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덕공(휘 시열) 종가 유물 소개13-감사공(휘 소) 진사급제 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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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6-09-03 18:53 조회1,609회 댓글0건본문
<白 牌>
1.시기 : 1629년(인조7, 감사공 29세)
2.수교자 : 監司公(諱 素)
3.내용 : 진사시험 합격서(白牌),
4.원문 및 풀이 :<幼學 金素 進士 二等 第十二人 入格者.
崇禎二年 二月 二十四日>
(유학인 김소는 진사시험에 2등 제12인에 입격한 자임.
숭정(중국연호) 2년(1629년 인조7) 2월 24일)
5.소장 : 양덕공 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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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공 소개
김 소(金 素) 1602(선조35)∼1666(현종7)
字는 지백(知白). 호는 양졸와(養拙窩). 충북 괴산군 사리면 하도에서 출생. 양덕공(諱 時說)의 장자.
1630년(인조8.29세) 진사급제. 무사참봉(巫仕參奉-종9품), 의금부 금오랑(金吾郞), 호조좌랑(戶曹左郞-정6품)이 되었다..
1635년(인조13,34세) 알성문과 급제. 이듬해 정랑(정5품)이 됨. 그 해(1636년,35세) 후금(청나라)의 전란이 예상되매 공은 문무의 재주를 겸비한 자로서 선발되어 해주판관(海州判官)이 되었다.
1637(인조15.36세) 병자호란에 패하여 소현세자가 볼모로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가게 되자 공은 세자와 대군을 청나라까지 모시고 가기도 하였다. 군자감정(軍資監正-정3품), 강릉부사(江陵府使), 함경도병사(咸鏡道兵使-종2품), 종성부사(鍾城府使), 함경남도병사(부친 노환으로 사양)를 거쳐 1644년(인조22) 호조참의(戶曹參議-정3품)가 되었다. 그 해 겨울 성절사(聖節使-중국에 새해 인사로 가던 사신)로 청나라에 갔다가 귀국길에 볼모로 있던 소현세자에게 들려 공금을 아껴 남은 돈으로 세자의 귀국을 위한 말 준비 비용으로 쓰도록 하였다 한다.
경주부윤(慶州府尹-종2품. 부친 노환으로 사양), 형조참의(刑曹參議-정3품. 잠깐 있다가 부친 노환으로 사양), 승정원(承政院) 부승지(副承旨-정3품), 진주목사(晋州牧使)를 거쳐 1648년(인조 26,47세) 충청도 관찰사(觀察使-종2품)가 되었다.
그 후 영흥부사(永興府使), 승지(承旨), 형조참의, 호조참의, 황해도관찰사, 광주목사(光州牧使), 장단부사(長湍府使), 판결사(判決使), 양주목사(陽州牧使)등을 역임하였다.
1666년(현종 7)에 몰. 수(壽) 65세.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고 묘는 충북 괴산군 사리면 보광산 頂 계좌(癸坐)이다.
유물 : 白牌(진사급제)1매, 紅牌(문과급제)1매, 諭旨(충청도 관찰사, 충청수사) 2매.
<주요 연보>
1. 1세 (1602년. 선조35) : 4. 22. 충북 괴산군 사리면 하도에서 출생 (부-시열. 모-구례손씨)
2. 29세(1630년. 인조8) : 진사급제
3. 30세(1631년. 인조9) : 장릉참봉(章陵參奉-종9품)
4. 33세(1634년. 인조12) : 금오랑(金吾郞-의정부 관리 )
5. 34세(1635년. 인조13) : 호조좌랑(戶曹左郞-정6품). 9월. 알성문과 급제
6. 35세(1636년. 인조14) : 정랑(正郞-정5품). 여름에 해주판관(海州判官) (병자호란)
7. 36세(1637년. 인조15) : 소현세자, 봉림대군을 심양까지 모셔다 드림.
8. 37세(1638년. 인조16) : 군자감정(軍資監正-정3품)
9. 38세(1639년. 인조17) : 강릉부사(江陵府使)
10. 40세(1641년. 인조19) : 함경도병사(咸鏡道兵使) 추천. 겨울에 통정대부로 종성부사(鍾城府使)
11. 42세(1643년. 인조21) : 함경남도병사(咸鏡南道兵使-종2품. 부친 노병으로 사양)
12. 43세(1644년. 인조22) : 호조참의(戶曹參議-정3품). 성절사(聖節使)로 연경에 감
13. 44세(1645년. 인조23) : 봄에 귀국. 귀국길에 소현세자에게 들러 공금을 아낀 돈을 말 준비 비용으로 드림. 경주부윤(慶州府尹-부친 노병으로 사양), 형조참의(刑曹參議-잠깐 있다가 부친 병으로 사양), 부승지(副承旨-사양).
14. 45세(1646년. 인조24) : 진주목사(晋州牧使).
15. 47세(1648년. 인조26) : 7월 충청도 관찰사(忠淸道 觀察使)
16. 48세(1649년. 인조27) : 벼슬 파직. 괴산 거주
17. 49세(1650년. 효종1) : 영흥부사(永興府使)
18. 53세(1654년. 효종5) : 승지(承旨)
19. 54세(1655년. 효종6) : 형조참의(刑曹參議), 승지(承旨), 충청수사(忠淸水使)
20. 55세(1656년. 효종7) : 승지(承旨)
21. 56세(1657년. 효종8) : 여름에 호조참의(戶曹參議). 겨울에 승지(承旨)
22. 57세(1658년. 효종9) : 황해감사(黃海監司-사양), 여름에 광주목사(光州牧使)
23. 60세(1661년. 현종2) : 원주목사(原州牧使)
24. 61세(1662년. 현종3) : 원주목사에서 돌아옴
25. 63세(1664년. 현종5) : 장단부사(長湍府使-사양), 장예원 판결사(判決使)
26. 64세(1665년. 현종6) : 양주목사(陽州牧使-병으로 사양)
27. 65세(1666년. 현종7) : 6. 11. 몰. 9. 13. 괴산에서 장례식
*吏曹參判 追贈
<주요 자료 소개>
1. 주요 사진 자료 소개
1)묘소 (2003. 9. 11. 항용(제) 촬영)
<묘소>(충북 괴산군 사리면 사담리 보광산 >
<묘소 동편의 문관석과 망주석>
<상석> (癸坐丁向이란 글이 보인다)
<동자석(좌) 전면과 두부 모습>
<상석 뒷면-朝鮮 觀察使 安東金素 貞夫人 光州金氏之墓 床石-이란 글이 보임)>
<묘소 원경-우측:감사공(휘 소), 좌측:승지공(휘 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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