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사공(휘 영수) 포항 관련자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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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6-08-26 09:48 조회1,421회 댓글3건본문
지난 8월5일 포항의 이정업 선생께서 김영수 선조님에 관한 각종 역사 자료를 모은 자료집 1권을 우편으로 보내 주셔서.첫번째로 권무당기를 소개했었 습니다. 그 자료집 맨 첫장에 써 주신 편지입니다.이 글속에 김영수 선조님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이정업 선생께서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셨는지 미루어 짐작 할 수가 있습니다. 거듭 감사드리며 이 편지 글을 소개합니다.
김태영 선생 귀하.
폭염이 내려 쬐는 계절에 건강하십니까?
하시는 일 잘 되시기 기원 드립니다.
늙은 사람의 손길로 聚合 整理한 것이라 期待에 미치질 못할 것 입니다.
*影幀에 관하여.
現在 淸德祠에 모신 影幀은 製作年代. 作者 등은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가 제작한 영정으로 솜씨가 약간 미치지 못해 보입니다.
本人은 지금까지 享祀를 드려 오면서 영정에 疑問이 생긴 것은, 位牌는 [金相統---.]이라 모셨고, 영정은 젊은 郡守時의 것으로 앞뒤가 맞지 않아서, 統制使 影幀製作 問題를 論議해 오던중, 勸武亭의 來年 豫算으로 統制使의 服飾과 71歲에 殉職하셨으니 年輪에 맞는 影幀製作을 마련하기로 決議를 보았습니다.
*金 統制使의 무덤을 安東에서 수년간 찾아 헤매다.
1> 興海九提記績碑에 公은 ‘安東人’이라 적었고,
2> 勸武堂記懸板 낙관서에 [癸未季夏’玉洞’歸人識]이라 적었는데, 玉洞은 安東市 남쪽에 位置한 洞名이며,
3> 耽羅形勝 落款書에 ‘花山人’이라 적었습니다. ‘新增東國輿地勝覽’에 花山은 조선시대 安東大都護府 傘下 13개 郡 中에 1개 郡으로, 현재 安東市 豊山邑 입니다. 위의 3개 유적근거에 따라, 김 통제사 고향은 안동이라 간주해서, 수년동안 안동에서 무덤을 찾았으나 헛수고였습니다. 무덤이 파주에 모셔 졌다는 사실은 예상 밖입니다.
*김 통제사 年譜 중에서, 김태영 선생이 認識하지 못한 부분?
1> 興海九堤記績碑와 正祖實錄에 의하면 억울한 陋名을 쓰고 移配 云云---, 결백은 밝혀지고 곧 석방되어 公은 ‘湖南軍官’으로 영전했다. 라고 記錄하고 있습니다.
2> 正祖實錄 第6卷 / 正祖2年(戊戌)1778年 (丁亥)11月 (己丑)27日 正祖大王은, 濟州牧使 金永綬를 불러 國土防衛戰略에 대한 그의 의견을 묻는 내용이 있음. 그 내용에는 ”臣이 慶尙道 中軍時 漆谷<現,慶北漆谷郡>의 架山山城을 본 바에 의하면 칠곡도호부가 그 높은 가산산성에 올라가 있어서 관방에 도움이 못 되는 것이”---라는 대목에서 그가 慶尙道 中軍을 歷任한 사실 등. 위의 2개 任職은 분명 할 것입니다.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金 統制使 年譜를 接하며, 金 先生의 피나는 노력에 敬意를 표합니다. 조상을 옳게 모시기란 오늘의 큰 과제 입니다. 이 일을 하기란 내 자신의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2006. 8. 4 浦項 李 正 業
댓글목록
김태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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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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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본문 2> 勸武堂記懸板 낙관서에 [癸未季夏’玉洞’歸人識]이라 적었는데, 玉洞은 安東市 남쪽에 位置한 洞名이며,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방축리, 마장리 일대의 옛 이름의 별칭이 옥동이였으며 통사공 묘소의 소재지도 방축리(옥동)입니다. 안동쪽에서 찾다보니 同地名 이 나온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노고가 얼마나 컸는가하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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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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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그동안 이정업 선생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우리의 선조님을 올바로 모시지 못한 우리의 허물도 반성합니다.
태영 아저씨의 노고로 통제사공의 빛이 다시 밝아지고 있으니 그저 감사합니다. 내용은 정리하여 홈에 올리겠습니다.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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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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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이정업 선생님께 깊은 감사말씀 드립니다.
아울러 태영씨의 그간 통제사공에 대한 애정어린 연구도 후손으로
배울바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