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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발전된 우리를 위하여(1)-김시민 장군 공신교서 환수 행사 뒷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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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6-08-01 15:44 조회1,524회 댓글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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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공 김시민장군 행사를 마치고>

 지난 해(2006년) 11월 8일, 일본에 계신 안승준교수님(한국학 중앙연구원 교수. 당시 일본 교오토대 객원교수)으로부터 온 메일 한 통은 그 후 9개월 동안 나를 정신 나간 사람처럼 어느 한 가지 일에 한없이 깊이 빠지게 했다. 바로 충무공 김시민 장군 공신 교서 경매관련 메일과 이를 환수하기 위한 활동에 관한 것 때문이었다. 

 약 1억 여 원의 돈이 급히 필요했다. 안교수님과는 메일과 전화로 번 갈아 가며 연락하였다. 그리고 대종회, 진주와 서울의 국립박물관, 김시민장군 기념사업회 등에도 긴급 연락하였다. 우리 문중 내의 한 재력가에게 간곡한 말씀을 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워낙 큰 액수이다 보니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질 못했다. 모든 분들이 이는 오직 국가기관에서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세월은 점점 흘러갔다. 나도 국가기관에서 새로운 법령을 마련한 뒤 빠른 응급조치를 취하기만 바라는 그런 안일한 자세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몇 몇 일간지에서 드문드문 이 내용과 현 상황을 알리고, 그저 안타까운 심정 표현과 정부 태도를 질책하는 내용을 소개할 뿐이었다. 답답한 맘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결국 관청에서까지도 이 일을 성취시키기가 어렵다는 절망적 답만이 들려왔다. 점점 힘이 빠져 나갔다.

 그런데 지난 6월 중순경, 진주의 시민단체에서 공신교서 환수를 위한 모금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진주시민 여러분들의 의기와 적극적 정신이 임란 이후 지금까지 면면히 살아오고 있음을 확인했다. 충무공 김시민장군의 혼령께서 명을 내리셨나보다. 천안의 김시민 기념사업회에서도 모금운동을 준비한다고 했다. 마음은 더욱 바빠졌다. 그리고 이 일은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예감과 희망, 자신감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우리 문중회에서는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 모금운동을 전개한다 하더라도 누구에게 부탁하고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며, 제일 먼저 누구를 설득시켜야 하는가? 아무런 힘도, 영향력도 없는 내가 한없이 부끄럽고 원망스러웠다. 우선 대종회와 제학공파의 대표자 분들과 실무자분들께 이 상황을 말씀 드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모두가 고개를 가로 저을 뿐이다. 이 일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부정적인 답이 전부였다. 여러 번 설득도 시도했으나 나 자신의 능력 부족과 힘의 한계를 스스로 확인하고 가슴만 쳐야 했다. 그리고 우리 문중회에 대한 한없는 회의와 갖가지 문제점, 앞으로 이 일로 인해 온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해야 할 60만 온 문중인들의 치욕적 모습만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적어도 1톤은 족히 넘는 바위가 매일매일 내 가슴을 짓눌렀다.

 6월 말, MBC에서 이 사실을 알고 문화유산을 애호하는 프로인 <느낌표>팀에서 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섰다. 그리고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에 들어갔고 기발한 착상과 방법론을 찾아 본격적인 환수 작업을 시도한다는 연락이 왔다. 천만 다행이었다. 또 바빠졌다. MBC측의 담당자, 진주의 시민대표, 진주박물관의 이상훈 연구사, 귀국한 안승준 교수, 기념사업회의 허용기회장 등과 쉼 없는 전화와 이메일이 바삐 오고 갔다.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안동김씨 홈페이지>에 이 사정을 알리고 동조자를 구하는 일뿐이었다. 

 드디어 MBC로부터 7월 1일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10시 30분에 시작되는 <느낌표>에 이 문제를 위한 방송 계획을 세웠다는 발표가 나왔다. 그리고 모금운동도 동시에 진행된다고 했다. 만세를 불렀다. 이제는 틀림없이 성사될 것이라는 확증도 섰다.

 7월 초에 MBC측 대표, 기념회 허회장, 안승준 교수 등이 나와 함께 판교의 <한국학 중앙연구원>에서 이 문제 해결을 위한 회의를 갖자는 연락이 왔다. 나는 아무 자격도 없으니 대종회와 괴산 능촌 문중회로 연락하여 상호 협의하라고 답했다. 그러자 더욱 화를 내며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상의할 사람이 그곳에 누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오히려 내가 무안했다. 그런데 나는 평일인지라 아무래도 직장 근무관계로 부득이 참석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대리로라도 참석할 수 있는 자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대종회와 제학공파에 연락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못한다고 했다. 할 수 없이 회의 도중 협의 사항이 있으면 그때 전화로 나와 협의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이 날 회의에서는 몇 가지 구체적 해결 방법과 일정이 마련되었다. 우리 문중회에게는 모금운동의 적극적 참여, TV시청의 적극적 시청과  적극적 홍보, 이벤트행사시 많은 종친의 참여, 교서 환수 시 고유제 계획 및 준비와 실시 주관 등을 요청하였다. 그 내용을 즉시 대종회와 제학공파에 통보하였다. 이제야 양 문중회에서 조금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한 것 같았다.

