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숲찾아 .10] 의성 점곡면 사촌가로숲2006-08-17 영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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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작성일06-08-30 13:20 조회1,474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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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숲찾아 .10] 의성 점곡면 사촌가로숲 | |||||||||||||||||||||||
題字 : 土民 전진원
나의 마음도 고요히 흘러라
이번에는 600여년 전 의성 점곡면 사촌 마을 옆(서편) 들판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조성된 약 1천m 길이의 방풍림인 '사촌가로숲'을 찾아봤다. 의성에서 안동 가는 국도를 따라 단촌면 소재지를 지나 좀 더 가다 보면 안동 임하면 표지판이 나온다. 잠시 더 가면 점곡 표지판이 나온다. 점곡 방향으로 계속 마을들을 거쳐 산 속 길을 한참 가다 보면 의외로 넓은 들판을 만나게 된다. 사과밭이 대부분인 넓은 들판을 10리 정도 달리다 보면 사과밭 뒤로 펼쳐지는 긴 숲이 눈에 들어온다. 다가가면 사촌가로숲이라는 안내판과 함께 잘 정돈된 하천을 따라 하천 양 옆으로 조성된, 고목들이 꽉 들어찬 긴 숲을 만나게 된다. 보기드문 숲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숲을 지나면 그 안쪽(숲의 동쪽)이 사촌리 마을이다. △600여년 전 하천을 따라 조성된 경북 최대의 숲 사촌 마을에 서면 마을 앞 저 멀리 병봉(丙峰: '남쪽 산'이라는 뜻)이 동서로 병풍처럼 길게 마을을 둘러싸고 있고, 그 앞으로 낙동강 지류인 미천(眉川)이 유유히 흘러간다. 이 미천과 마을 사이에 벼가 자라고 사과가 한창 굵어가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사촌 마을과 이 들판 서쪽에 마을 뒷산(매봉산)에서부터 남북으로 가로질러 1천m나 되는 숲이 길게 늘어서 들판을 양분하고 있다. 이 숲이 6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경북 최대 규모의 숲인 사촌가로숲이다. 가로숲이라는 이름은 들판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조성한 숲이라서 붙인 명칭이다. 간혹 길을 의미하는 '가로(街路)'로 잘못 아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한다. 마을 서쪽에 있어 서림(西林)으로도 불린다. 숲 중앙으로 마을 뒷산 계곡에서 비롯된 하천(大谷川)이 흐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천 양 옆으로 조성된 폭 40m의 이 숲은 상수리나무와 느티나무, 팽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높이 15~20m, 수령 400~600년 된 고목들이 밀집한 이 숲에 들어가면 마치 밀림에 들어온 기분이 들 정도로 숲이 울창하다. 물론 이같은 고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숲 곳곳에 최근에 심은 느티나무와 저절로 자라난 잡목 10여종이 혼재해 있다.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의 맑은 물과 고목의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이곳에 들어서면 요즘 같은 한여름 더위도 저 멀리 달아나 버린다. 또한 가을에는 숲의 수종이 거의 활엽수여서 특히 단풍이 아름다움을 뽐내면서 많은 사람이 단풍을 즐기러 숲을 찾는다고 한다. 이 숲은 이처럼 여름이면 피서지로, 가을이면 아름다운 단풍을 구경할 수 있는 유원지로 사랑받을 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수목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다람쥐, 토끼, 텃새와 철새, 곤충 등이 어우러져 서식하고 있어 자연관찰원 기능도 하고 있다. 이러한 역할도 중요하지만, 이 숲의 중요성은 겨울의 매서운 북서풍과 홍수를 막아주는 역할로 사촌마을을 살기좋은 터전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고려말 김자첨이 마을 터전 부족함 보완 위해 조성 사촌가로숲은 안동 김씨 중시조인 충렬공 김방경의 5세손 감목관(監牧官) 김자첨(金子瞻: 1369~1454)이 1392년 안동 회곡(檜谷)에서 이곳으로 이주해온 뒤 조성했다. 사촌(沙村: 모래골)이라는 이름도 김자첨이 모래땅이던 지역적 특징을 감안해 지었다. 김자첨은 이주 후 '서쪽이 허하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풍수지리설도 고려하고 매서운 겨울 바람을 막아 마을 터전의
오래 사는 느티나무와 상수리나무, 팽나무를 심었다. 들판 한가운데를 흐르는 물길이라 둑에다 숲을 조성한 뒤에도 큰 비가 오면 하천바닥에 흙이 많이 쌓이고 나무들도 자주 유실되었기 때문에 숲과 하천 관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예전에는 1년에 한 번씩 인근 10리 안의 사람들을 불러모아 흙을 걷어내고 숲을 돌봤다고 한다. 숲이 조성되자 마을은 훨씬 살기 좋은 터전으로 바뀌었다. 겨울이 되어도 매서운 북서풍의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되었고, 여름이면 농사일로 지친 주민들이 시원한 그늘 아래 낮잠을 자며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도 안성맞춤이었다. 김자첨의 후손인 향토사학자 김창회씨(72)는 "차갑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 때면 숲 바깥과 안쪽의 기온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며 숲의 고마움을 강조했다. 숲을 지키기 위해 3~4년 전에는 왜가리와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왜가리가 서식하기 시작한 이 숲은 다른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언젠가부터 그 수가 크게 늘어나 해마다 때만 되면 수천마리가 날아들어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웠다. 그러자 바닥과 나무들은 배설물과 먹다 떨어뜨린 뱀, 물고기 등으로 덮이면서, 풀과 나무가 말라죽기도 하고 사람들도 접근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주민들간에 '길조이므로 그대로 둘 것인지' '숲을 망치고 사람들도 쉴 수 없게 하므로 쫓을 것인지' 찬반 양론을 벌이다, 결국 화약을 터트리고 양철통을 두드리는 등 왜가리와의 전쟁을 벌여 3년 전에 왜가리들을 물리쳤다. 왜가리들은 멀리 가지 않고 인근 산 숲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1999년 4월 천연기념물 제405호로 지정된 사촌가로숲은 최근 의성군의 도움으로 하천 둑의 돌담이 복원되고 바닥도 정비됐다. 그리고 숲 옆으로 오솔길이 정비되고 숲과 마을 사이에 정자도 만들어지는 등 숲과 주변의 모습이 일신돼 주민들로부터 사랑받는 휴식처가 되고 있다. △'외손이 잘 되는 터' 유성룡이 태어난 마을 서애 유성룡의 외가가 있는 마을로 서애가 태어난 곳이기도 한 사촌 마을은 '외손이 잘 되는 터'여서 딸들이 해산하러 오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서애 탄생과 관련해서도 서애 어머니가 서애를 낳기 위해 친정집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미처 들어가지 못하고 가로숲에서 해산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하고 있다. 김창회씨는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고 서애는 외가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신라 중엽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사촌마을은 3명의 정승이 탄생할 곳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의 장인으로 정승을 지냈던 나천업(羅千業)이 이곳에 살았다고 하고, 서애가 또한 이곳에서 태어났으니 세 번째 정승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김자첨 이후 조선말까지 그 후손 40여명이 대·소과에 급제하는 등 안동김씨 명문거족을 이룬 사촌마을에는 김자첨의 증손인 송은(松隱) 김광수가 심은 만년송(萬年松: 500여년 된 향나무), 송은의 증손자인 만취당(晩翠堂) 김사원이 창건한 만취당, 안동 김씨 종택 등 문화재들도 많이 있다. 특히 만취당은 1582년에 창건된 이후 수차례의 전란에도 소실되지 않은 덕분에 당시의 건물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귀중한 고 건축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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