가 되어 근 한 달 동안 이를 환수하기 위한 TV 방영 및 성금 모금운동을 국가적으로 전개하여 드디어 70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이에 이를 영전에 바칩니다.
공께서는 고려조 때 몽고의 침입을 막아내고 여원여합군의 일본 원정시 도원수로서 혁혁한 공을 세운 바 있는 안동김씨 충렬공 김방경의 13세손으로서 조선조 명종 9년(1554)에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공은 자랄 때부터 걸출한 용기를 보여주셨고, 무과에 급제하여 선조 16년(1583)에는 북방의 최전선인 두만강 가에서 니탕개의 난을 진압하는 전투에 참여하여 장수로서의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하셨으며, 선조 24년에는 진주판관으로 부임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음해인 1592년 4월 13일 새벽에 일본의 전쟁광인 토요도미 히데요시가 15만 대군을 몰아 우리나라를 침입하였습니다. 왜군은 육전에서 거칠 것 없이 북상하여 수도 한성을 20일 만에 점령하고 이어서 개성과 평양을 점령하였으며 국왕은 의주로 파천하는 등 국가는 풍전등화와 같은 극도의 위기 상황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때 공은 7월 26일 진주목사로 승진하여 군사들과 진주백성들의 도움을 받아 성을 보수하고 무기를 마련하며 전쟁 준비를 주야로 철저히 하셨습니다. 당시 왜군은 전라도로 진격하려다가 수군이 충무공 이순신에 의하여 연이어 대패하자 지상으로 방향을 바꾸어 금산, 웅치 이치 전투에서 격전을 벌였고, 10월 5일에는 2만의 대군을 몰아 전라도로 들어가는 관문인 진주성을 공격해왔습니다.
공께서는 관군과 의병 3,800명을 거느리고 진주성민의 도움을 받아 6일간 밤낮으로 수십 차례 파상 공격해 오는 왜군을 끝까지 막아내어 육전에서 최초의 대승리를 이루셨고, 왜군에게는 혼 줄을 내주어 조선군을 겁내게 하는 첫 계기를 만드셨습니다. 공께서 거둔 전승은 공을 진주목사로 승진시키는 주역이었던 초유사 학봉 김성일의 진주성 승첩일록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공은 안타깝게도 마지막 날 순찰 도중 적의 시체 속에 숨어 있던 왜군의 유탄에 맞아 졸하셨으니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으며, 사람과 귀신들도 통곡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1604년 10월에 왕으로부터 선무공신 2등에 책봉되는 교서를 받으셨습니다.
이 교서 속에는 공께서 충성을 바친 내용과,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께서 군사와 백성과 혼연 일체가 되어 왜군을 막아낸 내용이 상세히 쓰여 있고, 왕이 공의 죽음을 슬퍼하며 죽은 이를 다시 살릴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이 진솔하게 서술되어 있으며, 이 상훈과 명예를 자손만대에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왜적을 물리친 공의 공신 교서가 다른 나라도 아닌 바로 적국 일본에 반출되어 하마터면 적장의 기념박물관에 유물로 들어가게 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찰나에 공의 영령이 시켰는지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를 반환하여야 한다는 교오도 대학 김문경 교수의 호소가 계기가 되어 이 교서의 환수운동은 MBC문화방송국의 적극적인 노력에 힘입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 대대적인 국민운동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코흘리개 어린이까지 저금을 털어 성금을 모으게 된 것은 공의 위대한 업적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선조들의 위국진충의 정신을 이어 받겠다는 우리 국민들의 역사의식이 뚜렷하게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의 공신교서 환수는 공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공과 함께 진주성을 지켜 내기 위해 사투를 벌인 무명용사들의 영광이고 대한민국 국민의 영광이기도 하며, 한 때의 영광만이 아니라 두고두고 먼 장래까지 전해질 값진 영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령이시어! 당신의 공신교서가 왜국에 건너간 후 그동안 얼마나 노심초사하셨습니까? 이제 이 귀하고 값진 공의 공신교서는 앞으로 공의 숨결과 자취가 서려 있는 진주성 안의 임진왜란 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으로 옮겨져 이 나라가 존속하는 한 영구히 보존될 것이며 이곳을 찾는 수만 수억의 사람들에게 이에 얽힌 기막힌 사연과 함께 전시될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약소국가에서 벗어나 세계 역사를 주도해가는 강대국이며 문화선진국으로 발돋움을 하였습니다. 이는 공과 같은 선조님들께서 엄청난 국난을 막아내어 국가를 존속시켜 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전 국민은 공의 커다란 우국충정의 정신을 이어 받아 국가의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새 역사를 창조하겠사오며, 앞으로 전쟁이 없는 평화세계를 만드는데 우리 대한민국이 앞장서겠으니 영령께서는 하늘 높은 곳에서 음으로 많은 지원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후손들이 정갈한 제수를 정성껏 준비하여 공의 영전과 공과 함께 싸운 많은 무명용사의 영전에 술잔을 올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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