 문중회에서 담당한 홍보문제는 먼저 홈페이지를 통하여 열심히 게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를 통한 홍보 효과가 과연 얼마나 될까? 회의적이었다. 아무래도 대종회로부터 각 파종회와 지역종친회에 공문을 보내야 하리라 보았다. 또한 전 안동김씨 종친들에게도 일일이 이 행사 내용과 모금운동을 알리는 호소를 겸한 엽서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종회와 제학공파에 그 필요성과 구체적 방법론까지 알렸다. 양 종회에서는 모두 실시 불가의 답을 알려 줬다. 마음을 다독이며 참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이젠 화가 돋았다. 최대한 마음을 진정하며 약간의 감정 표출을 양 종회에 했다. 대종회에서는 다소 긍정적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제학공파종회에는 이해와 설득도 어려웠으며 구체적 방법을 알려줘도 그 실시를 거부했다. 결국 괴산읍에 두 개의 현수막만 게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MBC측의 고유제 실시 장소 결정 미정으로 7월 11일에야 겨우 2차 실무자 회의를 할 수 있었다. 오후 3시 여의도 MBC 경영센타 12층, <느낌표> 제작국에서 나, 허회장, <느낌표> 제작진인 성치경PD, 박원우 담당, 윤미성외 3명의 작가가 한 테이블에서 만났다. 구체적 실무 협의를 약 3시간에 걸쳐 했다. 이 날 MBC와 허회장은 우리 문중회에 대해 노골적으로 섭섭함을 표했다. 전 문중인을 대신하여 온 몸으로 그 원망과 비난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허회장은 이날 대종회 사무총장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아쉬운 점, 섭섭한 점 등을 목소리 높혀 말했다. 이날 나는 내내 쥐구멍만 찾았다.

 이날 대종회에서는 내가 만들어 준 각 파로 보내는 공문마저 제학공파종회장의 절대적 거부로 인해 보내지도 못하고 있다는 청천벽력의 말을 듣는 기막히고도 가슴 아픈 순간을 맛보았다. 아! 이럴 수도 있을까?

 이어 전 종친에게 대종회 명으로 김시민장군 공신 교서 환수의 모금운동을 알리고 이에 동참을 요청하며, 7월 25일의 고유제 행사를 홍보하는 엽서도 할 수 없이 내가 직접 제작해야 했다. 이를 급히 권호순사장에게 부탁하여 인쇄하게 했다. 그리고 급속 택배로 대종회로 보냈다. 그런데 며칠 남지 않은 일정인데도 발송은 또 하루 이틀 지연되어 갔다. 설상가상으로 부친 엽서들은 불행히도 16일과 17일의 연휴를 맞아 우체업무의 정지로 인해 더욱 늦어지고 있었다. 이 엽서는 행사 당일인 25일에 도착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말이다.   (계속)

댓글목록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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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그동안 애태우신 사정이야 하늘이나 알지 그 누가 다 알겠습니까?
혼자 고군분투하시는 모습을 보며 작은 힘도 보탬이 되지 못함을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님의 그런 희생위에 위댜한 사업이 완성되었고, 그 공은 누대에 길이 빛날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으 내용을 기록으로라도 남겨야 할텐데요..

김정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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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이번 충무공 선조님의 일에 협력하지 못하여 유구무언 입니다.
그 많은 면박을 혼자 감당하셨군요.
집안은 움쩍도 않고 마음은 타고......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일.
경상도 말로 "우사" 만 이라도 면했으니 다행입니다
노심초사  참말로 애쓰셨습니다. 대애~ 한 민국 짝짝~짝짝짝~

김영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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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바위를 뚫은 물방울의 힘은 오랜 세월이 흐른뒤에 비로소 증명되듯이
님의 노력과 그 결실의 평가는 후일에 그빛을 더할것입니다
고군분투하심에 미력도 보태지 못함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김행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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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9개월간의 노력끝에 되찾으신 보물입니다.
소중히 지켜야 할 일이 남았네요.
그동안 노고에 큰박수 올립니다.

김은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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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투에 집착하는  인사는 과감히 퇴출되야 합니다.
趨舍宥時(추사유시) 라는 말이 있드시....

김봉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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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문화의 발전은 몰두하는 자에 의하여 시작됩니다.
주위를 잊어버리고 한 곳으로 바라보는 시선, 그시선의 끝은 항상 역사에 기록되지만 현재의 주위에는 섭섭함으로 채워질 때도 있습니다.그것이 정상입니다.더 이상을 생각한다면 욕심일수도 있습니다.  그대의 이름은 알을 깨고 나오는......

김완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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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큰 일을 하셨습니다.
후손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과 어리석음이 사무칩니다.
다시금 큰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그리고 존경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